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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판결문 뜯어보기]깊은 상처만 남긴 재판, 19개 혐의 모두 '무죄'였다①7년 가까운 치욕의 시간 견뎌, 족쇄 풀린 사법리스크

이상원 기자공개 2024-02-23 07:17:56

[편집자주]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관련 1심 재판에서 이재용 회장의 무죄가 확정됐다. 덕분에 삼성은 '국정 농단' 사태부터 7년여간 이어졌던 총수의 사법 리스크를 당장은 벗어나게 됐다. 비록 검찰이 항소를 했으나 재판부가 19개 모든 혐의에 '무죄'를 준만큼 2심 선고의 변동성도 크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이런 가운데 재판부가 삼성의 손을 완전히 들어준 까닭이 무엇인지도 관심을 끈다. 더벨이 입수한 해당 판결문에는 합병 과정에서 이 회장과 삼성의 어떠한 위법행위도 없었다는 재판부의 메시지가 명확히 담겨 있었다. 1589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판결문을 뜯어본다.

이 기사는 2024년 02월 21일 10:57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1252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관련해 '경영권 불법 승계' 혐의로 검찰에 기소된 이재용 회장이 1심 재판을 받는데 걸린 시간이다. '국정농단' 사건까지 더하면 이 회장과 삼성은 7년이 넘는 시간을 허비했다.

100번 넘는 공판과 총수가 재구속되는 사상 초유의 상황이 있었다. 삼성에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긴 일이다. 이 회장 개인에게도 치욕스러운 시간이었다.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패러다임의 변화를 가속화해야 했던 시기에 사법리스크로 발목이 잡혔다. 삼성은 말 그대로 시계 제로 상태였다.

그 결과는 '모든 혐의의 무죄'다. 검찰의 무리한 수사와 기소가 확인된 순간이다. 이제서야 이 회장은 오롯이 경영에만 전념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다.

◇재판부 "사업목적 자체가 합병"…검찰 압수수색도 '위법성'

2021년 4월 22일, 이재용 회장의 경영권 불법 승계 관련 1차 공판이 열렸다. 이로부터 1심 판결이 나오기까지 3년 5개월이란 시간이 걸렸다. 이 기간 이 회장은 매월 2~3차례씩 공판에 참석했다. 대통령 해외순방 경제 사절단, 경영 현안 해결 등 불가피한 일정을 제외하고는 빠짐없이 참석했다.

총 107번의 공판 가운데 97번을 출석하며 출석률 91%를 넘겼다. 심지어 2022년 회장 취임 첫날, 이듬해 취임 1주년 날에도 재판에 출석했다. 휠체어를 타며 측은지심을 유도하거나 각종 사유로 재판에 불출석했던 다른 재벌들의 과거 모습과 확실히 달랐다. 늘상 재판 시작 30분 전 법원에 도착했고 공판을 마친 뒤 법원을 나섰다.

이번 재판의 핵심은 2015년 이뤄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었다. 검찰은 이를 이 회장의 경영권을 강화와 승계만을 위한 절차라고 봤다. 이 과정에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 분식과 다양한 위법 행위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당초 합병과 회계 분식 건이 각각 별도 재판으로 진행되다가 2022년 2월 병합됐다.

법원은 이달 5일 1심 재판에서 이 회장을 비롯한 모든 피고인의 19개 혐의에 대해 전면 무죄를 선고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합병이 승계작업이라는 유일한 목적만으로 이뤄졌다고 볼 증거가 부족하다"며 "오히려 여러 증거나 사실관계에 의하면 삼성물산의 사업적 목적 또한 합병의 목적이라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결했다.

이런 결과가 나온 가장 큰 배경에는 검찰이 삼성으로부터 압수한 자료 대부분이 증거능력을 인정받지 못했다는 데 있다. 검찰은 18TB에 달하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백업 서버와 삼성바이오에피스 NAS 서버 등을 압수수색해 확보했다. 이를 포함해 삼성전자 등 10개 계열사를 37회, 임직원 주거지 등을 13회 압수수색 했다.

범죄와 관련한 자료만 입수해야 하지만 검찰은 선별 과정을 거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이에 법원은 검찰이 압수 대상과 방법의 제한을 위반한 것으로 보고 있다.

재판부는 "삼성바이오로직스 서버 등 및 삼성바이오에피스 서버에 대한 압수수색은 위법하다"며 "위법한 압수 수색으로 취득한 증거들은 모두 증거 능력이 없다"고 했다.


◇사법리스크 벗고 경영 전념 계기 마련

위법성을 띈 압수수색과 이어진 재판으로 삼성에 가해진 충격은 상당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산업의 패러다임이 예상할 수도 없는 방향으로 변해갔지만 삼성은 총수 사법 리스크에 움직일 수 없었다. 인수합병(M&A) 중단이 대표적이다. 2017년 하만 이후 소문만 무성할 뿐 아무런 소식도 없다.

재계 관계자는 "총수가 재판을 출석하고 구속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M&A 등 대규모 투자를 결정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CEO가 이를 결정하기에 부담이 클뿐더러 총수 없이도 잘 돌아간다는 이미지도 기업 입장에서는 피하고 싶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사이 삼성전자의 경쟁력은 크게 흔들렸다. DS부문은 2023년 14조8800억원의 적자를 내면서 매출 기준 글로벌 반도체 1위 자리를 인텔에 내주고 말았다.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2011년부터 세계 판매 1위를 지켜왔지만 지난해 12년 만에 애플에 추월을 허용했다. 경기 침체에 따른 수요 부진으로 가전 사업도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 회장 개인적으로도 치욕의 시간이었다. 앞서 국정농단에 휘말리며 두 차례 구속됐다. 이 과정에서 2021년 구치소 수감 기간 급성충수염 수술을 받기도 했다. 무엇보다 오랜 재판 과정에서 국민적 지탄을 받으며 마음의 상처가 컸다.

지난해 11월 1심 결심 공판 당시 이 회장은 최후진술을 통해 "어쩌다 이렇게 엉크러졌을까 자책도 들고 때론 답답함도 느꼈다"며 "지속적으로 회사에 이익을 창출하고 미래를 책임질 젊은 인재들에게 더 많은 일자리를 제공하려는 기본적 책무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삼성을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도약시켜야 하는 책임 의무 있다는 것을 늘 가슴에 새기고 있다"며 "제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붓겠으니 부디 저의 모든 역량을 온전히 앞으로 나아가는 데만 집중할 수 있도록 기회를 달라"고 호소했다. 1심 재판부는 이 회장의 목소리를 들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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