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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경5000조의 비밀]주관사 재량권 확대, 수요예측 왜곡 '솔루션'될까⑤참여자 범위 및 물량배정 등 직간접적 제약…주관사들 경쟁력 갖췄는지는 '의문'

최석철 기자공개 2022-03-23 07:43:41

[편집자주]

LG에너지솔루션 IPO 이후 기관의 허수 주문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공모주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운용 자산을 훌쩍 넘는 주문을 넣는 기관의 행태가 정당한 수요예측 기능을 훼손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기관의 욕심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긴 어렵다. 그동안 기관투자자의 수요예측 참여를 독려해온 제도적 허점 역시 주된 배경이다. 이에 국내 IPO시장의 수요예측 제도 현황과 배경, 그에 따른 허와 실을 짚어본다.

이 기사는 2022년 03월 21일 16:07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국내 IPO(기업공개) 시장에 대한 정부의 직접적인 규제가 시장 왜곡을 야기하는 주된 요인으로 꼽힌다. 공모 과정에서 형평성을 이유로 주관사의 주된 업무인 투자자별 물량 배정 비율, 수요예측 참여자 범위 등에 대한 과도한 제약이 이뤄지면서 시장 본연의 기능이 저하된다는 지적이다.

이에 주관사에게 보다 넓은 재량권을 보장해 주되 불건전 인수행위에 대한 사후적 감독을 강화하는 방안이 제기된다. 각 주관사별 IPO 관련 업무 역량을 차별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IPO 시장의 저가 수수료 관행도 타파하는 카드가 될 수 있다.

다만 현실적인 이유를 들어 회의적인 시각도 만만치 않다. 국내 IPO 시장에서 일하고 있는 실무인력이 넉넉하지 않은 상황에서 각 하우스별로 밸류에이션 역량 등이 크게 차이 나기 어렵다는 이유 때문이다. 무엇보다 리스크를 감수해야하는 IPO 투자에 대해서도 소액투자자 보호를 최우선 가치로 내거는 정부의 기조가 바뀌지 않는 한 요원할 수밖에 없다.

◇제한된 주관사 재량권, 효율성보다 형평성에 치중된 규제

21일 투자금융(IB) 업계에 따르면 국내 IPO 시장에서 주관사의 물량 배분에 대한 재량권에 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제한된 상태다. 수요예측 참여자 범위와 투자자별 물량 배정, 공모가격 결정 등 IPO 공모시장의 핵심 사항에 대해 직간접적인 제약이 있다는 의미다.

자본시장연구원은 ‘한국 신규공모시장의 구조분석’ 보고서를 통해 “수요예측 참여 투자자의 선별 권한과 함께 인수인이 공모주 물량 배정에 대해 재량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 여부는 수요예측 제도의 효율성 달성에 핵심적인 조건”이라며 “하지만 국내 수요예측 제도에서는 인수인의 물량배정권이 규제에 의해 상당부분 제한되어 있다”고 진단했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 국가의 IPO시장의 경우 수요예측에 참여하는 기관투자자 범위를 주관사와 인수회사가 자율적으로 제한할 수 있다. 금융당국이 제시한 일정 기준만 넘어서면 주문을 넣을 수 있는 국내와는 다른 점이다.

국내와 같은 방식은 자체 밸류에이션 역량은 없이 단순히 물량 확보를 위해 최고가격으로 써내는 무임승차를 택하는 다수의 기관투자자를 양산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LG에너지솔루션의 허수 주문 논란 이후 금융투자협회를 중심으로 기관투자자의 자격을 일부 제한하는 대책을 내놓았지만 본질적인 문제를 해소하긴 역부족이다.

아울러 해외의 경우 주관사가 공모주 물량 배정 비율을 비교적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IPO기업에 대해 강한 신뢰를 보내는 투자사를 중심으로 물량을 배정하는 방식이다. 이 경우 정량평가보다는 정성평가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만큼 상장 직후 오버행(대규모 매물 출회) 이슈에서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다.

반면 국내의 경우 증권 인수업무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정해진 의무배정비율을 지켜야한다. 유가증권시장의 경우 기관투자자(공모주하이일드펀드 대상 5% 포함)에게 50~55%, 일반투자자 25~30%, 우리사주조합 20% 등으로 정해졌다. 상대적으로 발행사와 주관사가 평가하기에 ‘알맞은 투자자’에게 배정하기 쉽지 않은 구조다.

