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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안, 50년 전통 '수력·수자원' 분야 강자 [전환기 엔지니어링업]①댐 전문가 김형주 회장 설립, IMF 후 프라임에 매각

이명관 기자공개 2017-12-18 08:10:01

[편집자주]

엔지니어링은 기술 기반의 설계 산업이다. 본격적인 건설 공사에 앞서 인프라를 구축하는 핵심 역할을 맡고 있다. 기술 인력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산업이지만 정작 건설업에 비해 인지도가 낮다. 주요 수익원이었던 사회간접자본(SOC) 발주가 줄어드는 등 전환기를 맞고 있다. 더벨이 베일에 가려졌던 엔지니어링 업체들의 현주소와 향후 행보 등을 점검한다.

이 기사는 2017년 12월 13일 10:21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삼안은 엔지니어링 분야의 터줏대감이다. 1967년 설립된 이래 50여 년간 국내 수력·수자원 분야에서 핵심 역할을 해왔다.

삼안이 수주한 대표적인 사업에 역사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국내에서 두 번째 저수용량을 가진 충주댐, 국내 최초이자 세계 최대인 경기 안산 일대 시화호 조력발전소 등이 대표작이다.

◇댐 설계 강자 '탄생' 이끈 고 김형주 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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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안을 설립한 이는 고 김형주 전 회장이다. 국내 수문학분야의 거두로 알려진 인물이다. 김 전 회장은 6·25 전쟁의 상흔이 채 가라앉기 전부터 수자원관리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댐 건설에 종사해 왔다. 대학시절부터 댐 분야에 대한 관심도가 높았다고 한다. 국내 지형상 언제든지 홍수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관심은 건설교통부 입사로 이어졌다.

11년 동안 건설교통부에서 공직자 생활을 했던 김 전 회장은 퇴직 이후 직접 회사를 차리기로 결심했다. 우선 기업에 대한 부족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친척 회사에 입사에 2년간 경험을 쌓았다. 이후 댐 건설을 전문으로 하는 건설회사로 옮겨 3년가량 근무했다.

그 무렵 정부는 용담댐 건설을 추진했다. 문제는 당시 국내에 댐 설계 기술자가 마땅치 않았다는 점이다. 이를 전해 들은 김 전 회장은 공직 선배인 노승옥 씨와 댐 설계를 맡기로 하고 전문 엔지니어링 업체인 한국종합기술공사에 기술상무로 입사했다.

국내 유일한 댐 설계 전문가였던 김 전 회장은 평생의 숙원이었던 용담댐 사업을 책임졌다. 월급 외에 수익의 일정 부분을 김 전 회장이 갖는 조건이었다. 설계용역 예산만 1억 1000만 원으로 당시 국내에서 최대 규모였다. 규모가 컸던 만큼 김 전 회장도 높은 수익을 거뒀다.

김 전 회장은 용담댐 설계를 통해 벌어들인 자금을 기반으로 1967년 삼안을 설립했다. 김 전 회장은 설립 자본금 190만 원 전액을 출자했고 선배인 노 씨는 엔지니어로 합류했다.

삼안은 설립 이후 곧바로 대규모 공사를 따냈다. 충주댐 개발 사업이었다. 엔지니어링 업계 관계자는 "당시 국내에서 충주댐 개발 프로젝트를 실행할 수 있는 곳은 삼안이 유일했다"며 "사실상 수의계약 형태로 공사를 수주했다"고 말했다.

수주 이후 삼안은 충주댐 개발공사에 참여할 해외 협력사 물색에 나섰다. 정부가 계약당시 해외건설사와 협력할 것을 단서로 달았기 때문이다.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는 충주댐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외국 자본 유치도 필요했다. 정부는 국내 업체가 독자적으로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조그만 회사 삼안이 해외에서 협력사를 구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수많은 외국계 업체가 거절하다가 우여곡절 끝에 미국 대형 건설사인 벡텔(Bechtel)과 연락이 닿았다. 벡텔은 풍부한 사업 경험과 기술, 자본력을 바탕으로 세계 각국의 대형 공사를 맡은 곳이다. 사업 제안을 받은 벡텔은 삼안의 낮은 인지도에 고심했지만 결국 충주댐 개발 사업 참여를 결정했다.

삼안은 벡텔과 손 잡고 충추댐 개발 공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 했다. 국내 대표 댐 설계 업체로 자리매김 한 계기가 됐다.이후 삼안은 경상남도 합천군 대병면 합천댐, 전라남도 순천시 주암댐, 충청남도 금산군 금산댐 등 굵직한 다목적 댐 개발 사업에 참여했다.

◇후계자 전무…경영권 '프라임개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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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형주 삼안 전 회장
국내에서 기반을 다진 삼안은 해외 진출에도 성공했다. 1990년대 인도네시아 페마리(PEMALI) 지역 용수조절계획 설계를 시작으로 케냐 손두미루(SONDU·MIRU) 수력발전소 설계도 맡았다. 이외에 일본, 아프리카, 네팔 등 지역에도 진출하며 성장을 거듭했다. 그 사이 종업원은 1000명을 넘었다.

이처럼 성장가도를 구가하던 삼안에겐 불안 요소가 하나 있었다. 김 전 회장의 뒤를 이어 회사를 이끌어갈 만한 인물이 없었다. 슬하에 외동딸이 있었지만 경영에는 관심이 없었다. 동생들 중에서도 믿고 맡길 만한 인재가 없었다.

결국 김 전 회장은 경영권을 매각하기로 결심하고 1997년 보유하고 있던 지분 중 일부(5%)를 제외한 95%를 기아그룹 계열의 기산에 매각했다. 매각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김 전 회장과 김선홍 기아그룹 회장이 동향 출신이라는 점이 큰 역할을 했다.

이듬해 IMF 경제위기기 불어닥치면서 변수가 발생했다. 경제위기 여파로 기산을 포함한 기아그룹 28개 계열사가 모두 부도를 맞았다.

이때 삼안을 인수한 곳이 프라임그룹이다. 프라임그룹은 1998년 60억 원에 삼안을 인수한 이후 서은상호신용금고(현 프라임상호저축은행·1998년) 한글과컴퓨터(2003년) 영화업체인 이노츠(현 프라임엔터테인먼트·2005년) 등을 잇따라 사들였다. IMF로 경영난을 겪던 알짜 업체들을 싼 값에 사들였다.

프람임그룹 계열로 편입된 이후 삼안은 제자리를 찾지 못했다. 1999년 매출액 506억 원을 기록한 이후 부침을 보였다. 2002년에는 매출액이 200억 원대까지 감소했다.

이후 위기를 느낀 경영진이 공격적인 영업활동이 벌였고, 반등에 성공했다. 삼안 관계자는 "당시 김기우 전 삼안 대표가 전국 지방자치단체를 다니면 영업을 직접 챙겼다"며 "IMF 경제위기 이후 경기가 회복되는 상황과 맞물리면서 그 효과가 배가 됐다"고 말했다. 삼안은 2003년 매출액이 1156억 원으로 늘어났으며 2008년 2000억 원을 돌파했다. 2009년엔 설립 이래 최고치인 2916억 원을 기록하며 업계 2위로 발돋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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