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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화학 마지막 1세대' 허수영 부회장 퇴장 사원에서 롯데케미칼 BU장까지…현대석유·KP·삼성정밀 빅딜 이끈 성공신화 주역

박기수 기자공개 2018-12-26 09:17:41

이 기사는 2018년 12월 21일 14:16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현재의 롯데케미칼은 자타공인 롯데그룹 내의 핵심 계열사이자 국내 석유화학업계를 이끄는 선두 주자다.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이 정도 존재감은 아니었다. '호남석유화학(롯데케미칼의 전신)'이 롯데그룹의 계열사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한 해 매출 20조원을 바라보는 초대형 기업이 되기까지의 성장의 역사에서 '신격호-신동빈 회장'과 함께 중심에 섰던 인물이 있다. 올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는 허수영 롯데케미칼 부회장(화학BU장, 사진)이다.

롯데그룹은 2019년 정기임원인사를 통해 김교현 롯데케미칼 사장을 화학BU장에 선임하기로 했다. 신 회장 경영 복귀 이후 이뤄지는 첫 정기 인사에서 허 부회장의 사임과 유임설이 업계에 무성했지만 결국 물러난다는 예측이 현실이 됐다. 올해 말로 롯데케미칼의 등기이사직에서도 물러난다. 허 부회장의 경영 일선 퇴임은 국내 석유화학업계의 첫 세대가 막을 내린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허 부회장은 2015년부터 한국석유화학협회의 협회장이기도 하다. 지난 20일에는 석유화학협회의 2018년 마지막 일정인 정기 이사회가 열렸다. 이사회 행사가 끝난 후 허 부회장이 기자들을 불러모아 '미니 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허 부회장은 43여 년간의 직장 생활을 회상했다.

1951년 6월생인 허 부회장은 경북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화학공학과를 졸업했다. 졸업 전 입사를 확정했던 곳이 바로 호남석유화학이었다. 1976년의 일이다.

그로부터 19년 뒤인 1995년 말. 호남석유화학에 최초로 '비전실'이 생긴다. 향후 미래 사업 계획을 수립하고 인수·합병(M&A)을 주관하는 사내 핵심 기구였다. 이때 허 부회장은 초대 비전실장을 맡는다. 허 부회장이 약 43여년간의 직장 생활에서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꼽았던 때이기도 하다.

허 부회장은 "1995년 당시 롯데케미칼의 매출액이 한 5000억원 정도 했다"라며 "10년 뒤 매출 목표가 3조원이었는데, 이 목표를 2003년~2004년에 조기 달성할 수가 있었다"라며 담담하면서도 자신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허수영1

매출 3조 조기 달성의 역사를 달성하기 전까지 호남석유화학이 순탄한 길만 걸었던 것은 아니다. 1997년 말 당시 IMF 경제위기가 석유화학업계에도 불어닥쳤다. 국내 경제구조의 기본 틀을 뒤바꾸는 대변혁 속에서 삼성종합화학, 현대석유화학, 대림산업, 한화석유화학 등이 구조조정 대상이 됐다.

호남석유화학은 '생존자'였다. 허 부회장은 생존의 비결로 신격호 명예회장의 '차입 감축' 주문을 회상했다. 허 부회장은 "IMF 경제위기 당시 기업공개(IPO)를 통해 부채 부담을 크게 줄였다"며 "경제위기가 닥치자 신격호 회장이 가장 먼저 주문했던 게 바로 '차입 감축'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롯데물산 등을 통해 저리 금융을 받으며 재무구조를 안정화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재무지표상으로도 보수적 자금 운용의 역사가 드러난다. IMF 한파가 불어닥쳤던 1997년 이후 호남석유화학의 부채비율과 차입금의존도, 순차입금비율은 모두 급감한다. 대표적으로 부채비율은 1997년 말 225.4%였다가 이듬해 145.7%, 1999년 말에는 63.7%로 떨어졌다. 단기차입에 대한 대응력을 판단하는 재무 잣대인 유동비율은 80%~90%대를 유지했다.

호남석유화학 재무지표

재무 안정화를 이뤄낸 호남석유화학은 2000년 하반기 무렵부터 유동성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현대석유화학 인수를 검토했다. 이후 2001년 현대석유화학이 매각 대상에 오르자 사내 인수TF팀을 재정비하고 매각 상황에 대비하기 시작했다. 전략경영과 신규사업을 담당하던 허 부회장도 이 인수전의 중심에 섰다.

