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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와 조너선 더튼의 '비극' [thebell desk]

최명용 산업2부장공개 2017-11-30 08:00:40

이 기사는 2017년 11월 29일 08:32 더벨 유료페이지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2002년 5월 10일 코스피는 20포인트 하락한 817.93에 장을 마쳤다. 이날을 계기로 코스피는 내리막길을 걸어 이듬해인 2003년 3월 17일 512까지 추락했다.

증시에 뿌려진 하나의 리포트가 촉발한 연쇄 작용이었다. UBS워버그증권 조너선 더튼 애널리스트는 삼성전자에 대한 투자 의견을 보유(Hold)로 하향 조정하고 목표주가를 58만원에서 42만원으로 깎았다. 당시 더튼 애널리스트는 'D램과 낸드플래시 공급 과잉이 예상돼 반도체 가격이 하락할 것'이란 요지의 리포트를 작성했다.

삼성전자는 하룻만에 7.7% 하락했다. 당시 주가는 33만4000원이었다. 더튼 애널리스트의 리포트를 시작으로 외국계 증권사들의 삼성전자 매도가 이어졌다. 삼성전자가 하락하자 대형주들이 덩달아 떨어졌다. 코스피는 속절없이 추락했다.

조너선 더튼은 이미 악명(?)이 높았다. 그만큼 영향력이 컸다. 2000년 초 삼성전자 투자등급을 적극 매수로 올리자 삼성전자 주가가 28만원에서 38만원까지 치솟았다. 투자등급을 보유로 낮추자 13만원까지 떨어졌다. 삼성전자 주가가 춤을 추자 코스피 지수도 춤을 췄다. 2000년 코스피는 연초 1059에서 연말 504까지 떨어졌다.

외국인 투자자에 한국 증시가 휘청이던 시기였다. 대형주 중심의 포트폴리오와 한 방향으로 쏠리는 투자 패턴 탓에 외국인 투자자들은 관심 대상이었다. 무엇보다 외국인 투자자라면 '뭔가 있다'는 분위기였다. 게다가 이름있는 외국계 애널리스트의 말이라니 기관들도 투매에 동참할 일이었다.

세월이 흘렀다. 15년이 지났다. 이번엔 모건스탠리다.

2017년 11월 27일 모건스탠리는 삼성전자에 대해 투자의견을 하향했다. 모건스탠리는 '낸드플래시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하락할 것'이란 요지의 리포트와 함께 삼성전자 목표주가를 낮췄다.

삼성전자 주가는 하룻 만에 5% 하락했고 시가총액 18조원이 사라졌다. 삼성전자는 5.08% 하락한 263만2000원을 기록했다. 코스피지수는 1.44% 하락한 2507.81을 기록했다. 시가총액이 커졌고 삼성전자의 절대 주가 수준은 달라졌지만 패턴은 15년 전이나 똑같다. 외국계 증권사 리포트 하나에 삼성전자가, 코스피지수가 휘청였다.

지난 15년간 수많은 위정자들이 한국형 IB를 키우고 금융 산업을 키운다고 했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 자본시장은 걸음마 수준이다. 당국자들은 규제 일변도 정책만 내놓았다. 토종 IB가 출범하는 데에만 20년이 걸렸다. 자본시장과 금융시장에 대한 공신력과 시장의 신뢰도는 높지 않다. 외국계라고 하면 '뭔가 있을 것'이란 분위기도 여전하다. 토종 증권사들은 삼성전자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리포트 한줄을 쓰지 못한다. 대형화도 안돼 있고, 금감원 눈치에, 정부 눈치도 봐야 한다. 한국 증시와 금융 산업의 비극이다.

더 큰 비극도 있다. 증시에 가장 영향력이 큰 종목은 여전히 삼성전자다. 그 삼성전자의 주력 제품이 반도체란 점도 15년 전이나 똑같다.

그동안 정책 당국자들은 삼성을 끌어내리기에 바빴다. 삼성을 능가할 새로운 비즈니스를 키우는 데엔 인색했다. 중소기업에 돈을 퍼주는 정책은 선택해도, 중소기업을 구조조정하고 새로운 비즈니스를 만드는 데엔 힘을 쓰지 않았다. 일자리를 만든다면서 보조금은 풀었지만 새로운 산업은 옥죘다. 우버가 나오는 판에 택시의 생존권을 챙기는 게 우선이었다. 알리바바와 아마존이 세상을 흔드는 동안 골목상권 지키기에 열을 올렸다.

미국에선 구글이 나왔고 아마존이 나왔다. 페이스북, 넷플릭스를 더해 FANG이라 부른다. 중국에선 텐센트가 나왔고 알리바바가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다. 침체를 겪고 있다지만 일본도 소프트뱅크가 전세계를 돌며 신기술 기업 사냥을 다니고 있다.

삼성을 뛰어넘는 새로운 기업을, 반도체를 능가하는 새로운 비즈니스를 만들지 못한 것은 삼성의 비극이자 한국의 비극이다. 그런 삼성전자만 바라보는 한국 증시도 비극이다. 앞으로 15년 뒤엔 달라진 모습을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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