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은행을 아시나요]미술관이 된 공항, 거리로 나온 작품들③기업, 공공기관, 특수학교 등 누적대여 작품수 3만4000여점, 대여수수료 106억원
서은내 기자공개 2024-03-26 07:29:58
[편집자주]
국립현대미술관의 미술은행 사업은 기관, 기업을 대상으로 미술품을 대여해주는 사업이다. 공모를 통해 작품을 구매함으로써 창작을 활성화하고, 그렇게 꾸려진 컬렉션을 바탕으로 작품들을 은행처럼 대여해주는 구조다. 국립현대미술관의 미술은행이 내년으로 20주년을 맞는다. 미술은행 사업의 그간 경로, 조직구성, 컬렉션 구성, 대여 사례 등을 취재했다.
이 기사는 2024년 03월 15일 10:25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미술은행 컬렉션은 일반 기업, 공기업, 공공기관, 학교의 로비, 사무공간 등으로 퍼져가고 있다. 일반 대중에게 더 깊이 다가가기 위한 차원에서 디지털 방식을 활용해 거리 위로까지 소장품이 전시되기도 했다.2023년까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의 누적 대여기관의 숫자는 2440여곳에 이른다. 대여작품 수로는 누적 3만4000여점, 누적 대여수수료는 106억원을 기록하고 있다.
◇ 공항 로비에 전시된 미술은행 작품들
인천공항공사는 미술은행이 작품을 대여해주는 대표적인 곳 중 하나다. 2021년 처음 미술품을 대여한 이후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미술은행의 대여를 이용하고 있다. 공항 여객터미널이나 공항공사 로비, 인재개발원 등에 작품이 설치됐다.
국립현대미술관과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소장품 공동기획전시 '워밍업: 예술로 생기를 채우다'를 개최하기도 했다. 인천공항을 이용하는 내외국인 여객과 공항 종사자, 일반 방문객들이 관람할 수 있도록 인천공항 여객터미널 내에서 열린 전시다. 해당 전시는 인천공항의 특성을 잘 살린 것으로 한국미술을 세계화하고 문화예술공항의 이미지를 구축한다는 목적으로 진행됐다.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 귀빈실로 향하는 로비에는 김용석 작가의 <소공원 1, 2>(2010)이 걸렸다. 도심 공원 진입로에 위치해 우리와 자연을 매개하는 조경수를 그린 작품이다. 인천공항공사는 벽과 바닥이 비슷한 색상의 대리석 타일로 이뤄졌고 넓은 면적이 비어있던 점을 고려해 공간 장식성, 무게감을 줄 수 있는 대형 한국화 작품을 선정했다.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 환승센터 COZYZONE에선 정주영 작가의 <북한산 No.3>(2004)이 설치됐다. 2021년 기획전시 '워밍업: 예술로 생기를 채우다>에 출품된 작품이다. 출국 전 여행객이 휴식하며 머무르는 공간인 점을 고려해 우리나라 산세의 웅장함, 고즈넉한 풍경을 감상하도록 이 작품을 선정했다.
인천공항공사 인재개발원을 방문한 해외 공항 관계자들은 "한국 미술 수준이 높은 것 같다"며 "매일 미술관으로 출근하는 기분도 들고 이전보다 회사 분위기가 부드러워졌다"고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미술은행은 소장품을 사회적 자산으로서 그 가치를 더 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오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사회공헌프로그램으로 기획된 나눔미술은행이다. 나눔미술은행에 참여기관으로 선정된 곳들에는 현장 컨설팅, 소장품 무상 대여, 작품감상자료 등을 지원해주고 있다.
특수교육시설 '서울서진학교' 대여 케이스가 그 중 하나다. 2022년 미술은행은 서울 강서구에 위치한 서울서진학교를 나눔미술은행으로 선정했다. 기관의 특성을 고려해 박영균 작가의 <꽃밭에서> 등 관찰, 경험, 놀이를 주제로 미술은행 소장품 8점을 골랐다.
미술은행은 서울서진학교 내 복도, 식당 입구 등에 약 1년간 전시를 진행했다. 시각장애인 관람객을 위해 별도 제작해 제공한 작품감상자료가 학생, 교직원, 교내 방문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서울서진학교는 수준 높은 현대미술작품을 교내에서 쉽게 감상할 수 있다는 점, 대여작품을 활용한 연계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다는 점에 높은 만족감을 표하고 있다. 나눔은행 참여가 종료된 후로는 미술은행과 정식 작품대여 약정체결(유상)을 맺고 3년째 학생들에게 일상 속 미술품 감상기회를 제공해오고 있다.
미술은행 컬렉션이 한걸음 더 나아가 공적인 역할을 수행한 케이스는 CJ CGV와의 협력 사례인 공공미술 프로젝트다. 일평균 유동인구 4만1300명 이상인 강남역 일대를 주요 시간대에 점거, 일종의 생활밀착형 미술관을 임시로 만든 사례다. 더 많은 사람들과의 접점을 만들기 위해 '현물 대여'가 아닌 '데이터 송출' 방식의 매체를 택했다.
2022년 미술은행은 소장품을 디지털화하고 블록체인상의 데이터베이스로 전환하는 실험을 법률적으로 검토했다. NFT 사용권을 발행해 지역, 수단, 매체에 따라 저작물 이용 허락을 제어하고 다수 임차인이 하나의 디지털 콘텐츠에 접속할 환경이 가능할지 자문받았다.
이같은 신사업이 기술적으로는 가능했으나 법제상 한계가 있었다. 본격적인 사업화는 시기상조로 판단됐으나 패러다임의 전환 가능성과 제도 개정의 필요성을 공유하는 계기가 된 이벤트였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디지털 공공미술 프로젝트 '공공'이다. 미술은행은 소장 작가들과 협업해 신논현역~강남역을 잇는 800m 인도를 따라 5대의 대형 디지털 스크린, 18대의 미디어폴을 설치했다. CJ CGV가 옥외 광고물 사업 운영권을 수주하고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이 매일 저녁 주요시간대에 회당 3분 상영되는 미디어 영상제작, 기획을 맡았다.
영상은 미술은행 소장품 중 한국화 장르의 여성작가 김보희, 홍푸르메, 정종미, 김지형을 선정해 제작했다. 강남구청 협조로 전광판 광고를 일시 중단하고 새벽마다 모든 기기 싱크를 맞추는 테스트 작업을 거쳤다. 2022년 4월 23대 전광판에서 동시상영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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