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2년 04월 01일 07:48 thebell 유료서비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국내 벤처 생태계는 2000년대와 견줘보면 극적인 변화를 일궈냈다. 유동성이 넘쳐 흐르고 기업가치 1조원을 웃도는 유니콘이 속속 출현했다. 벤처캐피탈 심사역과 신생기업 대표, 자금을 공급하는 모태펀드 등이 격변을 이끈 주역이라면 스타트업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숨은 조력자'다.모험자본을 끌어들이는 투자 라운드의 동향을 취재하면서 피투자기업의 CFO를 만나는 일이 잦았다. 벤처펀드 등 주요 주주의 구성, 딜던(Deal Done) 후 지분율 변화, 밸류에이션을 꿰차고 있었다. 최고경영자(CEO) 못지않게 핵심 사업과 중장기 경영 전략의 방향을 둘러싼 설명도 탁월했다.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벤처캐피탈과 교류하는 징검다리 역할도 스타트업 CFO들이 능숙하게 해냈다. 운용사 심사역들을 알음알음 접촉해 자금 조달의 필요성을 어필하고 투자 유치 매력을 강조하는 데 잔뼈가 굵었다. 회사 몸값을 높게 치려는 경영자, 저렴한 단가로 신주를 사들이고 싶어하는 투자자의 입장을 조율하는 일도 오롯이 CFO의 몫이다.
외부 실탄 조달에만 스타트업 CFO의 업무 방점이 찍힌 건 아니다. 투자 이후까지 내다본다. 현금의 급격한 소진을 경계하면서 벤처캐피탈과 약속한 마일스톤(사업 지표 목표치) 달성 여부까지 점검해야 한다. 인력 채용과 마케팅, 연구·개발(R&D) 등 적재적소에 자금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방안을 짜느라 머리를 싸맨다.
물밑에서 활약한 CFO들의 노력 덕분에 벤처 생태계가 한층 두터워졌다. 허준녕 GS벤처스 대표는 영상 채팅 앱 '아자르' 운영사인 하이퍼커넥트의 CFO로 근무했다. 재임 기간 하이퍼커넥트는 1조9000억원 가치를 인정받고 '틴더' 앱을 갖춘 미국 매치그룹에 매각됐다. 송경찬 전 쿠팡 CFO도 재직 당시 소프트뱅크에서 10억달러 유치를 성사하는 데 일조했다.
최근 스타트업 CFO들의 근황을 살피니 다른 역할로 진화하는 양상이 눈에 띄었다. 자금 조달 구조를 설계하던 업무를 넘어 벤처펀드를 운용하는 인물들이 등장해서다.
이남일 직방 CFO가 대표적이다. 브리즈인베스트먼트의 일원으로 참여하면서 부동산 서비스와 IT를 융합한 프롭테크 분야에 포진한 유망 기업을 발굴하는 데 힘썼다. 홍성욱 해시드 CFO도 해시드벤처스 파트너를 겸임하며 블록체인 스타트업 육성에 기여하고 있다.
4년째 콘텐츠 벤처기업의 재무 부문을 총괄하는 한 임원은 CFO를 "은막에 가려진 만능 해결사"로 정의 내렸다. 눈에 띄지 않게 움직이면서 투자금을 확보해 산업의 팽창에 일조한다. 비용을 통제하는 덕분에 신생기업이 영속성을 유지한다. 스타트업 CFO들의 헌신에 힘입어 벤처 생태계의 미래가 밝을 것으로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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