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9년 04월 01일 07:27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아마도 '어닝쇼크'를 피하려 했을 것이다. 아시아나항공은 지난해 내내 실적이 개선되고 있다고 어필해 왔다. 이제 연간 실적을 발표해 대미를 장식할 시점이었다. 하지만 난데없이 이어진 외부감사인의 지적은 날벼락과도 같았다. 아시아나항공은 끝내 대규모 손실을 반영하기보다 내부 의견을 굽히지 않기로 했다.결과로 돌아온 건 '설마'했던 한정의견이었다. 아시아나항공의 상황은 파국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신종자본증권 2차분(650억원)의 발행이 좌절됐고, 신용등급 하락을 경고하는 하향검토 워치리스트에 등재됐다. 사태는 일파만파로 치닫더니 결국 박삼구 회장의 사퇴로 이어졌다. 아시아나항공이 외부감사인에 백기를 든 건 재감사에 돌입한 지 불과 나흘만이었다. 사실상 외부감사인의 요구를 전면 수용해 적정의견으로 되돌렸다. 하지만 한번 엎질러진 물을 다시 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아시아나항공 입장에서도 억울한 사정이 있을 것이다. 회사와 외부감사인의 의견 대립을 소상하게 파악할 수는 없다. 다만 한동안 외부감사를 맡아 온 회계법인인 만큼 그간 문제삼지 않은 대목을 까다롭게 다루니 이해하기 어려웠을 듯하다. 그것도 이처럼 민감한 시기에 발목이 잡히면서 강도높은 대응을 결정했을 수 있다.
하지만 아시아나항공이 처한 상황을 감안하면 너무나도 무모한 베팅이었다. 승패의 확률을 떠나 패배할 경우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는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회사측은 유동성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광범위한 조달 루트를 동원하고 있다. 자산유동화증권(ABS)과 신종자본증권, 전환사채 등을 가리지 않고 외부 조달에 경영을 의지하고 있다. 시장에 불신이 퍼지기 시작하면 운영 자금이 금세 말라버릴 우려가 있다. 신용평가사 역시 워치리스트에 올린 첫 번째 이유로 자본시장 접근성의 후퇴를 꼽았다.
차라리 어닝쇼크를 발표했으면 어땠을까. 물론 시장은 냉담하게 반응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정의견에 따른 작금의 위기로 치닫지는 않았을 것 같다. 경기는 침체 국면이지만 자본시장은 여전히 유동성이 넘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이 발행해 온 각종 고금리 상품은 실적 부진 속에서도 인기를 끌어왔다. 부진한 실적 얘기는 시장에 공포가 감돌 정도로 충격적인 이슈가 아닌 셈이다. 하지만 한정의견 풍파가 휩쓴 뒤로는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수요가 사라졌다는 게 IB업계의 중론이다.
부진한 성과를 내놓을 때보다 성과를 측정하는 시스템이 흔들리는 게 더 미심쩍은 법이다. 일단 어닝쇼크를 피하고자 감사의견에 베팅한 건 두고두고 아쉬운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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