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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칼럼]대학의 기금관리와 책임투자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공개 2018-07-30 08:01:27

이 기사는 2018년 07월 23일 10:0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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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하버드대학교의 발전기금(Harvard Endowment)은 2015년 기준으로 376억 달러다. 우리 돈으로 약 40조 원 정도 되는 셈이다. 이로써 하버드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액수의 발전기금을 보유한 대학교다. 그래서 하버드는 대학을 거느린 헤지펀드라는 농담도 있다. 대학기금들은 통상 연간 기금 규모의 5%까지만 지출할 수 있다는 규정을 두고 있는데 하버드의 경우 기금이 너무 커서 5%라 해도 2조 원쯤 되어버린다.

전반적으로 미국 대학들의 기금이 커진 것은 미국 특유의 기부문화와 미국 사회의 경제적 불평등 심화, 투자기법의 발달 때문이다. 미국의 800개 대학이 약 5천억 달러의 기금을 보유하고 있다. 대학기금에 기부하면 세금혜택이 있고 대학기금의 수익에 면세 혜택이 붙는 것도 여기에 한몫했다. 영국에서 가장 큰 케임브리지대학교 기금은 28억 파운드다. 하버드의 10% 밖에 안된다.

그러나 기금들이 커지는 동시에 학생들은 학비 때문에 빚에 시달리는 것이 현실이다. 기금들이 학생들의 등록금 채무에 무슨 도움을 주고 있는가라는 비판이 있다. 또, 그렇지 않아도 돈이 많은 하버드 같은 학교에 다시 세금혜택까지 수반되면서 돈이 집중되는 현상도 문제시된다. 사실 하버드는 이렇게 많은 돈이 꼭 필요하지는 않다.

대학교는 이익을 남기는 영리 사업체가 아니다. 그래서 기금은 대학의 운영에서 파생되어 나오는 돈이 아니라 대부분 기부금에서 조성된 것이다. 대학에 기부금을 내는 사람들은 교육과 연구, 기타 대학이 운영되는 데 필요한 재원으로 써달라고 돈을 낸다. 대학은 이 돈을 소중히 다루어서 필요한 곳에 배분해야 한다.

돈은 한꺼번에 다 쓰는 것이 아니라 쌓이기 때문에 그냥 두기보다는 불리면 좋다. 투자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투자에는 위험이 따른다. 돈을 잃을 수도 있는 것이 투자다. 그런데 잘 써달라고 낸 돈이 투자를 하다가 날라가 버리면? 기부자들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황망한 일이 될 것이다. 그래서 대학의 기금은 대박을 바라지 않고 착실한 수익을 가져다 주는 안전한 자산에 주로 투자된다.

투자 실적이 좋을수록 학생들의 복지가 증대된다. 투자수익으로 등록금 의존도를 줄이면 장학금이 늘어난다. 그밖에 학교가 학생들에게 이것저것 해 줄 수 있는 것들이 늘어난다. 운용을 잘 해야 하는 이유다. 프린스턴대학교 같이 학생 수가 적은 학교는 기금 수익으로 대학 예산의 절반을 충당하고 있다.

국내의 한 대학이 상당한 금액을 투자손실로 잃어버린 적이 있다. 관련된 교수들이 모두 시말서를 썼다고 한다. 왜냐하면 교수들이 직접 기금을 운용했기 때문이다. 교수들이 프로들과 상대해서 투자운용을 한다는 것이 황당하지만 그렇다고 보수를 지불해야 하는 전문가에게 그렇게 크지도 않은 기금의 운용을 맡기기도 애매하다.

하버드의 대학기금은 하버드대의 다른 모든 자산과 함께 하버드관리회사(Harvard Management Company: HMC)가 운용한다. 1974년에 설립된 HMC는 하버드대 소유 투자회사다. 금속으로 지어진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보스턴 미국연방준비은행 건물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 발전기금을 구성하는 약 1만 2천 개의 펀드를 관리한다. 기금의 1/3은 직접 운용하고 나머지는 외부에 맡긴다.

대학도 투자의 정석에 따라 투자해야 하기 때문에 투자대상은 다양하다. 주식과 회사채 외에 대체투자인 헤지펀드나 사모펀드, 부동산에도 상당한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기금 투자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역시 주식이다. 주식투자는 투자대상 기업의 사업과 경영진을 보고 하게 된다. 물론 대학은 돈 잘 번다고 아무 기업에나 투자를 할 수는 없다. 일반적으로 기관투자자들은 대상 기업의 수익성 외에도 환경, 사회, 지배구조(ESG) 등을 감안한 사회적 책임투자를 해야 하는데 대학은 더 그렇다.

또, 대학의 기금은 주로 미래 세대의 교육과 연구에 사용될 것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대학이 단타 매매로 투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즉, 대학은 장기적 관점에서 기금을 투자에 사용하게 된다.

이런 원칙들이 HMC에는 ‘책임투자원칙'(PRI: Principles for Responsible Investment)이라는 모토 하에 정리되어 있다. 이 원칙은 유엔의 지원 하에 만들어 진 것이다. 글로벌 투자 커뮤니티 구성원들과 같이 소통하면서 ESG를 반영한 투자전략과 실무를 공유한다는 것이다. 하버드는 PRI를 최초로 선택한 학교다.

가끔 특정 기업에 하는 투자가 대학의 이념이나 정체성과 양립될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한다. 하버드의 경우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인종차별정책이 시행될 때 그에 연관된 기업의 주식을 처분하게 한 적이 있다. 담배회사 주식은 사지 않으며 수단의 다푸르 사태에 연루된 회사의 주식도 처분했다. 이른바 ‘착한 자본'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대학이 하는 투자는 대학이 사회에 기여해야 되는 교육기관이라는 사실과 기부자들의 뜻도 그와 같다는 이해에 기초해서 행해진다. 또, 기금의 투자는 경제적 관점에서만 집행되고 정치적 목적을 감안하거나 대학과 무관한 사회적 이슈를 관철시키는 압력 수단으로 사용될 수 없다. 그런 행동은 대학의 이념과 맞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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