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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 산업의 부실공사 [thebell note]

이지혜 기자공개 2024-05-02 10:29:14

이 기사는 2024년 05월 01일 07:09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제대로 된 산업이 되려면 갈 길이 멀었죠.”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성장을 이끈 주역으로서 소회를 묻자 한 엔터사 대표이사는 이렇게 말했다. K-팝(Pop)의 위상을 고려하면 참 의외였다. 빌보드 핫100 순위권에 수시로 랭크되고 인기 아티스트는 글로벌 활동을 당연한 수순으로 여긴다. 그런데 엔터산업이 아직도 성숙하지 못했다니.

겸양으로 여기려 했는데 그럴 수 없다. 하이브 산하 레이블인 어도어에서 경영권 탈취 의혹이 제기됐다. 민희진 대표가 어도어의 경영권을 빼앗으려고 시도한 정황이 드러났다면서 하이브는 감사권을 발동하는 동시에 민 대표를 해임하기로 결정, 배임 혐의로 고발했다.

참혹한 폭로전도 이어졌다. 하이브는 민 대표가 주술경영을 했다고 밝혔고 민 대표는 눈물과 욕설, 분노와 억울함이 가득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에서 방시혁 하이브 이사회 의장, 박지원 대표이사와 나눈 사적인 대화 내용까지 공개했다.


하이브는 민 대표의 주장에 조목조목 반박했지만 언론과 투자자의 반응은 떨떠름해 보인다. 처음에는 하이브의 멀티 레이블 체제가 지닌 시스템, 경영 안정성의 문제로 여겨졌던 게 지금은 방 의장 등 오너와 자회사 대표 간 감정싸움 등으로 비춰져서다. 많은 언론사가 이런 갈등을 놓고 ‘알력다툼’, ‘진흙탕 싸움’이라고까지 표현한다.

그래서인지 엔터 관련 펀드를 운용하는 지인은 “진위여부를 떠나 개인에 의해 좌우되는 산업은 리스크가 너무 크다”며 “역사가 짧은데 급성장해서 그런지 뿌리가 약하다”고 엔터주에 투자하려던 다른 지인을 말렸다.

엔터산업 담당 기자로서 정말 그렇게 생각하느냐는 지인에게 뚜렷한 답을 해 줄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하이브는 이번 사태로 인해 불과 일주일 새 1조2000억원에 이르는 시가총액이 증발되고 말았다.

이번 사태 하나만 터졌으면 우연이라고 항변할 수 있었겠지만 벌써 수년 동안 엔터업계는 바람 잘 날이 없었다. 마약파문이 끝나고 나니 카카오엔터테인먼트에서 지난해 내내 대형 이슈가 터졌다.

해외에서 1조200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는 낭보가 날아든 것도 잠시 경영권 인수전이 벌어졌고 카카오그룹 핵심 관계자들이 구속됐다. 당시 SM엔터테인먼트 경영진도 유튜브에서 폭로전을 펼쳤다. 타 엔터사 메가IP(지식재산권)의 재계약 여부에 시가총액 수천억원이 증발한 게 무난한 이슈처럼 느껴질 정도다.

글로벌 K팝 열풍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주요 엔터사들이 지배구조, 의사결정 구조 등에 있어서 안정적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다는 뜻이다. 부실한 철근으로 쌓아 올린 화려한 건물처럼 말이다.

그래서인지 그 대표와 식사자리가 며칠 동안 머리에서 자꾸 맴돈다. 그는 식사를 마치고 자리를 뜨면서 말했다. “K팝 산업이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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