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5년 05월 12일 08시48분 THE BOARD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얼마 전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인 원숙연 이화여대 교수는 theBoard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얘기를 했다. 삼성그룹에서 준감위 존재가 자리잡을 수 있게 한 가장 큰 자양분은 이재용 회장이라고. 이 회장이 준감위와 소통하며 위원회 활동 방향을 존중하고 있기 때문이라고.동감한다. 오너 기업에서 총수가 존중하지 않는 위원회를 어느 임원이 중하게 여길까. 이는 이사회와 기업 지배구조에도 적용할 수 있다. 오너 기업에서 이사회 경영이 자리를 잡으려면 가장 필요한 게 총수의 이사회 역할 존중이다. 이사회 권한 보장과 책임소재 명확화가 그 시작이다.
SK는 이사회 경영을 뿌리내리기 위해 노력한 그룹 중 하나다. 현재는 이사회 2.0을 안착하는 과정에 있으며 향후 이사회 3.0까지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이사회 1.0이 이사회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기반을 닦는 작업이었다면 이사회 2.0은 업무감독 중심의 역할을 강화하는 단계다. 중장기적 관점의 자문을 제공하고 리스크 관리 체계를 수립하며 감독하는 것이 여기에 포함된다.
최태원 회장 역시 이사회 경영을 강조하고 이에 대한 태도를 분명히 했다. 심지어 2021년 8월 열린 SK㈜ 이사회에서 사내이사인 최 회장과 이찬근 사외이사가 해외투자 안건에 대해 반대표를 던졌지만 나머지 이사들이 찬성해 해당 안건이 가결된 경우가 있었다. 오너가 이사회 활동과 결정을 존중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다만 SK텔레콤에선 그런 시스템이 작동하지 못했다. 최 회장은 SK텔레콤의 등기이사가 아닌 미등기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법적으로 이사회에서 의결권이 없으며 공식적인 의사결정보다 조언이나 전략적 방향을 설정하는 역할에 가깝다. 이는 재무적 책임과 법적 책임의 범위를 제한하는 장점이 있지만 동시에 기업의 실질적인 경영에 대한 책임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이번 유심 사태는 그런 의미에서 SK텔레콤 지배구조의 약점을 드러낸 사건이기도 하다. 고객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상황에서 위약금 등 보호 조치에 대한 결정을 내리는 데 있어 이사회의 명확한 책임소재와 신속한 대응이 중요했다. 그러나 복잡한 지배구조로 인해 이러한 결단이 늦어졌으며 고객 신뢰에 큰 위협으로 다가왔다. 반대로 최 회장이 결단을 하고 이사회가 따라간다면 그것도 문제가 된다. 이사회가 사실상 거수기나 다름 없다는 뜻이니. 지금껏 SK그룹의 이사회 경영은 도로 아미타불이 된다.
흔히 안전수칙은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이 있다. 각 수칙들은 누군가의 사고 이후 하나씩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기업 지배구조도 마찬가지다. 사건사고와 우여곡절 등을 겪으며 한 줄씩 쓰여져 간다. SK텔레콤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이사회의 권한과 책임소재, 미등기이사인 최 회장과의 관계에 대해 명확한 설정이 필요해졌다. 이런 경험들이 쌓이면서 지배구조 선진화로 나아가길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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