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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판결문 뜯어보기]엘리엇과 표 대결, 정당하게 쟁취한 승리였다④'거짓 IR은 없었다' 검찰과 다른 법원 해석…한화증권 압력 행사도 '무죄'

이상원 기자공개 2024-02-28 08:02:46

[편집자주]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관련 1심 재판에서 이재용 회장의 무죄가 확정됐다. 덕분에 삼성은 '국정 농단' 사태부터 7년여간 이어졌던 총수의 사법 리스크를 당장은 벗어나게 됐다. 비록 검찰이 항소를 했으나 재판부가 19개 모든 혐의에 '무죄'를 준만큼 2심 선고의 변동성도 크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이런 가운데 재판부가 삼성의 손을 완전히 들어준 까닭이 무엇인지도 관심을 끈다. 더벨이 입수한 해당 판결문에는 합병 과정에서 이 회장과 삼성의 어떠한 위법행위도 없었다는 재판부의 메시지가 명확히 담겨 있었다. 1589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판결문을 뜯어본다.

이 기사는 2024년 02월 26일 16:19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삼성과 엘리엇만큼 끈질긴 악연도 없다. 그 시작은 9년 전 삼성물산·제일모직의 합병 주총 표 대결로 거슬러 올라간다. 엘리엇은 당시 약 7%의 지분을 보유한 삼성물산 주주였다. 합병 결정 발표와 함께 엘리엇이 즉각적인 반대에 나서며 양측의 불편한 관계가 비롯됐다.

당시 합병은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의 주식 전량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삼성물산의 주식을 주당 5만5767원으로 평가해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1대 0.35의 비율로 흡수합병하기로 했다. 하지만 엘리엇은 해당 합병안이 삼성물산 주주에게 불리하다며 무수한 공세를 퍼부었다.

검찰은 엘리엇 편에 가까웠다. 이 과정에서 합병을 성사시키기 위해 삼성이 허위 명분과 논리를 추가로 개발하는 등 긴급 대응 전략을 통해 불법을 저지른 것으로 봤다. 반면 삼성은 엘리엇 대응 계획은 부정되지 않았고 합병 정당화 명분과 논리도 허위가 아니라고 맞받아쳤다. 이번 판결문을 보면 이에 대한 공방과 그 해석이 가장 눈에 띈다.

◇합병 IR 과정에 실상 숨겼다는 의혹, 삼성 측 면담 기록 인정한 법원

엘리엇은 2015년 7월 열리는 합병 주총을 앞두고 당시 1대 주주인 국민연금을 비롯해 삼성SDI, 삼성화재, 삼성생명 등 주요 주주에게 합병 반대를 요구하는 서한을 보냈다. 세계 최대 주총 의결권 자문기관 ISS도 삼성물산·제일모직의 합병안에 대해 반대를 권고했다. 승기가 엘리엇 쪽으로 기우는 듯했다.

가만히 두고 볼 리 없었다. 삼성은 해외투자자 대상 IR 확대로 대응했다. 싱가포르투자청(GIC)을 비롯해, 디델리티, 블랙록, 모건스탠리, 뉴욕멜론은행 자산운용, HSBC 등 다양한 해외투자자에게 합병의 정당성을 설명했다. 엘리엇이 투자자 결집에 속도를 내면서 해외 의결권을 확보하는 게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삼성이 해외 투자자들에게 의도적으로 이재용 회장의 지배력 강화를 위한 합병 목적 숨긴 것으로 봤다. 미래전략실이 주도적으로 결정해 추진한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오로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경영진의 판단에 의해 합병이 결정된 것처럼 투자자들에게 알렸다. 일종의 '기만행위'가 있었다는 의미다. 검찰은 이에 대한 증거로 주주 설명자료, 각종 공시를 법원에 제출했다.

투자자에게 제공한 자료에는 2020년 합병 법인의 예상 매출액 60조원, 세전이익 4조원 달성이 명시돼 있다. 외부 회계법인이 합병비율을 검토해 내놓은 숫자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검찰은 합병 기대 효과와 시너지를 제대로 검토한 적이 없고 단순히 목표치를 합산한 것에 불과하다고 봤다. 외부 검토 역시 삼성의 압력에 의해 조작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검찰의 주장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냈다. 일례로 삼성이 GIC 설득 과정에서 조언을 한 것은 맞지만 어떠한 사실을 숨기지는 않은 것으로 봤다. 설득력이 부족한 주주 설명, 만족스럽지 않은 합병비율 등에 투자자 GIC가 부정적인 의견을 삼성 측에 전달해왔다는 기록을 근거로 들었다. 합병에 '찬성표'를 던진 GIC의 투자의사 결정을 삼성이 왜곡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GIC는 이 사건 합병은 시너지가 아니라 그룹 지배구조를 위한 합병이라고 인지했다. 시장도 마찬가지라고 판단된다"며 "미래 실적과 시너지에 대해서는 '기대' 내지 '목표' 값으로서 제시된 것이다. 목표치로서 불확실한 예측 정보라는 점, 합산 수치라는 점을 충분히 알렸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결했다.


