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0년 07월 14일 07시50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만기 6개월, 목표수익률 연 3%, 정부기관이 발행한 매출채권에 투자. LH, 토지주택공사, 해양수산부 등 예정'. A 증권사는 한 국공채 펀드를 팔며 이런 수식어를 붙였다.또 다른 국공채 펀드를 내놓은 B 증권사 투자설명서에는 '만기 6개월, 목표수익률 연 3.5%, 정부기관 발주 확정 매출채권으로 운용. 발주 예정 기관은 LH, 토지주택공사, 해양수산부 등'이라고 적혔다. 판매시기는 엇비슷했고 자산운용사는 같았다.
두 증권사는 두 개의 사모펀드에 다른 이름을 붙이고 각각 수십 호를 설정해 판매했다. 1호부터 50호까지 투자설명서도 똑같았다. 20호 펀드에 가입한 투자자에게 10호 설명서를 발송하며 '같은 펀드'라고 설명할 정도였다. 애초에 A사와 B사가 펀드를 판매한 계기도 '다른 판매사에서 똑같은 펀드가 잘 팔려서'였다.
그런데 쌍둥이처럼 설정된 수십개의 펀드는 서로 다른 펀드로 인정됐다. 투자 자산이 아주 조금씩 상이했기 때문이다. 무늬만 사모펀드였던 셈이다. '크리에이터', 'H스타일', '헤르메스' 등의 이름으로 대량 판매됐다가 환매 중단을 맞은 옵티머스 시리즈 이야기다.
설계가 잘 된 펀드를 대량으로 팔 수 있다면 많이 판매해도 좋을 일이다. 다만 펀드의 규모가 성장하는 만큼 운용사의 책임도 커져야 한다. 공모펀드 제도는 그래서 있다. 공모펀드를 운용하려면 포트폴리오와 수익률을 정기적으로 공개하고 보고서를 발표해야 한다. 책임이 싫다면 사모펀드로 작은 돈을 굴리면 그만이다.
같은 상품을 49인씩 쪼개어 여러 펀드로 판매하는 시리즈펀드 규제는 '공모 같은 사모' 편법을 막기 위해 제정됐다. 하지만 크면서도 자유롭게 운용할 수 있는 펀드를 마다할 이유가 있을까.
시리즈펀드로 인정하는 범주가 아리송하고 그마저도 현장에서는 유명무실한 규제라서다. 자본시장법 제119조 8항은 시리즈펀드의 조건을 '자금조달 계획의 동일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복수 증권의 발행·매도가 동일한 증권의 발행·매도로 인정되는 경우'라고 길게 명시했지만 모호하기는 마찬가지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도미노 환매중단에 금융당국이 OEM펀드와 시리즈펀드 규제안을 내놨지만 건별조사의 한계 속에서 식은 감자가 된지 오래다.
토씨만 다른 쌍둥이 펀드는 한 형제가 아프면 모두 앓을 수밖에 없다. 편입자산도, 투자 방식도 똑같은 데다 펀드마다 자금이 고리처럼 얽혀있는 일도 잦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환매중단은 수백억원 단위에서 야금야금 늘어나 단일 운용사에서 조단위 사고를 칠 만큼 커졌다.
눈앞의 펀드사고가 파도처럼 계속해 덮쳐오는 와중이지만 시리즈펀드 핀셋 규제가 필요한 이유다. 덧붙여 당국이 파고에 시달리는 사이 '이때다' 싶은 듯한 판매사의 시리즈펀드 비행도 멈춰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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