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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판결문 뜯어보기]'쟁점의 중심' 삼성바이오에피스, 단독지배 인정받았다③법원, 합병 당시 '콜옵션' 실질적 권리 부정…투자자들도 충분히 인지 판단

이상원 기자공개 2024-02-27 08:04:09

[편집자주]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관련 1심 재판에서 이재용 회장의 무죄가 확정됐다. 덕분에 삼성은 '국정 농단' 사태부터 7년여간 이어졌던 총수의 사법 리스크를 당장은 벗어나게 됐다. 비록 검찰이 항소를 했으나 재판부가 19개 모든 혐의에 '무죄'를 준만큼 2심 선고의 변동성도 크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이런 가운데 재판부가 삼성의 손을 완전히 들어준 까닭이 무엇인지도 관심을 끈다. 더벨이 입수한 해당 판결문에는 합병 과정에서 이 회장과 삼성의 어떠한 위법행위도 없었다는 재판부의 메시지가 명확히 담겨 있었다. 1589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판결문을 뜯어본다.

이 기사는 2024년 02월 23일 08:2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제일모직 자회사였던 삼성바이오로직스(이하 로직스)는 2012년 2월 바이오젠과 합작 형태로 바이오시밀러 개발사 삼성바이오에피스(이하 에피스)를 설립했다. 전체 출자금 3300억원 가운데 로직스는 85%에 해당하는 2805억원을 투입했다. 바이오젠은 495억원을 들여 15%의 지분을 취득했다.

합작투자계약에는 바이오젠이 콜옵션을 행사해 에피스 지분을 50%-1주까지 늘릴 수 있다는 조항이 포함됐다. 2018년 6월 바이오젠은 실제 콜옵션을 행사해 보유 지분을 그만큼 늘렸다. 당연히 로직스가 보유한 주식은 50%+1주로 줄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이를 두고 검찰은 에피스 설립 초기부터 로직스와 바이오젠이 '공동 지배'했다고 보고 있다. 이를 숨긴 채 '단독 지배'하는 것으로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것이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앞두고 로직스의 최대주주 제일모직의 주가를 부양하기 위해 불리한 콜옵션의 존재를 의도적으로 감췄다는 주장이다. 핵심 쟁점이 됐던 이 사안을 재판부는 어떻게 바라봤을까.

◇엇갈리는 양측 주장, 삼성 "공시 의무 다했다"

이에 앞서 바이오젠이 로직스로부터 에피스 총지분의 50%-1주까지 매수할 수 있는 콜옵션 권리 행사 기간을 먼저 봐야 한다. 계약에 따르면 국제회계 기준 순이익을 창출한 첫 회계연도 종료 후 90일 또는 회사 설립 6주년 기념일이 포함된 회계 분기 종료 후 90일 중 먼저 발생하는 날까지 권리 행사가 가능하다. 늦어도 2018년에는 콜옵션 행사가 가능했다는 의미다.

해당 조항은 제일모직이 보유한 로직스 지분가치, 주가 등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안이다. 향후 삼성의 바이오 사업 운영 방향 등과도 관련돼 있다. 그럼에도 로직스가 2014회계연도 재무제표에서 자세한 설명 없이 콜옵션 존재만 공시한 점을 검찰은 지적했다. 공동 지배에 관한 사실을 고의로 누락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검찰은 △콜옵션의 행사가격과 만기 △콜옵션 행사 시 로직스가 에피스 이사회, 주총에서 단독 결의할 수 없다는 사실 △바이오젠이 에피스의 개발·생산·판매·상장을 비롯한 자금 조달 등 주요 경영 활동에 대한 사전 동의권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 등의 사안을 공개하지 않은 점을 문제시했다.

검찰은 "삼성이 합병 공시 등에 로직스가 에피스 지분 90.3%를 보유하고 있는 종속 기업이라는 취지만 공유했다"며 "정작 가장 중요한 제일모직 주가와 합병 과정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내용을 기재하지 않고 로직스가 에피스를 단독으로 지배하고 주도적으로 경영할 수 있는 것처럼 가장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반해 삼성은 로직스가 공시 의무를 다했다는 주장이다. 2014회계연도 재무제표에서 에피스를 종속 기업으로 연결하는 방식으로 회계 처리했다. 그리고 주석의 '종속기업 및 공동기업투자' 부분에 에피스 지분 90.3%를 보유한 내용을 포함시켰다. '우발부채와 약정 사항'에는 바이오젠이 에피스 지분을 49.9%까지 매입 가능한 권리를 보유하고 있다고 명시했다.

삼성 측은 "바이오젠의 콜옵션 권리 존재는 로직스 재무제표 주석 공시를 통해 이미 알려진 상황이었다"며 "나머지 기타 합작투자계약 내용이 알려지지 않더라도 에피스에 대한 지배력 또는 주도적 경영 사실 등이 가장됐다고 볼 수 없다"고 맞받아쳤다.


◇법원 "검찰이 제출한 증거로는 부족", 삼성측 주장 모두 받아들여

재판부는 로직스가 2014회계연도 재무제표 작성 과정에서 범법 행위가 없었는지를 살펴봤다. 그 결과 법원은 검찰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삼성이 부정한 수단을 사용했다는 점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다는 의견이다. 삼성이 계약상 주요 내용을 은폐한 채 에피스를 주도적으로 경영할 수 있는 것처럼 가장했다고 볼 증거도 없다고 판단했다.

우선 법원은 2014회계연도 재무제표 주석에 콜옵션 관련 내용을 명시했다는 삼성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재무제표상의 주석 공시가 기업 회계 기준에 부합하다고 봤다. 2015년 7월 에피스 상장 관련 애널리스트 간담회 당시 참석자들이 콜옵션 존재를 인지하고 있었다는 점도 인정했다.

콜옵션 행사 여부를 떠나 합병 당시 로직스는 에피스 지분 90.3%를 보유해 단독으로 지배하고 있었다. 대표이사를 포함한 에피스의 이사회 5인 중 4인을 지명할 수 있는 권리도 로직스가 보유하고 있었다.

이를 근거로 법원은 당시 로직스가 에피스를 주도적으로 지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따라서 콜옵션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이 없더라도 에피스에 대한 지배권, 주도적 경영을 가장했다고는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검찰은 설립 초기부터 로직스와 바이오젠이 공동 지배했다고 주장하나 회계 기준에 의하면 콜옵션은 당시 실질적인 권리가 아니었고 바이오젠의 회계상 방어권에 해당한다"며 "기타 약정상 권리들도 에피스에 대한 지배력 판단에 고려되는 사안이 아니었다. 로직스가 2014회계연도에 에피스에 대한 단독 지배력을 보유하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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