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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은행을 아시나요]'미술시장 활성화' 국립현대미술관, 20년간 2439곳에 그림 대여①340억 투입, 수장고에 4402점 수집…유무형 자산가치 사회환원 초점

서은내 기자공개 2024-03-15 10:14:06

[편집자주]

국립현대미술관의 미술은행 사업은 기관, 기업을 대상으로 미술품을 대여해주는 사업이다. 공모를 통해 작품을 구매함으로써 창작을 활성화하고, 그렇게 꾸려진 컬렉션을 바탕으로 작품들을 은행처럼 대여해주는 구조다. 국립현대미술관의 미술은행이 내년으로 20주년을 맞는다. 미술은행 사업의 그간 경로, 조직구성, 컬렉션 구성, 대여 사례 등을 취재했다.

이 기사는 2024년 03월 13일 13:06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유럽의 유서깊은 기업 건물들에는 그 기업의 역사와 함께 미술사와 맞닿은 그림들이 걸려있다. 보험의 시초이자 글로벌 보험사들의 거대 마켓인 런던 로이즈 사옥에 가보면 사무실이 배치된 건물 복도에 양쪽에 2미터 간격으로 그림이 걸려있다. 건물 전체가 하나의 미술관인 셈이다.

그림 한 점은 공간의 격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벽에 붙은 그림 한 점에서 대화가 시작되기도 하고, 딱딱한 사무공간이 부드러워지기도 한다. 그 공간을 오가는 사람들에게 의식, 무의식적으로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이 미술품이다. 공간에 있는 것 만으로 자연히 예술품을 간접 소비하는 셈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의 미술은행 사업은 이렇게 공간의 격을 높이고 문화를 향유할 기회를 넓히기 위해 추진된 미술품 대여 사업이다. 엄선한 작품들로 미술은행에 활용한 대규모 소장품 리스트를 만들고, 기업이나 기관들에 구매로는 접근이 어려운 미술품을 합리적인 사용료 수준에서 대여해주는 형태다.

미술은행은 두 가지 경로로 역할을 한다. 국내 미술 각계의 전문가들을 위원회로 꾸려 작품을 선정, 사들임으로써 작가들의 창작 활동을 뒷받침하고 수요자로서 미술 시장을 활성화하는 역할이 첫번째다. 이렇게 꾸려진 컬렉션의 작품들이 대여 형태로 많은 사업장들에 공급됨으로써 대중들의 문화 접근을 늘려주는 것 또한 중요한 역할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 개방형수장고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이 강남대로 신설 미디어 플랫폼에서 미술은행 소장 작가와 협업해 선보인 '공공' 프로젝트 전시. 사진은 2022년 4월 진행한 전시로 김보희 작가의 소장품 'Towards'(2019)를 재구성해 선보였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 미술은행 컬렉션 매년 18억 예산, 전문 위원회 거쳐 4402점 수집

국립현대미술관(국현)의 미술은행이 설립된 것은 2005년이다. 당시 국내 미술계에는 매년 많은 신진 작가들이 미술시장에 유입되고 있으나 일부 작가를 제외하고는 작품 판매와 유통의 어려움에 처해있었다. 창작활동을 비롯해 미술시장 분위기가 침체된 상황이었다. 일부 민간 화랑을 중심으로 미술품 대여사업이 운영되고 있었으나 한계가 있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당시의 문화관광부가 정책적 기능을 맡고 국현이 집행의 기능을 맡아 꾸려진 것이 미술은행이다. 국현 관계자는 "창작활동 진흥정책으로 미술 발전을 도모하고 국내 미술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정부가 미술품 구입에 앞장섰다"며 "문화 향유 공간을 만들고 국민의 미술감상 기회를 확대하는 것이 목적이었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시작된 사업의 결과 현재까지 국현 미술은행의 누적 대여기관 숫자는 2023년 말 기준 총 2439곳에 달한다. 누적 대여료는 약 106억원이며 최근 5년간의 연 평균 대여수입은 약 8억9000만원으로 집계됐다. 국가 예산으로 돌아가는 사업인만큼 대여 수입은 전부 국고로 환수되는 구조다.

