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니저 프로파일/라구나인베스트먼트]'원석 발굴가' 박형준 대표 "성장단계별 동행투자"투자경력 14년차 '베테랑'…한투파·4:33 출신, 넥스틴·아이디어허브 발굴
이영아 기자공개 2024-06-19 07:49:14
이 기사는 2024년 06월 13일 10:26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벤처캐피탈(VC)은 모험자본이다. VC 투자 본질은 큰 리스크를 짊어지는 대신 그에 상응하는 높은 수익률을 기대하는 것이다. 다만 좋은 기업을 발굴해 높은 수익률로 회수하는 과정은 거대한 석산에서 원석을 찾아내 보석으로 가공하는 것과 같다.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박형준 라구나인베스트먼트 대표(사진)는 '원석 발굴가'를 자처한다. 퇴사 후 떠난 40일간 중남미 여행에서 모험자본의 의미를 되새기게 됐고, 라구나인베스트먼트를 설립했다. 그는 여행 중 세상에서 가장 건조한 아타카마 사막을 만났다. 그 사막의 생명줄이 '작은 호수'였다.
모험자본의 역할은 작은 호수와 같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생태계의 생명줄이 되기 때문이다. 라구나는 스페인어로 '호수'라는 뜻이다. 사막 같은 국내 벤처기업 환경에서 오아시스와 같은 역할을 하고자 사명을 지었다. 박 대표는 잠재력 높은 기업을 발굴해 성장단계별 동행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성장 스토리: 우연인듯, 운명처럼 VC 업계 입문
1978년생 박 대표는 서울대학교 전기공학과를 졸업한 뒤 전공을 살려 동부하이텍 반도체부문 선임연구원으로 일했다. 벤처캐피탈리스트 전업 계기는 우연인듯, 운명처럼 다가왔다. '대학 동아리 선배' 김동엽 한국투자파트너스 전무와 교류하면서 VC업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박 대표는 "늘 많은 조언을 해주던 선배이고, 같은 동네에 살았기 때문에 벤처캐피탈리스트가 어떤 일을 하는지 자연스레 접하게 됐다"면서 "매력적인 직업이라고 생각했지만, 공대생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바로 전업을 꿈꾸진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던 중 2010년 국내 첫 '벤처캐피탈리스트 양성과정'(KAVA)을 수료하게 된다. 현직 벤처캐피탈리스트를 비롯해 쟁쟁한 강사진으로부터 교육 받을 수 있는 기회였다. 진심으로 교육에 임하던 중 가능성을 보게 된다. 공대 출신 벤처캐피탈리스트가 활약하는 사례를 접하면서다.
박 대표는 "전공 강점을 살려 유망 기술기업을 발굴하며 좋은 트랙레코드(실적)를 쌓는 선배 벤처캐피탈리스트의 이야기를 많이 접했다"며 "한국투자파트너스를 비롯한 국내 굴지의 VC 내부에서도 다양한 배경을 지닌 심사역들이 활약하며 좋은 성과를 내고 있었다"고 했다.
용기를 얻은 그는 벤처캐피탈리스트로 전향하게 된다. 국내 최대 VC 한국투자파트너스에서 심사역 커리어를 시작했다. 전기공학 전공은 '필살기'처럼 활용됐다. 풍부한 배경 지식과 높은 산업적 이해도는 유망 기술 기업을 먼저 알아보고 투자할 수 있는 혜안이 됐다.
넥스틴, 이엠텍, 리드, H&S하이텍을 비롯한 유망 기술기업을 발굴했다. 특히 반도체 검사장비 기업 넥스틴은 멀티플(투자원금대비회수) 13배를 기록하며 '잭팟'을 터트렸다. '될성 부른 떡잎'을 알아보고 넥스틴이 설립된 지 4개월 만에 투자를 단행했다. 27억원을 투자해 350억원을 회수했다.
굵직한 트랙레코드를 쌓던 중 2015년 게임업체인 네시삼십삼분(4:33)으로 자리를 옮겼다. 중소 개발사 투자 및 인수합병(M&A)으로 덩치를 불리는 게 게임 업계 성장 방정식이다. 박 대표는 투자 전문가로서 영입됐다. 내부 투자 본부를 세팅한 뒤 유망 기업 투자를 주도했다.
◇투자 철학: 기술 기업 관심, 성장 단계별 지속투자
2018년 라구나인베스트먼트를 설립하며 투자 색깔이 더욱 분명해졌다. 박 대표는 한투파 동기이자, 절친한 박영호 대표와 함께 라구나인베스트먼트를 설립했다. 입사 동기 두 사람은 퇴사도 같이 했다. 네시삼십삼분을 거쳐 창업도 같이 해 10년 넘게 동고동락했다.
앞만 보고 달려온 박형준 대표와 박영호 대표는 2017년 휴식차 '퇴사 후 여행'을 같이 떠났다. 행선지는 중남미였다. 40일 여행 중 세상에서 가장 건조한 아타카마 사막을 만났다. 며칠간 이어지는 사막 위에는 호수가 존재했다. 호수에는 플라망고 무리가 몰려와 작은 물고기나 풀 같은 먹이와 미네랄을 섭취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박 대표는 모험자본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주변 생태계에 생명줄이 되는 사막의 라구나처럼 벤처 생태계에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되어보자는 뜻으로 라구나인베스트먼트를 설립했다. LB인베스트먼트에서 활약하던 구경모 전무까지 영입해 삼각축을 꾸렸다.
