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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만원짜리 회의의 무게 [thebell note]

조은아 기자공개 2021-06-10 08:11:15

이 기사는 2021년 06월 09일 07:51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얼마 전 기업들이 공시한 지배구조보고서를 보다가 적잖이 놀랐다. 롯데케미칼이 지난해 사외이사만 참석하는 회의를 한 번도 열지 않았는데 그 이유가 해맑았다.

사외이사들이 이사회 개최 전후에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는 건데 한마디로 따로 열 필요가 없다는 설명이다. 회의 시간에 촉박해 도착한 뒤 간단히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고 바로 회의를 시작하는 모습이 떠올랐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롯데케미칼 자산규모는 21조원이며 임직원 수는 4400명에 이른다. 소액주주는 무려 6만6000명이 넘는다. 롯데케미칼은 지난해 14차례의 이사회를 열어 56건의 안건을 가결했다. 이 중에 유상증자 참여, 타법인 지분 매각, 해외법인 통합 등 수십억~수백억원이 오가는 중대한 결정도 여럿 있었다.

다른 기업들의 지배구조보고서를 보면서 다시 한 번 놀랐다. 이런 기업이 생각보다 많았기 때문이다. 이들 대부분은 ‘필요하다면 열겠다’ 혹은 ‘사외이사들이 요청한다면 지원하겠다’ 등의 면피용 문구를 넣는 것도 잊지 않았다.

또 다시 해묵은 사외이사 얘기다. 최근 몇 년 사이 기업 경영의 중심이 이사회로 이동하면서 사외이사 관련 제도가 꾸준히 개선됐음에도 여전히 허점이 많고 갈 길이 멀다.

기업이 사외이사만 참석하는 회의를 열어야 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사외이사들이 이사회 개최 전 관련 정보를 충분히 제공받는다고 해도 내부 경영진이 없는 곳에서 의견을 나누는 과정 역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독립성’은 사외이사 제도의 근간이다. 지배구조 평정기관이 사외이사만 참석하는 회의를 열 것을 권고하는 이유도 독립적인 환경에서 자유로운 논의가 이뤄지는 게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실제 LG화학은 지난해 사외이사만 참석하는 회의를 10차례나 열었다.

사외이사 제도는 양날의 검이다. 내부 경영진을 감시하고 견제한다는 측면에서 꼭 필요하지만 해당 회사에 몸담고 있지 않다는 점, 자신들의 결정에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오히려 더 조심스럽고 정교한 쓰임이 요구된다. 경영 실패나 실적 부진을 이유로 고개를 숙이고 자리에서 물러나는 사내이사들은 종종 볼 수 있지만 사외이사는 볼 수 없다.

최근 몇 년 사이 사외이사를 향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남들보다 화려한 사외이사진을 갖추려는 기업이 많아지고 있다. 독특한 이력의 사외이사를 선임해 다양성 측면에서 주목을 받지만 정작 그 뒤는 신경쓰지 않는 모양새다.

이사회는 보통 1년에 10차례 열린다. 지난해 국내 300대 기업의 사외이사 연봉 평균은 5000억원으로 나타났다. 이사회 한 번에 500만원인 셈이다. 이사회의 무게가 느껴지는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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