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8년 04월 03일 15:59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지난 2012년 말, SBS는 <최후의 제국>이라는 4부작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미국에서 발견되는 극단적인 부의 양극화 현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자본주의라는 ‘고장난 시스템'을 극복하기 위한 해법을 찾아가는 내용이었다. 미국의 빈민들과 대비되는, 가난하지만 행복해 보이는 부탄이나 파푸아뉴기니의 사람들의 삶을 보여줘 큰 울림이 있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 다큐에서 지금까지도 기억에 또렷이 남아 있는 장면이 하나 있는데, 실직 이후 살던 집에서 쫓겨나 두 아이들과 함께 좁은 차에서 생활을 하는 부부가 등장하는 부분이다. 교회에서 무료로 나눠주는 음식을 챙겨 다시 차를 타고 떠나려 하는데, 5살쯤 되는 아들래미가 싫다고 울며 발버둥친다. 그 때 아빠가 아이를 달래기 위해 "버거킹 가자"라고 뻔한 거짓말을 하는 슬픈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TV를 통해 그런 슬픈 장면을 목격하는 것과, 자본주의의 본산이자 세계 최강국인 미국에서 빈곤에 처한 어린이가 20%가 넘는다는 사실을 현실로 인식하는 것은 분명 다른 일이다. 미국에서 홈리스가 늘어남에 따라 어린이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다는 사실은, 그저 나와는 상관없는 먼 나라 이야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달 조용히 개봉된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우리가 애써 외면하고 있는 미국의 그 잔혹한 현실을 스크린에 고스란히 담은 놀랍고도 충격적인 작품이다. ‘꿈과 환상의 나라' 올랜도 디즈니월드 바로 근처에 살지만, 그 곳에 가보기는커녕 집이 없어 근처 모텔촌에서 살고 있는 아이들의 일상을 담담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한다.

디즈니월드 바로 옆 동네 모텔촌에 사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플로리다 프로젝트'

영화의 주인공인 무디는 제대로 된 직업이 없는 젊은 싱글맘 엄마와 함께, 하루 숙박비 4만원을 겨우겨우 마련해가며 사는 6살짜리 여자아이다.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지만 황량하기 이를 대 없는 동네를 쏘다니며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과 함께 그녀가 맞닥뜨리는 일련의 사건들을 보고 있으면, 관객들은 끊임 없이 놀라고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그렇다고 그들의 집이자 놀이터인 모텔촌이 위험으로만 가득한 공간이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관객들을 놀라게 하고 불편하게 하는 핵심은, 거기서 살아가는 법을 너무도 일찍 깨우쳐버린 듯한 아이들의 모습이다. 그들은 어른들을 상대로 거짓말을 일삼고, 거침없이 욕설을 내뱉으며, 장난 삼아 대형 사고를 일으키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그런 아이들의 모습으로 관객들의 죄책감을 자극했기 때문에, 이 영화에 수많은 찬사가 쏟아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아이스크림 하나를 끝까지 한 입씩 나눠먹고, 모텔 위의 무지개를 같이 바라보며 즐거워하고, 방목 중인 소들에게 다가가 사파리를 한다고 좋아하는 아이들의 천진함이 오히려 관객의 가슴을 쓰라리게 만드는 핵심이다.

주목할 것은 이 영화의 제목 <플로리다 프로젝트>가 원래 영화 속 상황과는 정반대의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선택되었다는 사실이다. 제2의 디즈니랜드를 건설한다는 목표로 장소를 물색하다가, 플로리다 올랜도를 선정한 디즈니가 1965년 디즈니월드의 건설을 시작하면서 붙인 이름이 바로 ‘플로리다 프로젝트'였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삶을 위해 신대륙에 정착한 이민자들의 후손들이 지금 겪고 있는 사회경제적 모순을, 디즈니월드 건설 이후 50여년 가까이 된 올랜도의 모습을 통해 보여주려고 한 감독의 의도는 그런 의미에서 매우 성공적이다. "무니와 친구들의 디즈니월드보다 신나는 무지개 어드벤처"란 어이 없는 국내 홍보 문구에 화가 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

SBS 창사특집대기획 <최후의 제국>: http://tv.sbs.co.kr/capitalism/
<플로리다 프로젝트> 예고편: https://www.youtube.com/watch?v=Pe1quJ48Ga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