박 대표는 "각자 전문성과 강점을 가진 영역에 집중하되 다른 파트너의 전문성을 존중하고, 서로 납득할 수 있는 딜을 소싱한다"고 했다.
남다른 균형감이 강점이다. 박형준 대표는 하드웨어엔지니어, 박영호 대표는 소프트웨어엔지니어, 구 전무는 회계사로 증권사 투자은행(IB) 출신이다. 박형준 대표는 서울대 전기공학, 박영호 대표는 연세대 정보산업공학, 구 전무는 고려대 경영학을 전공한 것도 재밌는 지점이다.
각기 다른 전공과 노하우로 포트폴리오가 구성돼 다양한 산업에 전문성을 갖고 접근이 가능했다. 박형준 대표는 기술기업, 박영호 대표는 게임·콘텐츠·플랫폼 기업, 구 전무는 프리IPO 및 상장기업 등 산업 섹터와 기업 생애주기를 아우르는 포트폴리오를 구축했다.
박 대표는 "기술 기업에 관심이 많다"며 "창업자(파운더)와 최고기술책임자(CTO)를 비롯해 기술진의 역량을 중점적으로 살핀다"고 말했다. 이어 "잠재력이 큰 초기 기술 기업을 발굴하는 일은 어렵지만, 성장 단계별 투자를 통해 포트폴리오와 지속 동행하고자 한다"고 전했다.
벤처업계 라구나가 되기 위한 노력은 현재진행형이다. 라구나인베스트먼트는 3명의 파트너가 상호보완적인 투자를 이어간다. 최소 2명 이상 찬성이 전제된 기업에 투심을 모은다. 결국에는 3명 모두 동의할 수 있는 타협점을 찾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고 한다.
◇트랙레코드: SDT, 아이디어허브, 에스엔디스플레이
성장 단계별 투자로 포트폴리오와 동행한 결과, 기업공개(IPO) 문턱에 도달한 사례가 여럿 쌓였다. 기술특례상장을 준비 중인 에스디티(SDT)가 대표적 사례다. SDT가 보유한 기술력은 양자표준기술이다. 이를 기반으로 각종 산업현장에서 발생되는 각종 데이터에 대한 정밀한 수집과 분석을 위해 초정밀 계측, 제어 장비, 데이터 분석 클라우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박 대표는 "시장에서 굉장히 필요한 기술력을 갖춘 기업이라 생각해 투자했다"고 말했다. 실제 SDT가 보유한 양자기술력은 미국, 중국 등과의 패권경쟁에서도 중요한 입지에 놓여있다. 관련 응용기술과 장비 국산화를 통해 한국의 과학기술을 대표하고 있다.
아이디어허브 또한 주요 포트폴리오다. 아이디어허브는 저평가된 특허를 찾아내 수익화하는 업체로 2016년 설립됐다. LG전자 특허센터 출신인 임경수 대표가 이끌고 있다. 국내 시장에서 특허 관련 사업으로 수익을 내는 몇 안되는 회사인만큼 일찌감치 투자를 해왔다.
박 대표는 "아이디어허브는 파트너 3명이 모두 만족하며 투심을 모은 사례"라며 "프로젝트 및 지분투자를 통해 83억원(총 6회) 투자하며, 지속 팔로우온(후속투자)했다"고 언급했다. 아이디어허브는 NH투자증권을 주관사로 선정하고, 코스닥 상장 채비에 들어갔다.
에스엔디스플레이도 좋은 사례다. 페로브스카이트 발광소재를 주력으로 한다. 페로브스카이트는 부도체·반도체·도체의 성질은 물론 초전도 현상까지 보이는 특별한 구조의 금속 산화물을 통칭한다. 우수한 전기적 특성으로 기존 실리콘을 대체할 차세대 소재로도 주목받고 있다.
◇향후 목표: "2년 이내 1000억 이상 펀드레이징 목표"
어느덧 설립 7년차를 맞은 라구나인베스트먼트는 1호 펀드 청산을 앞두고 있다. 2018년 결성한 첫 번째 블라인드펀드 '라구나청년창업투자조합1호(140억원)'가 대상이다. 해당 펀드로 아이디어허브, 채널코퍼레이션, 올거나이즈를 비롯한 굵직한 포트폴리오를 담았다.
박 대표는 "1호 펀드는 내년 말 만기를 앞둔 상황"이라며 "멀티플 4배 이상을 기록 중으로, 성공적인 엑시트(회수) 사례가 쌓일 것으로 기대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첫 펀드이기 때문에 상징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좋은 성과를 내는 것에 집중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올해 결성한 스케일업 펀드 운용에 집중하되 향후 운용자산(AUM) 규모로 점차 키울 생각이다. 라구나인베스트먼트는 지난 2월 500억원 규모 스케일업 펀드를 결성했다. 향후 2년 이내 1000억원 이상 펀드레이징을 목표로 한다. 현재 라구나인베스트먼트 AUM은 2000억원 수준이다.
박 대표는 "1호 펀드를 비롯한 성과를 바탕으로 내년부터 큰 규모 펀드레이징에 도전할 것"이라며 "올해는 스케일업 펀드를 활용해 좋은 포트폴리오 투자에 집중하고자 한다"고 했다. 이어 "티켓 사이즈(건당 투자 금액) 30억원 이상으로 적극적인 투자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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