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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사극같은 한 재벌기업의 승계

배장호 M&A부장공개 2018-10-17 13:57:46

이 기사는 2018년 10월 16일 08:08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국내 어느 한 대기업 집단 이야기를 꺼낸다. 재계 서열로 치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크고 이름있는 그룹이다. 당사자가 받아들이기에 다소 불편한 내용일 수 있어 실명을 밝히지 않지만, 독자가 내용으로 유추하는 건 자유다.

이 그룹엔 최근 큰 일이 있었다. 3대 회장이 별세하고 4대 회장이 승계했다. 3대 회장이 투병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친동생인 부회장이 1년 정도 그룹 경영을 맡아왔는데, 회장이 별세하자 법상 친자가 회장 자리를 물려받은 것이다.

전 국민이 다 아는 사연이지만, 4대는 원래 3대의 친자가 아니다. 3대에겐 외아들이 있었는데, 불행히도 사고로 생명을 잃었다. 이 그룹은 '장자승계'란 확고한 원칙을 가지고 있었기에 대를 이을 장자가 필요했고, 3대의 바로 아래 동생의 장자를 양자로 입적한 것이다.

3대가 작고하자 이 양자는 잠시 그룹 경영을 맡아오던 숙부로부터 경영권을 물려받아 4대 총수 자리에 오르게 된다. 이 때 나이가 마흔을 갓 넘은 때다. 밖으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내부적으로 적지 않은 혼선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승계를 위해 필요한 일련의 절차에 협조하지 않는 방식으로 누군가가 우회 반발했고, 가문의 시니어들로부터 공분을 사는 일이 있었다는데 사실을 확인할 방도는 딱히 없다.

그도 그럴 것이 4대가 바로 승계하기엔 아직 젊고 경륜이 충분치 않다는 시각들이 있었고, 3대 회장 투병 중 그룹 경영을 맡아오던 숙부가 한동안 더 이끌 것이란 전망들이 있었다.

물론 마흔이면 그룹을 이끌기에 충분하다. 1984년생 마크 저커버그는 우리 나이로 서른 다섯 나이에 시가총액 400조원이 넘는 글로벌 IT기업을 이끌고 있다. 국내 재벌그룹들의 선례를 봐도 이 보다 더 젊은 나이에 승계한 예가 드물지 않다.

'몇살이면 기업을 이끌 수 있나' 하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위에 적은 한 재벌 그룹의 승계 이야기가 흡사 조선 왕조를 배경으로 왕위 승계를 그린 TV사극의 한 장면같다는 얘기를 하고 싶어서다. 21세기, 민주주의 조직 원리가 뿌리를 내린 이 시절에 마주하게 된 TV 사극같은 스토리가 생경하게 느껴지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아무리 대주주 일가가 보유한 지분의 비율이 절대적이어도 상장회사라면 다른 주주들이 있고, 대기 중인 잠재 투자자들이 필연적으로 존재한다. 사업의 규모가 자영업 수준이 아니기에 당연히 금융권이나 자본시장과의 교류는 필수다. 아무리 내 몫, 내 가족의 몫이 절대적이더도 시장의 시선을 무시할 수 없다. 이 그룹의 경우 지배회사에 대한 대주주 일가 지분이 절반을 넘지 않는다.

다행히도 이 그룹을 물려받은 젊은 총수에 대한 세간의 평은 그리 부정적이지 않은 것 같다. 그렇다고 능력을 평가받을 만한 계기가 있었던 것도 아직은 아니다. 사극을 연상시키는 장면은 지금까지면 족하다. 지금부턴 마크 저커버그 못지 않은 경영 능력을 입증하기 위해 극한의 노력을 쏟아부어야 하고, 시장으로부터 박수 갈채를 받아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그런 사극 드라마의 후반부가 재현될 지 모른다. 그런 류 사극 중에 해피엔딩인 게 별로 없었단 사실을 팁으로 알려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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