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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은 삼성의 친구가 아니다 [thebell note]

정호창 기자공개 2016-10-11 07:58:10

이 기사는 2016년 10월 10일 07:41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지난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반대하며 삼성그룹을 코너에 몰아넣었던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1년여 만에 돌아왔다.

그간 삼성물산 투자 실패를 곱씹으며 착실히 권토중래를 준비한 듯, 더 많은 자본과 한층 세련된 전략을 들고 국내 증시에 복귀했다. 이번 투자처는 국내 대표기업이자 삼성그룹 핵심인 삼성전자이며, 투자규모는 1조 2000억 원에 달한다.

엘리엇은 삼성그룹과 대립각을 세웠던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주주자격으로 삼성전자 이사회에 보낸 제안 서신의 앞머리는 삼성그룹 창업주 일가와 경영진의 공로를 인정하고 찬사를 보내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어 삼성그룹 총수 일가의 지배 지분을 유지하면서 주주가치를 향상시킬 방법이 있다고 점잖게 조언한다.

엘리엇의 제안을 정리하면 '삼성전자를 지주사와 사업회사로 분할해 삼성물산과 합병하는 총수 일가 중심의 지배구조 재편을 지지할테니, 삼성전자가 보유한 현금 30조 원을 특별배당하라'는 주장이다.

뒤의 현금배당 요구는 부담스럽지만, 앞부분은 삼성그룹으로선 귀가 솔깃할 만한 달콤한 제안이다. 이재용 부회장 중심의 지배구조 재편을 진행 중인 삼성그룹 입장에선 반드시 이뤄내야 할 숙원사업이나, 여론과 주주들의 눈치를 살피느라 추진을 미뤄왔던 과제이기 때문이다.

엘리엇의 제안을 받아들이면 삼성그룹은 지배구조 재편을 본격적으로 공론화 할 수 있는 '명분'을 손에 넣게 된다. 마음 한 구석의 찜찜함과 불안감을 감안하더라도 놓치기 아까운 꽤 매력적인 유혹이다.

하지만 곰곰이 뜯어보면 엘리엇의 제안은 매우 오만하고 무책임한 '감언이설'에 불과하다. 엘리엇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은 고작 0.62%에 불과하다. 삼성전자 지배구조 재편을 용인하거나 캐스팅보트를 쥘 수 있는 지위에 올라 있지 않고 권한도 없다.

엘리엇이 삼성전자의 외국인 주주를 대표하는 자격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엘리엇처럼 단기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투자자들은 배당 확대를 조건으로 지배구조 재편에 찬성표를 던질 수 있으나, 장기투자 성향의 주주들은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다.

삼성그룹이 삼성전자 분할과 합병 추진을 결정하더라도 지주사 체제 전환과 완성까진 오랜 시간이 걸리고 여러 고비를 넘어야 한다. 최소 2~3년의 시간과 천문학적인 자금이 필요하단 분석이다.

반면 엘리엇은 삼성전자의 대규모 배당만 먹고 철수하면 그만이다. 지배구조 재편을 용인할 권한도 없지만 약속을 지킬 의무도 없다. 삼성그룹이 제안을 받아들이면 최선이고, 거절하더라도 최대한 분란을 일으켜 주가를 끌어올리면 손해볼 일이 없다.

삼성전자가 보유한 현금은 오랜 시간 임직원들이 흘린 피와 땀의 결실이다. 국내외 생산기지와 사업장에 투자될 자산이며 기술 개발의 원천이지, 기여도가 1%도 없는 탐욕스런 투기자본에게 나눠 줄 자금이 아니다.

엘리엇은 지난해에 이어 언론과 홈페이지를 적극 활용해 자신들을 소액주주의 대변자, 주주가치의 수호자로 포장하고 있다. 이번에는 여기에 추가로 삼성그룹의 동반자, 친구 이미지도 덧칠했다.

삼성그룹은 물론이고 국내 주식시장 관계자들도 엘리엇의 웃는 낮빛과 교묘한 언변을 경계해야 한다. 진정한 친구는 달콤한 말을 귀에 속삭이지도, 벗의 고충을 세상에 떠벌리지도 않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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