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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기술공단, 신동수-신재호의 '50년 동행' [전환기 엔지니어링업]②76년 의기투합…'총회장-회장' 찰떡궁합 성장 이끌어

이상균 기자공개 2018-01-05 08:22:21

[편집자주]

엔지니어링은 기술 기반의 설계 산업이다. 본격적인 건설 공사에 앞서 인프라를 구축하는 핵심 역할을 맡고 있다. 기술 인력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산업이지만 정작 건설업에 비해 인지도가 낮다. 주요 수익원이었던 사회간접자본(SOC) 발주가 줄어드는 등 전환기를 맞고 있다. 더벨이 베일에 가려졌던 엔지니어링 업체들의 현주소와 향후 행보 등을 점검한다.

이 기사는 2018년 01월 03일 10:5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신동수 회장은 동명기술공단(이하 동명)을 인수했지만 험난한 경영행보를 이어갔다. 수주 경쟁이 날로 치열해졌고 자금사정은 악화됐다. 신 회장의 좌절도 이어졌다. 이때 신 회장의 경영복귀를 이끈 이가 신재호(사진)다. 이들은 쓰러져가던 동명을 다시 일으켜 세웠고 함께 50년간 동행했다. 이들 덕분에 동명은 국내 최고의 엔지니어링 업체로 발돋움했다.

◇고난의 70년대 거쳐 80년대부터 사세 확장

크기변환_신재호 회장님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만류를 뒤로 하고 신 회장이 동명 경영일선에 복귀한 것은 그의 나이 40세가 되던 해였다. 호기롭게 동명을 인수했지만 경영상황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업체 간 경쟁이 심해 사업수주가 쉽지 않았다. 기술인으로 설계만 하다 보니 경영경험이 부족한 게 발목을 잡았다. 가장 큰 어려움은 자금압박이었다.

실의에 빠진 신 회장은 결국 3년 만에 다시 회사를 신현주 사장에 넘기고 동명을 떠났다. 두 번째 이탈이었다. 당시에는 시공사들의 해외진출이 활발하던 시기다. 신 회장은 1974년 네팔, 방글라데시, 말레이시아 등에 활발히 진출한 고려개발로 적을 옮겼다.

정천석 고려개발 회장의 환대를 받으며 그는 말레이시아 시바(Siba) 지역의 교량 건설 현장소장을 맡았다. 이곳은 공산 게릴라가 준동하는 위험지역으로 난공사에 채산성이 낮다며 상당수 국내 건설사들이 기피하던 지역이다. 교량의 교각 기초심도가 30m에 교각높이도 100m나 돼 설계변경도 자주 이뤄졌다. 밀림의 무더위와 풍토병, 향수병을 감내하면서 신 회장은 2년 만에 공사를 완료하고 1976년 휴가차 일시 귀국했다.

고국에 돌아온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이는 동명에서 인연을 맺은 오랜 동료 신재호다. 그를 통해 서울 지하철 2호선 건설 사업이 본격화되는 등 엔지니어링 시장이 점차 활기를 띠고 있지만 동명은 여전히 어려운 상태에 처해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이들은 대책을 논의하면서 동명을 재건하기로 약속했다. 동명의 전환점이 만들어진 순간이다. 신 회장은 1976년 다시 동명에 입성했다.

고난의 1970년대를 보낸 이후 동명은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사세를 확장하기 시작했다. 중앙고속도로와 중부고속도로, 남해고속도로, 88고속도로 등 건설 사업에 참여하며 도로분야 최고 지위를 확보했다. 1990년대에는 도시계획 분야로도 영역을 넓혔다. 교량도 동명의 강점 중 하나다. 통영대교와 강화대교, 거제대교, 강동대교, 천호대교 등의 건설 사업에 참여했다.

◇'작은 거인' 신동수, 영원한 기술인

동명이 오너 부재를 극복하고 엔지니어링 선두 업체로 발돋움한 것은 신 회장의 공로가 크지만 그 이면에는 신재호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신재호는 1939년생으로 신 회장과 같은 충북 청원 출신이다. 이들은 50년을 함께 하면서 동업자 이상의 관계를 이어갔다.

회사 내에서는 신동수 총회장, 신재호 회장으로 직함을 구분한다. 이제껏 단 한 번도 경영권 분쟁이 발생하지 않을 정도로 완벽한 호흡을 자랑한다. 이들은 80이 넘은 지금도 오전 9시 반 출근, 오후 5시 반 퇴근 시간을 지키며 여전히 현업에서 근무 중이다.

신동수 총회장은 경영자보다는 영원한 기술인으로 기억되길 소망할 정도로 자부심이 강하다. 한국건설기술인협회에서 발행한 경력증명서에는 그의 설계참여 일수가 1만 6070일로 기록돼 있다. 연수로는 44년에 달한다. 엔지니어링 업계는 그를 ‘작은 거인'이라고 칭한다. 경영자로서도 나무랄 데가 없다. 특히 판단력이 빠르기로 정평이 나 있다. 지금도 결제 과정에서 회사의 중장기적인 사업 방향을 잡아준다고 한다.

신재호 회장은 1963년 3월 친척의 소개로 동명(옛 국전설계사무소)에 입사했다. 1969년 잠시 동명을 떠나 한국도시건설기술공사에서 근무했지만 2년 만에 회사 부도로 퇴직했다. 이후 개인 사업을 하면서 고양, 파주, 원당, 일산, 벽제 등 경기북부 지역의 도시계획 관련 설계 사업을 석권했다. 1975년 다시 동명에 입사한 뒤 1976년 신동수 회장을 합류시키는데 혁혁한 공로를 세웠다.

측량 전문가로 명성을 떨친 그는 자신의 성공비결을 사람이라고 말하는 등 덕장의 면모를 보인다. 과거에 신세를 입은 사람, 지금 신세를 지고 있는 사람, 앞으로 신세를 지게 될 사람에게 잘 대해준 것이 성공으로 이어졌다고 회고한다. 동명 관계자는 "지금도 신재호 회장이 신동수 총회장을 각별히 모시고 있다"며 "신동수 총회장이 회사를 이끌어가고 그 뒤에서 신재호 회장이 뒷받침을 해주는 형태로 50년 경영을 이어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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