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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죽만 울린 IPO 제도개선]“허수청약 잡으려다 주관사만 잡을라”①실효성 낮은데 공모 일정 차질 우려…"제도 건전화보다 운용사 살리기 급급" 지적도

최윤신 기자공개 2023-05-03 13:54:21

[편집자주]

'변죽만 울리고 있다'. 최근 진행되는 IPO 제도 변경에 대한 시장 관계자들의 평가다. 허수청약을 타파하고 가격발견 기능을 키우겠다는 목표와는 달리 ‘보여주기식’ 개편에만 급급하다는 지적이다. 더벨은 IPO 제도개선의 경과를 살펴보고 한계와 나아갈 방향을 짚어봤다.

이 기사는 2023년 04월 27일 10:59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최근 예고된 금융투자협회의 인수업무규정 개정안에 대해 IPO 시장 플레이어들의 회의감이 크다. 제도 개편의 궁극적인 목적인 가격 발견기능 제고에 대한 기대감은 적은데, 과정의 변화가 상당해서다. 특히 늘어난 업무를 오롯이 담당해야 하는 증권사 IPO 담당자들의 불만이 큰 상황이다.

지난해 말 제도 개선을 추진할 당시부터 ‘무용론’이 지배적이었는데, 결국 이 방안이 그대로 정책에 녹여졌다. 시장에 긍정적 결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방침을 마지못해 따르는 모양새다. 불성실 수요예측 참여행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겠다고 했지만 실제론 제재 감면 조치만이 더해지는 등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도 나타났다.

◇ 주금납입능력 확인 의무에 속타는 IPO 주관사들

오는 7월 이후 증권신고서를 제출하는 기업공개 공모에서는 상장 업무를 담당하는 주관사가 수요예측 참여 기관의 자기자본이나 순자산액을 일일이 확인해야 한다. 앞서 지난해 말 당국이 내놓은 ‘허수성 청약 방지 등 IPO 시장 건전성 제고방안’의 후속조치가 속속 확정되면서 구체적인 행동방침이 정해지고 있다.

금융투자협회는 이와 관련한 최근 인수업무규정 개정안과 대표주관 모범규준을 내놓고 이달 중 확정하기로 했고, 금융위원회는 금융투자업규정 개정안을 지난 26일 확정지었다. 협회는 고유재산으로 수요예측에 참여할 땐 자기자본을, 위탁재산으로 참여할 땐 위탁재산 자산 총액을 주금납입능력으로 보고 평가하는 걸 표준방식으로 내놨다.

이에 따라 당장 오는 7월부터 주관사는 수요예측에 참여하는 2000여곳의 기관의 자기자본과 위탁재산 자산 총액을 일일이 점검해야 한다. 주요 IPO 하우스들은 이미 이에 대비한 전산 개발 논의에 돌입하는 등 대비에 나섰는데, 막막한 상황이다.

한 증권사 IPO 본부장은 “전산개발을 마쳐 증빙서류와 확약서를 받는다고 해도 결국은 사람이 일일이 확인해야 하는 일”이라며 “현재의 시스템 아래서도 수요예측 이후 청약 받을 때까지 실무진들이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상황이라 일이 늘어나면 공모 일정에 차질이 생길수도 있다”고 토로했다.

더욱이 이런 업무가 수요예측의 건전성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여겨지며 주관사의 불만은 더 가중되고 있다. 자기자본과 위탁재산 총액을 확인한다고 해서 허수청약 관행이 완전히 근절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자기자본 내에서 수요를 써낸다고 해도 이를 실수요라고 볼 순 없어서다.

물론 이번 조치의 시발점이 LG에너지솔루션 공모 당시 발생한 ‘뻥튀기 청약’이었다는 점에서 효과가 전혀 없다고 보긴 어렵다. 당시 다수의 기관이 많은 물량을 배정받기 위해 자본금의 수천배에 달하는 수요를 써내 논란이 됐는데, 이번 조치로 이런 일은 막을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단순히 이를 막자고 주관사에게 과도히 과중한 업무를 떠넘긴 건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만약 이로 인해 공모 일정이 지연되는 등의 상황이 되면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을 태우는 격’이 된다는 주장이다.

