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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측·단정·호통…사실상의 '삼성 청문회' [기업총수 최순실 청문회]이재용 부회장에 질의 집중, 기존 의혹 재탕…"손들어, 당장 약속" 요구도

정호창 기자공개 2016-12-06 20:15:21

이 기사는 2016년 12월 06일 19:57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최순실 사태에 연루된 재벌그룹들의 특혜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진행된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가 사실 확인이나 진실에 다가가지 못하고 공전했다. 증인으로 소환된 삼성·현대차·SK·LG그룹 등 9개 그룹 총수들은 미르·K스포츠 재단 출연금에 대가성은 없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고, 청문위원인 국회의원들은 새로운 사실과 증거 제시를 통해 구체적인 답변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기존에 제기된 의혹만 되풀이하는 데 그쳤다.

국회에서 6일 진행된 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 청문회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허창수 GS그룹 회장 겸 전경련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손경식 CJ그룹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등 재벌 총수 9인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최광 전 국민연금 이사장과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 이승철 전경련 부회장, 주진형 전 한화증권 대표, 윤석근 일성신약 대표, 김상조 한성대 교수 등도 증인과 참고인 신분으로 청문회에 참석했다.

◇이재용 "송구하고 드릴 말씀 없다, 전경련 탈퇴, 미래전략실 해체"

이날 청문회는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청문회였지만 실상은 '삼성청문회'에 가까웠다. 여야를 막론하고 국회의원들의 질의는 이재용 부회장에 집중됐다.

이재용 부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오른쪽에서 두번째)이 6일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에 증인으로 참석하고 있다.
청문위원들은 이 부회장에게 최순실·정유라 부녀 특혜 지원,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의혹 등을 집중 추궁했다. 최순실이 비선실세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삼성그룹이 정부로부터 특혜를 얻기 위해 조직적으로 최씨 모녀에게 자금을 지원한 것 아니냐는 질타가 쏟아졌다.

이 부회장은 이번 사태가 벌어지기 전까지 최씨 모녀의 존재와 승마 관련 지원 내용을 몰랐다고 밝혔다.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도 대가성없이 지원한 것이라고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의혹을 부인했다.

청문위원들의 집중 타깃이 된 이 부회장은 한껏 몸을 낮췄다. 그는 "사후 보고를 받고보니 (최씨 모녀에 대한 지원에) 적절치 못한 점이 많아 송구하고 드릴 말씀이 없다"며 "모두 제 불찰이며 향후 국민들을 실망시키지 않도록 재발 방지에 힘을 쏟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삼성물산 합병 의혹에 대해선 "자본시장법에 따라 진행된 것"이란 입장을 밝히며 "아직 합병된 지 1년여 밖에 되지 않아 부족해 보이지만 좋은 기업으로 성장시켜 합병 효과를 증명하겠다"고 말했다.

삼성그룹의 변화도 약속했다. 그는 해체 여론이 높아지고 있는 전경련에 대해 "향후 활동을 하지 않고 자금 지원도 중단하겠다"며 탈퇴 의사를 밝혔다. 그룹 콘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에 대해선 "창업주이신 선대 회장(고 이병철 회장)께서 만드신 것이고, 부친(이건희 회장)께서 유지해온 거라 조심스럽지만 국민 여러분의 부정적 인식이 있다면 없애겠다"고 해체를 선언했다.

◇총수들 '대가성 없었다' 이구동성… 전경련 해체엔 이견

이날 청문회에 참석한 그룹 총수들은 미르·K스포츠 재단 출연금에 대해 '대가성이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정부가 추진하는 사업에 민간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해 출연금을 냈을 뿐 불이익 우려나 특혜와는 무관하다"고 밝혔다. 그는 "기업이 정부의 요청을 거절하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도 덧붙였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도 비슷한 답변을 내놨다. 기업 규모에 따라 전경련 회비 내듯 출연금을 할당받아 냈지만 대가를 바라고 지원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의 첫 단추를 꿰는 역할을 한 전경련 해체에 대해선 의견이 갈렸다. 이재용 부회장과 최태원 회장은 해체에 찬성 의사를 밝혔으나, 정몽구·구본무·신동빈·허창수·김승연·조양호 회장 등은 반대 입장을 밝혔다.

구 회장은 개인 의견을 전제로 "해체보다는 해리티지 재단처럼 운영해 기업들의 친목단체로 남아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재계 서열 1위인 삼성그룹이 이날 청문회를 통해 탈퇴를 선언하고, 해체 반대의사를 밝힌 총수들도 변화 필요성에는 공감의사를 나타내 향후 전경련의 변화와 위상 추락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발전적 해체' 후 재출발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다.

◇답변 시간 안주고 면박주기 등 구태 여전

이날 청문회는 국민적 관심사에 대한 진실 규명을 목적으로 열려 재계는 물론이고 일반 국민들의 관심도 집중됐으나, 증인 면박주기와 인격 모욕 등 국회 청문회의 구태는 여전했다.

청문위원 대부분이 증인으로 출석한 기업 총수들을 죄인으로 간주하고 심문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질의응답 시간 7분 중 대부분을 위원 본인의 질문이나 주장을 전개하는 데 소진해 정작 증인의 답변을 제대로 들을 수 없었다. 총수들이 질문에 두 마디 이상 답변하지 못하고 말문이 끊기는 모습이 자주 연출됐다.

의혹에 대한 해명이나 답변은 제대로 풀어보기도 전에 다른 질문에 막혔다. 실무자들이 아니면 파악하기 어려운 세부 사항 등에 총수들이 모른다는 답변을 내놓으면 '그것도 모르냐'는 질책이 쏟아졌다.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고, 향후 특검 수사도 진행될 사안이라 공개적인 청문회를 통해 밝히기 어려운 민감한 내용에 대한 답변을 강요하는 모습도 자주 등장했다. 우리 헌법상 재판에서 유죄가 확정되기 전까지 '무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된다는 점과 배치되는 장면이다.

총수에게 무리한 요구를 강제하는 의원도 적지 않았다. 이재용 부회장에게 장충기 미래전략실 차장(사장)을 즉시 해임하라고 요구하거나, 각 총수들에게 전경련 탈퇴를 청문회장에서 당장 약속하라는 요구 등이다. 해당 사안들은 회사 내부의 적절한 의사결정과정과 적법한 절차 등을 통해 결정돼야 하는 사안이다. 재벌 총수의 제왕적 전횡을 문제 삼아온 국회가 바로 그 전횡을 강요하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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