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3년 09월 25일 07시35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차마 남에게는 말 못할 일을 겪을 때가 있었다. 그때 챗GPT를 처음 켜봤다. 날 평가하지 않고 내가 누군지도 모를 챗GPT. 한낱 프로그램이 건넨 위로라는 걸 알면서도 참 위안이 됐다. 굳이 흠을 꼽자면 영어를 써야 대화가 더 잘 됐다. 한국어로 여러 차례 시도해봤지만 대화의 맛을 살리지 못했다.그렇지만 AI(인공지능)에 대한 기대가 우려보다 커졌다. 챗GPT는 상상만 했던 미래가 현실이 됐다는 것을 보여줬다. AI가 당장 인력을 대체하지는 못해도 생산성을 높여주거나 업무적 또는 심리적으로 사람을 돕는 역할은 충분히 해낼 것처럼 보였다.
네이버와 카카오, SK그룹, 삼성그룹, LG그룹 등 국내 IT기업들은 이런 흐름을 놓치지 않았다. AI가 일시적 유행에 그치지 않을 것으로 바라봤다. 전사적 역량을 결집해 한국형 AI 개발에 투자했다. 한국형 AI의 투자 성과가 향후 기업가치를 가를 것으로 예상될 만큼 경쟁이 가열됐다.
이런 흐름 속에 나선 첫 주자가 네이버다. 네이버는 기술 컨퍼런스 DAN 23(단23)에서 하이퍼클로바X를 대대적으로 공개했다. 최수연 대표는 행사에 앞서 주주서한을 쓰며 AI가 거스를 수 없는 새 패러다임이라 역설했고 행사에도 직접 나섰다. 다른 계열사 대표들도 연단에 올라 AI사업을 띄우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시장의 기대를 충족시키기엔 역부족이었다. 한국형 AI사업에 대한 기대감으로 올랐던 네이버 주가는 하이퍼클로바X 발표 직후 떨어졌다. 실망 섞인 평가도 나왔다. 자산운용업계의 한 관계자는 “챗GPT와 달리 실시간으로 정보를 제공한다는 점은 좋다”면서도 “할루시네이션(환각현상) 이슈 등 성능문제는 심각한 편”이라고 평가했다.
그렇다고 한국형 AI사업 전망을 비관해야 하는 걸까. 기술의 한계에 부딪혔으니 AI사업 투자를 줄여야 할까.
대답은 ‘아니오’다. 영화에서야 진부할 만큼 많이 다뤄졌어도 현실에서 AI를 제대로 구현해 수익화 모델을 갖춘 기업은 전세계적으로 거의 없다. 그럼에도 전세계적으로 AI사업 주도권 다툼이 벌어지며 대규모 투자가 이뤄지는 건 성장성이 있어서다.
가보지 않은 미래라 험할 뿐 길은 길이라는 말이다. 카카오가 연초 계획과 달리 한국형 AI사업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고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이 잇달아 AI 개발 사업 계획을 발표하는 배경이다. 이에 화답하듯 정부도 내년 AI시장에 9090억원을 쏟아부으며 국내 수요를 키우겠다고 약속했다.
AI산업과 시장은 이제 막 태동기를 지나고 있다. AI 성능의 고도화를 논하기에 앞서 우리 사회가 AI에 무엇을 바라는지조차 합의되지 않았다. 한국형 AI를 평가하기에 여러 모로 이르다는 말이다. 한국형 AI 개발에 있어서 정말 중요한 건 당장의 평가가 아니라 꺾이지 않는 마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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