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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뿌리 찾는다' 조양호의 결단 [한진해운의 눈물]②경영진 반대 불구 2.1조 투입 '무보수경영', 대항한공 동반부실 후유증

길진홍 기자공개 2016-09-13 08:10:05

이 기사는 2016년 09월 09일 10:2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2014년 6월 대한항공 이사회를 며칠 앞둔 어느 날. 서울 서소문동 대한항공 사옥에는 긴 침묵이 흘렀다. 이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핵심 측근들에게 한진해운 자회사 편입을 공식화했다.

내부에서는 한진해운 자금대여에 이은 유상증자를 두고 반대 의견이 극심했다. 일부 임원들은 한진해운을 우선 법정관리에 보내고, 부실이 해소된 뒤에 인수하자고 주장했다. 조 회장은 그러나 뜻을 굽히지 않았다.

대한항공은 결국 그 해 6월 10일 이사회를 열고 한진해운에 대한 4000억 원의 유상증자를 결의한다. 한진해운이 발행하는 7407만 4074만 주의 주식을 인수해 대한항공의 한진해운 지분율은 33%로 치솟는다.

조양호 조수호
왼쪽부터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고 조수호 한진해운 회장, 최은영 유수홀딩스 회장

조 회장의 동생인 고(故) 조수호 회장을 거쳐 제수인 최은영 전 회장에게 넘어간 한진해운이 한진그룹으로 편입된 순간이었다. 한진해운에서 인적분할로 떨어져 나간 한진해운홀딩스(현 유수홀딩스)는 지분율이 희석되면서 그룹 계열에서 사실상 제외된다.

대한항공은 앞서 2013년 말 한진해운홀딩스를 통해 주주대출 방식으로 한진해운에 2500억 원을 대여한다. 반년 사이에 6500억 원의 자금을 수혈한 셈이다.

이후 한진그룹이 지금까지 한진해운에 2조 1000억 원의 유동성을 공급했다. 대한항공과 한진칼이 등이 직접 지원한 자금이 1조 2500억 원이다. 유상증자 이후에도 영구채 보증, 상표권 매입 등의 자금 지원이 잇달았다.

대규모 자금 지원은 동반 부실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한진해운 지원 부담이 커지면서 대한항공 역시 경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한진해운이 법정관리를 신청한 지금도 대주주 책임론에 시달리고 있다. 한진해운 부실과 물류 혼란을 초래한 1차적인 경영 책임자로서 사재출연과 그룹 지원을 요구 받고 있다.

결과적으로 당시 조 회장의 선택이 오늘날 한진그룹의 비극을 몰고 온 셈이다. 얘기는 다시 유상증자 지원을 결정한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진그룹은 당시 지원 명분으로 ‘수송보국'을 내걸었다. 그룹의 창업이념인 수송보국 철학을 실천하고자 국적선사의 정상화를 위해 구원투수로서 경영에 참여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한진 유동성 지원

산업은행을 비롯한 채권단 요구도 한 몫 거들었다. 외형확장을 구가하던 한진해운이 그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부채비율이 치솟고 적자가 누적되자 채권단은 대주주 차원의 자구이행을 요구한다.

안에서는 그러나 상당한 진통이 있었다. 이미 해운업황 부진이 가속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동반부실을 우려한 임원들이 만류하고 나섰다. 일부는 한진해운 우량 자산만 인수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내부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는 "당시 다수의 핵심 임원들이 한진해운 지원을 극구 반대했으나 조양호 회장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조 회장은 왜 이 같은 선택을 했을까. 평소 그는 조수호 회장을 끔찍이 아낀 것으로 알려졌다. 4형제 중 조수호 회장과 유독 우애가 남달랐다. 제수인 최은영 회장이 한진해운 경영을 이어받은 뒤에도 늘 동생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한진해운은 사실상 그룹의 모태가 된다. 항공업 진출 시기보다 설립 시점이 늦지만, 조중훈 창업주는 당초 수송 꿈을 안고 가업을 일궜다. 1967년 대진해운을 설립했다가 시련을 겪었으나, 다시 1977년 한진해운을 설립해 오뚝이처럼 일어섰다. 그룹 역사가 담긴 한진해운의 몰락을 두고 볼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사돈가인 롯데그룹과의 관계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조양호 회장의 제수인 최은영 회장은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넷째 동생인 신정숙 씨의 장녀이다.

최 회장은 한진해운이 극심한 자금난에 빠지자 롯데그룹에 구원 요청했다. 롯데의 지원은 불발됐으나, 당시 한진해운이 통째로 사돈기업으로 넘어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조 회장의 선택은 잠시 빛을 보는 듯했다. 인수 후 비용절감과 노선 합리화 등 구조조정을 통해 2014년 2분기부터 영업흑자를 실현하는 등 가시적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드리운 해운 불황을 뒤집기는 역부족이었다. 유럽 경기침체와 중국 발 경기둔화와 맞물려 컨테이너선복 공급과잉 악재가 찾아온다. 손쓸 겨를도 없이 불가항력적인 외생 변수에 발목이 잡혔다. 결국 독자적 자구노력만으로 유동성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조 회장 스스로 더는 내부 반발을 잠재울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것으로 분석된다. 대한항공의 4000억 원 유상증자와 1000억 추가 지원 카드가 그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최선이었다.

그룹 핵심 관계자는 "조 회장은 마지막까지 한진해운을 살릴 수 있는 방안을 찾으라고 임원들을 독려했다"며 "하지만 그룹 사정이 2년 전과 많이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그의 영향력이 그룹 내부에서 이전만 못하다는 얘기가 된다. 업계 관계자는 "임원들 사이에 한진해운 경영을 최 회장에게 계속 맡겼다면 그룹 상황이 이렇게까지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자조 섞인 얘기도 나온다"며 "조 회장이 보수를 포기하면서까지 정상화를 위해 노력했으나 결국은 수포로 돌아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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