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3년 06월 20일 07시47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종종 생각한다. SK온이 지난 6개월 동안 8조1700억원을 조달할 수 있었던 것은 글로벌 5위라는 탄탄한 시장 지위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펀딩에서 난항을 겪자 투자 조건을 대폭 낮추며 실리를 택한 세일즈 때문이었을까. 아무래도 이러한 생각이 드는 건 너무나 극적으로 대비돼 왔던 현실 때문이다.SK온은 배터리 사업을 시작한 이래 오랫동안 열등생이었다. 사업을 빨리 시작하지 못했으니 노하우가 부족했다. 후발주자들의 적응력이 떨어지는 배터리 업계 특성상 수율(완성된 제품 대비 정상 제품의 비율)을 잡는 데 다른 업체들보다 오래 걸렸다. 한때는 수율 때문에 포드와의 합작법인이 깨졌다는 얘기를 해명하느라 바빴다.
무엇보다도 상장 적기를 놓쳤다는 것 자체가 괴로웠다. 공장은 새로 지어야 하고 원재료 가격은 높아져만 가는데 당장 투자자들의 마음을 살 수 없는 경색된 시장 환경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옆집은 유동성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으며 IPO로 10조원 넘는 돈을 끌어 모았는데 SK온은 그냥 멀찍이서 바라볼 뿐이었다.
다만 올라가는 금리가 익숙해져서였을까. 최근 뭉칫돈을 들고 찾아온 재무적 투자자들(FI)은 무언가 깨달은 듯 보인다. 아직 자금 경색기가 끝났다고 볼 순 없지만 그럼에도 잠재력과 성장성이 눈에 띄고 거품은 살짝 빠져 있는, 그러니까 글로벌 투자자라면 누구나 혹 할 만한 '돈 되는' 투자처에 SK온이 남아 있었다는 걸 말이다.
그렇게 8조원 넘는 자금을 모으긴 했지만 그렇다고 상황이 쉬워진 건 아니다. 조단위 차입을 병행한 만큼 수천억원의 이자 비용을 감당해야 하며 후발주자라는 꼬리표와 완전히 결별하는 숙제도 해결해야 한다. 이를테면 지난해에는 실패했던 흑자전환이라는 목표 달성을 올해 반드시 이뤄내는 식의 행보로 말이다.
지난주 '2023 확대경영회의'에 참석한 경영자들의 대답에도 당장의 조달 훈풍과는 온도 차가 있었다. 이날 연이은 투자금 유치 소감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김준 SK이노베이션 부회장은 "그래도 조금 더 많이 노력해야 한다"고 대답했고 지동섭 SK온 사장은 "(조달은) 상황이 잘 만들어진 덕"이라고 설명했다.
일단 당장은 업계 내에서 "SK온 실탄 부족하지 않아?"라고 묻는 목소리는 사라져 보인다. 아무래도 8조라는 숫자가 나오다 보니 '투자할 만한 구석이 있으니 저렇게 돈을 투입했겠지'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럼에도 한 가지만은 분명해 보인다. 성과와 실력으로 증명하지 않으면 SK온 조달에 대한 여러 생각들은 계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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