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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양행 레짐 시프트]회장직 신설 벤치마크 'LG화학' 인재관리에 성과있다정통 LG맨과 외부인력 고르게 분포…우수 인재 영입, 그리고 보상은 당연한 일

차지현 기자공개 2024-03-19 10:55:51

[편집자주]

'지배하지 않는다'로 압축되는 유일한 정신으로 100년 역사를 가진 유한양행이 변하고 있다. 30년만에 회장 및 부회장직을 신설하는 한편 누군가는 수년째 고위 경영직에 자리하고 있다. '순혈'을 제치고 외부 인력이 경영 전면에 나서는 변화도 있다. 창업주 유일한 박사가 꾸린 스튜어드십 역린을 건드는 것일까, 글로벌 혁신신약 렉라자의 상업화를 위한 불가피한 결단일까. 더벨은 '레짐 시프트(Regime shift)'를 겪고 있는 유한양행을 들여다 봤다.

이 기사는 2024년 03월 18일 16:48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주인 없는 기업'의 회장·부회장직 신설이라는 파격의 뒤에는 순혈주의 타파의 의지가 있다. 더 많은 승진 기회를 제공하면서 우수한 외부 인재들을 껴안기 위해서다.

이번 직제 개편 벤치마크 대상은 LG화학이었다는 데 주목된다. 보수적 색채가 짙다는 평가를 받았던 LG그룹은 고위급 임원을 중심으로 적극적인 외부 수혈에 나서면서 현 체제를 구축했다. LG화학의 상황을 추적하면 유한양행이 그리는 청사진을 짐작할 수 있다.

◇벤치마킹한 LG화학, 부회장·사장급 내외부 인사 균등 배치

조욱제 유한양행 대표이사 사장은 15일 정기주주총회가 끝난 직후 더벨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회장 및 부회장 등 고위직급 신설은 LG화학을 벤치마크 한 것"이라고 말했다. LG화학의 직제를 살펴보면 유한양행과 닮아있는 곳이 있다.

LG화학 사업부문은 크게 △석유화학 △첨단소재 △생명과학으로 나뉜다. 이들 부문 아래 사업부들이 포진해 있다. 석유화학 사업부문 아래 8개, 첨단소재 사업부문 아래 5개, 생명과학 사업부문 아래 4개 사업부가 존재한다.

이들 사업부문 정점엔 2명의 부회장이 있다. 권봉석 지주사 LG 대표이사와 신학철 LG화학 대표이사 투톱 체제다. 그 아래 차동석 최고재무책임자(CFO) 겸 최고리스크관리책임자(CRO)와 손지웅 생명과학사업본부장이 사장 직함을 달고 있다.

부사장급 임원은 총 5명이다. 김정대 정도경영담당, 남철 첨단소재사업본부장, 노국래 석유화학사업본부장, 이향목 양극재사업부장 등이다. 올해 정기인사를 기점으로 허성우 석유화학 글로벌사업추진총괄과 김성민 최고인사책임자(CHO)는 물러나고 이종구 최고기술책임자(CTO)가 전무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핵심은 정통 LG맨과 외부 인력이 고위직을 고르게 나눠 맡고있다는 점이다. 부사장급 이상 임원에서 외부 영입 인사는 신학철 부회장, 손지웅 사장, 허성우 부사장이 해당한다. 각각 2명으로 구성한 부회장·사장 직급의 절반은 내부 인사고 나머지 절반은 외부 인사다.

사실 LG그룹은 그동안 보수적이고도 폐쇄적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이런 분위기에 변화가 감지된 건 구광모 LG그룹 회장 부임 이후부터다. 나이보다 성과와 능력에 따른 임원 인사가 이뤄지고 최고경영자(CEO)를 외부 인사로 세우는 사례가 늘었다. 이런 기조는 자연스레 LG화학에도 스며들었다.

특히 신학철 부회장이 상징적인 사례다. 미국 3M 수석부회장 출신인 그는 2019년 1월 LG화학에 CEO로 합류했다. 이는 구 회장이 부임한 후 처음으로 외부 인사를 영입한 사례인 동시에 LG화학 역사상 외부에서 CEO를 영입한 첫 사례였다.

◇직제 개편의 의미, 뼛속 '유한맨' 아니어도 기회 제공

유한양행이 지향하는 방향도 비슷하다. 재직 연수만 30년이 넘는 직원들이 주요 보직을 맡았던 인사 체계에 변화를 주고 있는 게 골자다. 국내 최초로 전문경영인 제도를 도입한 유한양행은 공채 출신 평사원이 CEO에 오르는 게 전통이자 암묵적인 룰이었다. 이런 시스템은 내부 임직원의 동기를 부여하고 뼛속까지 '유한맨'이 의사결정을 한다는 점에서 강점이 됐다.

하지만 단점도 뚜렷했다. 오너는 없어도 리스크가 큰 신약개발 사업을 책임지고 이끌 수장이 필요했다. 총대를 맬 사람이 없다 보니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 어려운 연구개발(R&D) 투자에 소극적인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회사 규모가 커지는 데 따라 외부 인력은 늘어났지만 이들에겐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이 존재했다. 작년 한 해 동안만 경력직 임원 3명이 입사했다. 자연스레 외부 인사들이 위로 올라갈 수 있는 보상 체계가 요구됐다. 외부인재도 성장할 수 있다는 동기부여가 필요했다. 순혈주의에 물든 내부인력들이 묘하게 '외부인사'를 경시하는 문화도 타파할 필요가 있었다.

현재 유한양행 사장 2명과 부사장 6명은 정확히 절반씩 유한맨과 경력직으로 구성된다. LG화학을 연상케하는 구성이다.

외부 인력인 김열홍 R&D 총괄사장 아래 역시 외부 인력인 3명의 부사장(오세웅·임효영·이영미)이 있다. 유한맨인 조욱제 사장 아래에는 역시 정통 유한맨인 부사장 3명(이병만·이영래·유재천)이 있다.


LG화학이 문호를 개방한 이후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생명과학 사업무문으로만 봐도 7000억원 규모의 미국 바이오텍 아베오파마슈티컬스 인수 등 굵직한 결정들이 현재의 직급 체제 하에 신속하게 이뤄졌다. 가능성이 높은 파이프라인에 대한 선택과 집중 전략도 눈에 띈다.

무엇보다 우수 인재 확보를 위한 조직 체제를 마련하는 건 세계적인 트렌드에도 부합한다. 유한양행처럼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내세우는 미국 존슨앤드존슨(J&J)의 경우에도 회사 발전을 위해 외부 출신 경영진을 선임한 사례가 있다. P&G 출신 제임스 버크는 J&J 재직 21년 만에 CEO에 올라 37년을 회사에서 근무했다.

업계 관계자는 "전문경영인 체제로 투명한 의사결정 시스템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신약개발처럼 리스크가 큰 사업의 경우 빠른 의사결정을 내릴 책임자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라면서 "R&D가 중심이 되는 제약산업은 인재 영입이 중요한 만큼 이번 직제 개편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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