◇증권사 리포트 관여 혐의, 왜곡된 내용 없다 결론

판결문에서 엘리엇과 투자자들의 합병 반대 주장 쟁점과 맞물려 볼 수 있었던 또 다른 사안은 증권사의 합병 반대 리포트가 나간 것에 대한 삼성 측의 '외압 행사' 의혹이다.

2016년 12월 6일 한화투자증권 주진형 전 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1차 청문회에 참석했다. 국내 내로라하는 재벌 총수들, 특히 김승연 한화 회장을 앞에 두고 주 전 사장은 합병에 대한 2차 반대 리포트가 나간 뒤 삼성의 압력이 있었다고 폭로했다. 아직도 회자되고 있는 장면이다.

이를 토대로 검찰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대한 한화투자증권 리포트 작성에 외압 여부를 조사했다. 삼성이 한화그룹 경영기획실장과 한국금융투자협회 회장을 통해 보고서 발표를 막아달라는 취지의 요구를 한 것으로 검찰은 봤다. 반대의견을 냈던 증권사 대표에게 불이익을 가했다는 것이다.

앞서 한화투자증권은 2015년 6월 합병에 대한 1차 보고서를 발표했다. 여기에는 "삼성이 주총 표 대결에서 이기는 것이 쉽지 않다고 판단한다"거나 "합병이 성사되더라도 해외소송까지 갈 가능성이 있어 삼성이 합병을 포기할 수 있다고 본다" 등의 합병 무산 가능성을 전망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한 달 뒤 합병에 부정적인 의견을 담은 2차 보고서가 발표됐다.

삼성은 정상적인 대응을 했을 뿐이란 입장이었다. 판결문에 따르면 삼성 측은 "한화투자증권 보고서의 잘못된 내용에 대해 반박하고 항의하며 대응한 것"이라며 "오히려 한화투자증권 보고서 작성 과정에서 부당한 지시가 있었던 정황을 확인했다. 압력을 행사한 적은 없다"고 강조했다.

양측의 주장이 엇갈리는 가운데 법원은 삼성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당시 '주 대표가 삼성물산 담당도 아닌 애널리스트에게 보고서 작성을 지시했다'는 점에 대해 의문을 제시했다. 이어 '해당 애널리스트가 난색을 보이자 다른 애널리스트에게 재차 작성을 지시하며 1차 보고서가 발표됐다'는 진술을 받아들였다.

이와 함께 운용자금 회수를 통한 압박도 '무죄'를 받았다. 1차 보고서가 발표된 직후 삼성증권 리서치센터는 한화그룹 자금 조달에 어려움이 있음을 검토했다. 삼성생명은 한화투자증권에 맡겼던 법인운용자금 약 3000억원을 인출했다. 이를 두고 검찰은 2차 보고서 작성을 저지하려는 조치로 봤다. 하지만 재판부는 삼성생명 자금 인출 등 모두 2차 보고서 작성 후에 이뤄진 사실로 보고서 작성을 막기 위한 압력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한국투자증권의 보고서에 대한 판결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뤄졌다. 앞서 삼성이 보고서 초안을 입수했고 합병에 불리한 내용이 포함돼 있자 한국투자증권에게 유리한 내용만 담을 것을 요구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특히 초안을 삼성에 제공한 것은 규정 위반이자 은폐, 거짓 기재라고 검찰은 주장했다.

반면 삼성은 한국투자증권의 보고서는 국민연금 요청으로 작성된 완결된 문서로 초안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자신들의 요구에 따라 불리한 내용이 제외되는 등의 보고서 왜곡도 없었다는 주장이다. 재반부는 한국투자증권 보고서 관련된 의혹에서 삼성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법원은 "보고서를 제공받는 것이 금지되거나 제한되지 않는다. 담당 애널리스트도 국민연금의 요청으로 만든 보고서로 다른 기관에 보내줘도 별 다른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며 "합병 타당성을 정당하게 홍보하고 엘리엇의 일방적인 문제제기가 유포되는 상황에서 왜곡이라는 전제 사실부터 성립되지 않는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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