미술은행 소장품을 꾸리기 위해서 매년 일정한 예산이 소요된다. 국현이 매년 작품을 구매, 미술은행 컬렉션을 모으는데에 사용하는 예산은 평균 18억원 수준이다. 지난 19년간 액 340억원 가량이 작품 수집에 쓰였다. 지난해 수집 예산은 약 16억원이다. 국현의 미술관 소장품 예산은 연간 47억원 수준으로 미술은행 사업과는 별도다.

지난 20여년간 국현의 미술은행 수장고에 모인 소장품 수는 총 4402점이다. 매년 소장품을 구입하기 위해 미술은행은 운영위원회를 통해 전문위원을 추천받아 위촉하고 있다. 공모형과 제안형의 두 가지 수집 절차를 통해 작품구입 심사위원회를 거쳐 미술품을 구매하고 있다.

국현은 미술은행 사업을 진행하면서 동시에 2012년부터는 정부의 미술은행 미술품수집도 함께 위탁 받아 진행한다. 정부 미술은행 사업은 민간이 아닌 국가기관이나 국가 행사에 한해 대여하는 사업이다. 정부 미술은행은 매년 소장품 예산이 약 13억원이며 현재까지 모인 정부 미술품 수는 2775점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미술은행 수장고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 '시장 활성화'에서 '수장고 자산가치 활용'으로 초점 옮겨

국현의 미술은행 소장품의 대여 대상은 국가기관, 지자체, 해외공관, 지역문화예술회관, 공사립미술관, 공공기관, 비영리기관, 기업까지 한 마디로 개인을 제외한 모두가 포함된다. 미술은행의 누리집에서 작품을 선정하고 대여를 신청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는 유상대여 방식이며 사회공헌의 일환으로 문화소외지역을 대상으로는 무상 대여하고 있다.

대여 형태는 두 갈래로 나뉜다. 환경조성형과 전시작품지원형이다. 전시작품지원형은 임차기관이 기획전시에 활용할 작품을 대여하는 경우다. 대여료는 작품가액에 요율(한달 기준), 대여기간(개월)을 적용한 수식으로 결정된다.

환경조성형의 대여는 대여기간 1개월~6개월까지는 1.5%, 7개월~12개월까지는 1%가 요율로 적용된다. 작품가액이 5000만원 이상인 작품은 기간 관계없이 0.5% 요율이 적용된다. 5000만원 가액의 작품 하나를 대여할 경우 대여료는 매달 25만원으로 계산된다. 전시작품지원형 대여는 6개월까지만 가능하며 작품가 상관없이 매달 적용요율이 0.5%다.

미술은행의 주요 사업은 크게 미술품 구입, 대여, 기획전시, 수장고 등 작품관리, 상태조사 등으로 구성된다. 작품 구입은 공모제와 아트페어를 통해 이뤄진다. 여러 작가가 참여하도록 역량 있는 작가를 발굴하고 신진작가를 육성하는 창작활동 지원도 미술은행의 역할이다. 수집된 작품 중에서 대여기관 현장에 맞게 최적 작품을 제안하고 있다.

미술은행은 제도가 만들어지던 초기와 달리 현재는 점차 사업의 초점이 옮겨가는 추세다. 미술은행 설립 초기 국현의 취지는 미술시장 활성화에 있었다. 지금은 국내 미술시장이 한단계 성장을 이뤘으며 민간 미술품 대여 플랫폼들도 많이 생겨나고 있다.

국현 관계자는 "현재 미술은행은 국가 소유 미술품 수장고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활용하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며 "보유한 미술품 자산가치 뿐 아니라 유무형으로 쌓인 미술 인프라가 사회에 환원될 방식을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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