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5년 04월 21일 10시48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부(富)와 트렌드의 정점이라 불리는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 청담동 명품거리와 압구정 로데오, 가로수길을 품은 이 거리는 한때 '명품 주택의 성지'로 불릴 뻔 했다. 평당 분양가 1억원은 우습게 넘기는 하이엔드 주택들이 잇달아 기획됐다. 고급주택 경험이 부족한 시행사들까지 '하이엔드' 열풍에 편승했다.하지만 지금 도산대로에서 살아남은 프로젝트는 손에 꼽힌다. 대부분 분양률 정체로 존폐 기로에 있고, 착공조차 못 한 채 무산된 곳도 허다하다. 결국 기반 없이 시장에 진입한 중소 시행사들은 재무 구조가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경기도와 지방에서 주로 사업을 해온 RBDK는 도산대로에서 승부수를 던졌지만 2년 가까이 본PF 전환도 못 하고 있다. VVIP 초청 론칭쇼를 열며 "입주자를 심사하겠다"던 '포도 바이 펜디 까사'는 현재 금융당국이 지정한 부실PF 사업장 공매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한 개발업계 관계자는 "땅값은 고점에 매입했지만 일반 분양가로는 수익이 안 나다 보니 무리하게 '하이엔드' 타이틀을 우후죽순 붙이다가 다같이 무너진 것"이라고 진단했다. 하이엔드라는 말로 포장했지만 실상은 사업수지를 위해 지나치게 높은 가격을 정당화하려는 명분일 뿐이라는 얘기다.
좋은 입지에 땅을 샀다고, 고가 마감재를 썼다고, 명품 브랜드를 붙였다고 해서 하이엔드가 되는 게 아니다. 초고액 자산가들은 공간에 담긴 스토리와 정체성, 삶의 철학이 반영된 가치를 요구한다. 지금 같은 불황기에 외면받는 하이엔드 상품은 애초에 진짜 하이엔드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부동산 경기가 좋을 땐 누구나 개발에 나설 수 있다. 하지만 외면받는 부동산 상품이 넘쳐나는 지금, 시장은 시행자에게 더 정교한 고민과 기획을 요구하고 있다.
최근 하이엔드 주택의 좌초가 이어지자 '하이엔드 시니어 하우징'으로 눈을 돌리는 흐름도 감지된다. 더랜드그룹이 반포에서 추진하던 초고가 주택부지는 자산운용사가 인수해 시니어 주거 상품으로 방향을 틀었고, 무신사 창업자 조만호 대표도 한남동에서 추진하던 고급 주택을 시니어 레지던스로 전환했다.
도산대로에서 시작된 '하이엔드 부동산'의 실패는 특정 지역이나 특정 시행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화려한 외형과 가격만으로는 시장의 선택을 받기 어렵다는 것을 확인했다. 시장에 꼭 필요한 부동산 상품을 개발할 수 있도록 각자의 차별화된 사업 역량을 길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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