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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FO와 CEO의 '거리' [thebell note]

양도웅 기자공개 2022-03-29 09:34:38

이 기사는 2022년 03월 18일 08:08 thebell 유료서비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그 실장이 나가자마자 대표가 차를 바꿨더라고. 내 그럴 줄 알았어."

오랜만에 만난 한 선배가 씁쓸한 표정으로 들려준 모(某)기업 이야기다. 퇴사한 실장은 최고재무책임자(CFO) 역할을 맡던 임원이다. 정확히 어떤 이유로 회사를 떠났는지 듣지 못했지만 그가 나간 뒤 보인 CEO의 선택은 기업의 자금줄을 쥔 CFO를 취재하는 기자로서 쉽게 지나칠 순 없었다.

CFO의 최우선 임무는 리스크 관리다. 최근 많은 기업에서 투자 행위가 중요해지면서 자금 조달 임무가 각광받지만 '알파이자 오메가'는 역시 재무구조의 건전성을 지키는 일이다. 회계법인 마일스톤의 김규현 부대표는 "'이러시면 안 됩니다'라며 CEO를 혼내고 견제하는 역할도 맡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앞서 언급한 CFO 퇴사는 CEO와의 갈등 때문으로 짐작된다. '차량 교체'는 하나의 상징적 사례일 뿐 자금 지출과 관련해 두 임원은 사사건건 부딪쳤을 터다. CFO는 앞에서든 뒤에서든 "지금 이럴 때입니까"라며 답답해하지 않았을까. 어느 쪽이 회사 이익에 더 부합하는지는 현재로선 판단하기 어렵지만 둘의 갈등은 CEO의 승리(?)로 귀결된 모습이다.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 가까이할 수도 멀리할 수도 없다는 뜻의 사자성어다. 언론계에선 공격수인 기자와 수비수인 취재원 사이의 '적정 거리'를 논할 때 자주 거론되는 원칙 중 하나다. 선배들이 툭하면 했던 조언이다. 하지만 먼 것보단 가까운 경우가 많은 게, 이로운 게 현실이다.

기업의 자금 유출입 면에서 공격수인 CEO와 수비수인 CFO의 거리도 불가근불가원이 원칙일 수 있다. 하지만 기자와 취재원 사이처럼 현실에선 멀기보다 가까운 경우가 많다. 오너나 CEO의 복심으로 불리는 인물이 CFO에 선임되는 사례가 적지 않고 CFO가 CEO로 승진하는 사례도 심심치 않게 찾을 수 있다.

부정적으로만 볼 건 아니다. "형님" "아우" 하며 사적으로 교감하는 사이더라도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면 거리의 멀고 가까움은 문제 삼을 게 못 된다. 불가근불가원은 물리적인 적정 거리를 유지하라는 조언이라기보단 상대와의 관계 때문에 판단을 그르쳐선 안 된다는 정신적 조언에 가깝기 때문이다. 관건은 판단력을 헤치지 않는 거리다.

정기주총과 함께 한 해 영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지금 CFO들은 다시 한번 CEO와의 거리를 가늠해보는 건 어떨까. CEO와의 관계에 휘둘려 마뜩잖은 판단을 반복하고 있진 않은지 말이다. 필요하다면 선을 넘는 CEO와 우격다짐도 불사해야 한다. 물론 그에 앞서 '숫자'에 근거한 탄탄한 논리력과 설득력을 갖추는 게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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