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4년 04월 19일 07:0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고향인 전라남도 목포에는 동원 참치캔을 OEM 방식으로 생산하는 삼진물산이 있다. 일명 '참치 공장'이라 불리는 삼진물산은 과거 이 지역 젊은이들에게 쏠쏠한 아르바이트 장소로도 이름을 알렸다.2005년 최저 임금은 2900원. 암묵적으로 최저 임금을 지키지 않는 것이 당연하던 20여 년 전 하루 일당으로 3만원 이상을 손에 쥘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었다. 하루만 일을 하고 그만둬도 임금을 지급했다. 노동의 강도가 그만큼 셌기 때문이다.
대학교 1학년 겨울방학에 고향에 내려가 친구 세명과 함께 챌린지 개념으로 삼진물산으로 향했다. 새벽 6시에 집을 나가 공장에 도착해서 참치캔이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내려오면 빠르게 상자에 담는 작업을 반복했다. 선물용 참치세트의 상자를 접는 것도 직접 손으로 했다. 작업반장의 눈에 띄어 함께 구호를 외치며 수백장의 상자를 접어냈고 근육통에 시달렸다.
극한 노동의 시간을 버텨낸다면 인생에서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도 생겼다. 하지만 결국 체력이 바닥난 친구들이 중단 선언을 했다. 혼자는 버티기 힘들었기에 '체험 삶의 현장' 챌린지도 2주 만에 막을 내렸다.
잊고 있던 18년 전의 기억을 더듬은 것은 얼마 전 승진한 김남정 동원그룹 회장의 프로필을 찾아보면서다. 김 회장은 고려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원산업 신입사원으로 입사했다. 창원의 통조림 공장 생산직부터 시작했다는 포인트에 꽂혔다. 짧았지만 강렬한 노동의 쓴 맛을 맛봤기 때문에 감정이 이입됐다.
김 회장이 하얀색 유니폼과 모자를 쓰고 참치 살코기에서 혈합육과 가시를 손으로 직접 골라내고 있는 모습이 상상이 됐다. 지게차로 참치 상자를 상하차 하는 모습도 그려졌다. 주인 의식이 원동력이 됐겠지만 오너 2세의 경영 수업 치고는 강도가 센 편이었을 것이다.
해외에서 공부를 하고 간부급으로 사회 생활을 시작한 다른 2~3세 경영인들과는 확실히 결이 다르다. 일하는 사람의 '애환'을 몸으로 직접 깨달으며 경영을 배운 리더 중 한명이다. 현장부터 감각을 키운 것은 김 회장이 동원그룹의 포트폴리오 확장을 위한 M&A를 성공적으로 추진할 수 있었던 자양분이 된 것으로 보였다.
안정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최근 약간의 잡음이 일고 있다. 동원그룹은 일찍부터 2세 승계도 마치고 지주사 전환을 통해 지배구조도 개편했다. 진정성 있는 행보와 무관하게 최근 동원산업의 자사주 소각 과정에서 때아닌 '자진 상폐논란'이 제기됐다.
기업 브랜드 이미지, 규모 등과 걸맞지 않는 당황스러운 논란을 파고 들어가보니 주가에 불만을 품은 소액주주들의 몽니였다. 그동안 '우리끼리 잘하면 된다'라는 철학으로 묵묵하게 사업을 키우되 회사의 가치를 외부에 알리는데 소홀했던 결과로 보여진다.
김 회장은 적극적인 소통을 통해 밸류에이션을 끌어올려야 하는 첫 번째 과제를 받은 셈이다. 다행히 변화는 시작됐다. 그동안 진행하지 않았던 IR 설명회를 개최하고 내부적으로 브랜드 가치 제고를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다. 핵심 사업에서 이익을 쌓는 것도 중요하지만 환경에 발맞춰 유연하게 경영 전략을 짜는 것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풀이된다.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출항을 시작한 김남정호(號)의 항해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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