이와 동시에 금융당국의 사실상 공모가 개입에 가까운 행위가 이뤄지면서 온전히 시장의 평가를 받기도 어렵다. 약 2년째 진행되고 있는 IPO 호황기 속에 IPO기업 대다수가 수차례에 걸쳐 정정 신고서를 제출하고 있다. 물론 지나친 몸값 거품을 경계해야겠지만 시장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밸류보다는 금감원의 심사 문턱을 넘을 수 있는 수준으로 몸값을 조정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IB업계 관계자는 “국내 IPO시장의 경우 상당히 엄격한 관리·감독 하에서 정해진 절차대로 진행되는 수순”이라며 “그러다보니 하우스별 밸류에이션 역량보다는 페이퍼 작업을 얼마나 잘하는지, 대관 능력이 얼마나 뛰어난지가 하우스 경쟁력으로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국내 IPO시장의 수요예측 제도가 자생적으로 자리잡지 않고 정부 주도로 형성된 시장이라는 점에서 파생되는 한계다. 점차 기관투자자의 참여를 유도해 시장 자율적으로 모험자본을 육성하고 있지만 여전히 제도적 테두리는 공고하다.

이는 국내 주관사 수수료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편에 머무르는 주된 이유이기도 하다. 국내 IPO시장의 인수수수료는 주관사가 일부 책임을 져야하는 일부 특례 상장 방식을 제외하면 통상 150~300bp 수준에 불과하다.

밸류에이션 등을 전담하는 주관사에게 주어지는 대표 주관 수수료의 경우 아직 온전히 정착되지 않았다. 지급되더라도 1~10bp 수준으로 형식적인 수준이다. 상대적으로 더 많은 인수물량을 맡기는 방식으로 대표 주관에 따른 보수를 지급하고는 있지만 실사부터 시작해 최종 밸류에이션, 공모주 배분 등 일련의 공모 절차를 주도하는 대표 주관사에 대한 대우는 그리 특별하지 않다.


◇불건전 인수업무에 대한 관리·감독 강화 필수..."소액투자자 보호 기조 속 불가능"

이에 공모 절차 전반에 걸쳐 주관사의 재량권을 확대하는 대신 책임을 지도록 하는 방식이 대안으로 제기된다. 주관사가 수요예측 과정에서 모든 기관투자자를 상대로 적격 투자자인지,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갈 주주사인지를 파악하기 어려운 만큼 투자설명회 등을 거치며 네트워크를 쌓은 기관투자자로만 참여 자격을 제한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이 경우 각 하우스마다의 네트워크와 나름의 기준을 통해 해당 IPO기업의 적정 기업가치를 산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바이오기업이라면 전문성과 노하우를 갖춰온 바이오 전문 펀드를 중심으로 수요예측을 진행하고 물량을 이들을 중심으로 배분하는 방식이다. 각 하우스별로 기관 네트워크를 점검하고 자체적으로 중장기적인 평판 관리를 하도록 유도하는 셈이다.

대신 이와 동시에 이해상충 배정이나 대가성 배정 등 불건전 인수업무에 대한 철저한 관리·감독이 이뤄져야한다. 공모 과정에 대한 자율성을 확대하는 대신 불건전 행위에 대한 감독을 강화해 시장의 신뢰성을 확보하는 수순이다.

다만 이에 대해 비현실적이라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국내 IPO시장에서 A주관사와 B주관사끼리 실질적인 밸류에이션 역량에서 큰 차이가 없다는 지적이다. 국내 자체적으로 인수 리스크를 짊어질 수 있는 회사의 덩치가 얼마나 되는지, 그룹 기조에 따라 어떤 딜을 선별하는지의 차이가 있을 뿐이라는 설명이다.

한 IB 관계자는 “한때 업종별 또는 특정 분야별로 하우스끼리 차별화를 꾀하던 시기도 있었지만 최근처럼 IPO시장이 호황기일 때에는 무차별해지기 마련”이라며 “국내 IPO시장에서 이른바 ‘꾼’으로 불리는 실무진 인력 풀이 그리 넓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해외와 달리 비교적 균일한 밸류에이션 및 네트워크 역량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밸류에이션에 대한 재량권이 주관사에 주어지더라도 발행사 입장에서 뭇매를 맞지 않기 위해서라도 안정적인 경로를 원하는 사례가 대다수일 가능성도 높다. 주관사 역시 IPO 실무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다수의 딜을 소화하기 위해선 밸류에이션에 대한 재량권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을 수 있다.

다른 IB 관계자는 “국내 정부와 감독당국이 소액투자자 참여 확대와 보호를 우선시하는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주관사에 넓은 재량권이 부여될 가능성도 없고 실제로 그렇게 된다고 해도 부차적인 추가 업무만 늘어나는 수준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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