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4년 02월 14일 07시44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지난해 펀드매니저들을 만나면 종종 듣던 말이 있다. 매니저와 리서치가 시황을 파악하기 위해 하는 아침 회의에서 “그럴 수 있지”라는 대화가 늘었다고 한다. 논리적으로 오를 이유가 없는 일명 동전주 같은 종목에 대해서다. 과거에는 펀더멘털이 없으니 곧 떨어질 것이라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오르는 것 자체가 상승의 근거가 된다며 고개를 끄덕인단다.농담 섞인 이야기지만 현재 시장을 생각하면 뼈가 있는 말이다. 최근 만난 한 매니저도 동료들 중 주식 유튜버의 유료 리딩방에 돈을 내고 참여하는 이가 적지 않다고 했다. 실제로 유튜버의 분석 실력을 신뢰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전날 저녁에 찍어준 종목이 다음날 오르기 때문에 안 볼 수 없다고 토로했다. '수급 중심'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매니저들의 자구책인 셈이다.
운용업계가 불황에 빠져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로 업계의 창의성 부족이나 정부 규제를 지적한다.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기업 실적보다 테마 수급의 영향력이 큰 시장이라고 본다. 정통 방식의 투자보다 편법이 잘 먹히는 시장에서는 제대로 된 펀드매니저도 나오기 어렵다. 실제로 작년 에코프로를 과열이라고 판단해 중간에 팔았던 매니저들은 비교지수 대비 아쉬운 수익률을 받아들어야 했다.
정부에서 내놓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은 가뭄에 단비같은 소식이다. 지난달 금융위원회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밸류업 프로그램을 제시했다. N개년 주주환원 계획을 밝히고 공시우수법인으로 선정될 경우 가점을 부여하는 등의 방안이다. 실제 기업가치보다 시가총액이 낮은 기업들의 주가를 정책적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방침이다. 발표 직후 기대감으로 외국인들이 몰리면서 ‘저PBR’ 종목들의 주가가 크게 올랐다.
걱정되는 건 정책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지다. 현재까지 정부가 제시한 안 가운데 의미있는 건 향후 주주환원계획을 밝히라는 것 정도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에는 이미 선을 그었고, 포이즌필이나 상법에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넣는 개정안이 논의되고 있지만 실효성엔 갑론을박이 이어진다. 2월 나올 세부안에 주주환원을 강화할 실질적인 대책이 없다면 저PBR도 한철 테마에 그칠 수 있다.
펀더멘털 기반으로 투자하는 펀드매니저가 멍청이 취급을 받는 시장에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도, 운용업계 활황도 없다. 실적이 나오는 기업에 투자한 투자자가 수익을 내고 기업은 이를 주주환원으로 돌려주는 선순환이 이뤄져야 한다. 이를 위해 자사주를 매입 및 소각하고 배당을 높여 기업이 낸 수익을 주주도 공유할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올해에는 한숨섞인 '그럴 수 있지'가 확신에 찬 '그럴 리 없다'가 되는 시장이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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