IPO 하우스 한 관계자는 “IPO 딜을 많이 맡는 주관사들은 이미 거래관계 등을 고려해 기관의 신뢰도 등에 대한 점수를 매겨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자본을 넘어서는 허수성 청약이 배정과 큰 상관관계가 없다"며 "현재 시스템 아래서도 수요예측 이후 납입일까지 실무진들이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상황이라 일이 늘어나면 공모 일정에 차질이 생길수도 있다"고 말했다.

불만의 본질은 주금납입능력 확인의 책임이 주관사에게로 향했다는 데 있다. 금융투자업규정에는 주금납입능력 확인 의무를 해태한 주관사에 대한 제재 내용이 포함됐다. 만약 수요예측 참여자가 주금납입능력과 관련한 증빙을 허위로 제출했는데, 증권사가 이를 걸러내지 못하면 제재를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IPO 하우스 한 관계자는 "시장의 역학관계를 봤을 때 주관사는 기관투자자에게 '을'의 입장일 때가 많기 때문에 기관 투자자가 제출한 자료에 대한 검증이 더 쉽지 않은 구조"라며 "제재 권한을 가진 정부가 기준을 잡고 시스템을 마련하는 게 훨씬 상식적이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주금납입능력 확인 의무 외에도 현실과 동떨어진 보여주기식 규정 개정으로 불필요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금투협은 대표주관업무 규정을 통해 기존 관행상 2영업일간 진행하던 수요예측 기간을 5영업일 이상으로 진행할 것을 권장하기도 했다. 기관 수요예측을 내실화 하겠다는 당국의 의지에 따른 것이다.

IPO 하우스들은 이와 관련해 실효성이 없다고 바라보면서도 당국의 권장사항인 만큼 불필요하게 수요예측 기간을 늘려야 할지 고민하는 모습이다.

한 증권사 IPO 본부장은 “현행 제도 아래서도 필요하다면 수요예측 기간을 늘릴 수 있다”며 “어차피 대부분의 수요가 마지막에 몰리기 때문에 일정을 최대한 짧게 잡는 컨센서스가 형성된 것인데, 당국이 추진한 방침인 만큼 보여주기식으로 따라야 할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의무보유 위반' 일벌백계 모자란데, 슬며시 포함된 감면 조치

이번 금투협의 규정 개정에는 금융당국의 IPO 제도 개선 방침에 포함되지 않았던 내용들도 더해졌다. 일몰이 예정됐던 코스닥벤처펀드에 대한 우선배정혜택 연장과 의무보유 확약 위반 기관에 대한 제재 감면 근거 마련 등이 포함됐다.

코스닥벤처펀드 우선배정 혜택 연장은 IPO 하우스들이 지속 반대해왔는데, 결국 연장이 결정됐다. 한 증권사 IPO 본부장은 "과도한 우선배정이 코스닥 딜을 우량한 해외투자자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게 만들고, 이는 국내 IPO 시장이 글로벌 스탠다드에서 멀어지는 원인이 되고 있다"며 "수요예측의 가격발견 기능을 강화하겠다면서 국내 운용사에만 특혜를 지속 제공하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의무보유 확약 위반 기관에 대한 제재 감면 조치에 대해서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다수다. 지난해 규정 개정을 통해 공모 과정에서 주식을 일정 기간 의무 보유하기로 확약했는데, 이를 지키지 않은 경우 불성실 수요예측 참여자로 지정돼 수요예측 참여를 제한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이번 규정 개정에서 금투협은 확약준수율이 70% 이상인 경우 제재를 감면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슬며시 끼워 넣었다. 이는 금융당국이 추진하는 IPO 시장 건전화 방안에 포함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지향하는 방향성이 정반대라는 지적이 나온다. 당국은 공모주의 장기 보유를 위해 의무보유확약을 더 적극적으로 배정에 반영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의무보유 확약에 대한 보상을 강조하는 만큼 약속을 져버린 행위에 대해선 일벌백계에 나서는 게 당연한데, 당국의 계획에 없던 감면 조항을 슬며시 껴 넣은 건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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