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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 아산 정주영 레거시]현대제철 M&A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공개 2020-02-07 10:00:00

이 기사는 2020년 02월 07일 10:00 더벨 유료페이지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인천제철 인수

아산은 그 시대의 많은 기업인들과 마찬가지로 M&A에 대해서는 ‘올드’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아산의 세대에는 지금과 같은 M&A가 경영전략의 일부라는 인식이 존재하지 않았다. 기업인수는 매우 드물게 일어나는 현상이기도 했다. 아산은 1978년에 인천제철과 현 노벨리스코리아인 대한알루미늄을 인수했던 일에 대해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기업이라면 덮어놓고 도매금으로 ‘정경 유착,’ ‘문어발’로 매도하는 풍토 속에서도 내가 항상 당당할 수 있었던 것은 그때까지 우리 ‘현대’는 남의 기업을 인수받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때까지 내 산하의 모든 기업은 우리 아버님께서 돌밭을 일궈 한뼘 한뼘 옥토를 만드셨듯이 말뚝 박기에서부터 굴뚝 올리기까지 전부 다 그렇게 만든 것이었다. 우선, 누군가가 죽을 힘을 다해서 만들어 키우다가 여의치 못해 넘어가게 생긴 기업을 인수받는 것은 내 성격상 별로 하고 싶은 일이 아니다. 자신의 회사를 설립하고 운영하는 과정에서 겪었을 그 기업주의 노심초사와 남모르게 흘렸을 그 사람의 눈물과 고생을 나는 안다. 그런 업체를 헐값으로 인수받아 내 업체로 만드는 것이 나는 어쩐지 남의 불행을 발판 삼아 내 이득을 취하는 것 같아서 싫었고, 지금도 싫다. 잘라 말하자면, 어떤 업종을 해보고 싶으면 내가 창업을 하면 된다. 또, 우리 ‘현대’의 비약적인 성장을 정치 권력과의 결탁에 의한 ‘공짜 성장’으로 생각하는 일부의 사시안도 남의 기업 인수를 망설이게 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이 땅에 태어나서, 250~251).

아산은 인천제철과 대한알루미늄을 인수한 이유는 사업적인 이유들 외에도 두 회사가 다 개인 기업이 아닌 국영기업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제강점기 때인 1938년에 조선이연금속 인천공장이 세워졌었는데 이 회사는 1942년에 일본 가네보재벌의 종연실업이 인수했다가 광복 이후 귀속재산이 되었다. 1953년에 국영기업 대한중공업공사로 자리 잡았다. 1962년에 인천중공업으로 상호를 변경했고 1966년에 정부지분 중 52.5%가 민간에 매각되면서 민영화되었다.

한편, 1964년에 이동준 창업주가 서독에서 차관을 들여 세웠던 인천제철은 경영난 때문에 산업은행 관리로 넘어갔다가 1970년에 인천중공업에 합병되었다. 합병 후 인천제철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합병에도 불구하고 회사의 경영이 호전되지 않아서 결국 매각하게 되었고 1978년에 현대그룹이 인수한 것이다. 인수 후 대표이사 사장은 이명박, 정몽필, 정몽구로 이어지다가 1987년에 상장회사가 되면서 정몽구 회장 체제가 되었다.

포스코의 견제

사실 현대는 건설, 자동차, 조선 등의 계열사에서 막대한 철강을 소비하는 회사여서 당연히 자체 제철소를 구상했다. 선박용 후판과 자동차용 강판을 공급하는 제철회사에 사사건건 을이 되는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현대중공업 출범 때는 지척의 울산과 포항에 각각 있으면서 거의 파트너 관계였던 박태준 당시 사장의 포스코가 견제했고 따라서 정부도 별로 호의적이지 않았다.

1977년에 현대중공업이 제2종합제철소 설립계획을 정부에 제출했다. 포스코와 치열하게 경합했다. 현대는 정부의 자금 지원 없이 건설비를 조달하고 그룹 내 연관기업들의 기술과 능력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다는 이점을 강조했다. 1978년에 인천제철을 인수해서 제철사업에 대한 의지도 보였다. 공기업과 민간기업이 경쟁해야 경쟁력이 강화될 수 있다는 논리도 폈다. 포스코는 국가기간산업의 공익성을 내세워 민간 제철소는 부적절하다고 맞섰다.

정부 내에서도 의견이 나뉘었는데 결국 박정희 대통령이 결정을 내려 포스코가 그 사업권을 따 광양제철소를 지었다. 포스코는 1985년에 공사를 시작해서 1992년에 여의도 면적 7배의 부지에 세계 최대 규모의 제철소를 완공했다. 포스코의 조강능력은 연 2천만 톤을 넘어서게 된다. 포스코는 2000년에 민영화되면서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되었다.

현대는 1994년에도 제3종합제철소 설립을 위해 애썼지만 그 역시 철강 과잉공급을 이유로 성사되지 못했다. 1992년 대통령 선거의 후유증도 있었던 것 같다. 정몽구 회장은 현대그룹 회장에 오른 직후에 정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경남 하동에 제철소 건립을 추진했다. 1997년 10월에 경상남도와 ‘제철소 유치 및 건설을 위한 기본합의서'에 조인까지 했다. 환경과 교통 영향평가를 거쳐 1999년에 착공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바로 IMF 사태를 맞으면서 무산되었다. 이번에는 다행이었던 셈이다.

정몽구의 현대제철

인천제철은 2000년 8월에 현대차그룹에 편입된 후 2001년에 INI스틸로 이름을 바꾸었다. M&A를 기업의 성장전략으로 보는 시대가 되어 인천제철은 아산의 생각과 달리 IMF 이후부터 부실화되거나 경영난을 겪는 회사들을 공격적으로 인수하기 시작, 2000년 3월에는 압연형강업체 강원산업, 12월에는 삼미특수강을 인수했다.

INI스틸은 2004년에 한보철강의 당진제철소를 현대강관의 후신 현대하이스코와 공동으로 인수해서 포스코에 이은 2인자 자리를 확고히 했다. 자동차의 경쟁력은 강판에 달려있다는 지론의 정몽구 회장이 집념과 결단으로 포스코와 동국제강 컨소시엄을 물리쳤다. 특히 포스코와는 같은 입찰가격을 써내는 특이한 일도 발생했다. 가격은 같았지만 다른 면에서 현대가 더 높은 점수를 받았다.

한보철강은 은마아파트로 거부를 쌓았던 정태수 회장이 무리한 차입으로 건설해 5조 원대의 부채로 무너지고 IMF사태를 촉발했던 기업이다. 그러나 국내 제2의 철강회사 구상만은 긍정적으로 평가받는다. 한보철강은 부도 후에 포스코의 위탁경영과 법정관리를 거쳐 2000년에는 네이버스 컨소시엄이, 2003년에는 AK캐피탈컨소시엄이 인수를 시도했으나 무산되었고 2004년에 현대에 인수되었다.

당진제철소를 인수하는 데 성공한 정몽구 회장은 공장 업그레이드 작업에 심혈을 기울였다. 인천제철은 2006년 3월에 현대제철로 상호가 변경되었고 2008년 금융위기도 무난히 넘겨 2010년 4월에 일관제철소의 면모를 갖추었다. 당진제철소는 철광석을 밀폐된 컨테이너로 이송하고 돔 형 저장고에 보관하는 세계 최초의 친환경 제철소이기도 하다. 공장 어디에도 먼지가 나지 않는다. 냉연제품을 생산하던 현대하이스코는 2015년에 냉연 2공장을 완성하면서 현대제철에 흡수합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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