IMF 이후 신중한 M&A 기조가 퍼져있던 당시의 분위기에 호남석유화학은 LG화학과 현대석유화학을 공동인수한다. 2002년 초다. 호남석유-LG화학 컨소시엄은 단독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로 2003년 1월 30일 현대석유화학의 부채와 주식을 모두 인수한다. 총 인수금액 1조8272억의 '빅딜'이었다. 이후 규모가 가장 컸던 대산 2단지를 호남석유화학이 가져가며 LG화학과 분할을 마무리했다.

허수영 부회장의 M&A 2탄은 신동빈 회장과 함께했던 2004년이다. 현대석유화학을 인수하며 에틸렌 사업 강화에 성공했던 호남석유화학은 방향족 부문을 사업영역으로 하는 KP케미칼의 인수를 추진했다. 당시는 한국에 첫발을 내디딘 신동빈 회장을 롯데케미칼 대표이사로 선임하며 사세 확장에 열을 올리던 시기였다.

'대표이사' 신동빈 회장과 '행동대장' 허 부회장을 필두로 호남석유화학은 결국 2004년 7월 말 채권단 관리를 받고 있던 KP케미칼의 지분 53.8%(5100만 주)를 인수하며 경영권을 갖게 된다. 당시 KP케미칼의 2004년 기준 한 해 매출은 1조1152억원이었다. KP케미칼 인수 다음 해인 2005년 호남석유화학은 연결 기준 매출 5조3246억원을 기록하며 대형 유화사로 거듭난다.

호남석유화학

두 회사의 인수 후 롯데그룹 내부에서는 호남석유화학과 롯데대산유화, KP케미칼을 '유화 3사'라고 일컬었다. 허 부회장은 2007년과 2008년 각각 롯데대산유화와 KP케미칼 대표이사를 맡았다. 2009년과 2012년 있었던 호남석유화학-롯데대산유화, 호남석유화학-KP케미칼 합병 작업을 허 부회장이 이끌었던 셈이다. KP케미칼 합병 이후 사명이 현재 사명인 '롯데케미칼'로 바뀐다. 이 모든 역사를 함께했던 허 부회장은 2012년 초 롯데케미칼의 대표이사에 올랐다.

이외 2010년 말레이시아 LC타이탄, 2015년 이뤄졌던 삼성과의 빅딜에서도 허 부회장이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회사의 성장기부터 현재의 모습을 만든 기틀을 잡는 역할, 글로벌 유화사로의 사세 확장까지 허 부회장은 중간자이자 책임자로 활약했다. 허 부회장은 향후 롯데케미칼의 성장 행보에도 힌트를 남겼다. 지금까지의 성장 전략이었던 M&A의 강화다.

허수영3
허 부회장은 "몇 년 전 삼성정밀화학 등을 인수했지만 여기서 안주하지 않고 회사를 더 키우려면 더 많은 M&A가 필요하다"면서 "연구를 통해 사업을 시작하는 것은 비용도 많이 들고 여러모로 어렵다"고 말했다. 이번에 대표이사로 내정된 임병연 부사장에 대해서도 "M&A는 항상 눈여겨 봐왔기에 앞으로도 기조가 바뀔 것 같지는 않다"면서 "(임 부사장이) 롯데지주에서 M&A를 담당했기 때문에 향후 분위기도 비슷할 것"이라고 말했다.

허 부회장은 겸손하고 소탈한 성격으로 알려져 있다. 퇴임 소감에 "시원섭섭하다"라는 소감을 남긴 허 부회장은 동시기에 은퇴를 선언한 '맞수이자 친구' 박진수 LG화학 부회장을 두고는 "그 친구(박 부회장)가 먼저 가면 나는 열심히 뒤따라만 갔다"며 겸손함을 내보였다. 은퇴 이후 향후 계획에 대해서는 "그동안 아내에게 잘 못 해줬던 것을 보상하고 여행도 다닐 예정"이라고 말했다.

허 부회장의 '마지막 바람'은 내년 5월 준공 예정인 미국 ECC(에탄크래커) 준공식에 참석하는 것이다. 허 부회장이 직장 생활 마지막 시기에 심혈을 기울였던 작업이기 때문이다. 허 부회장은 "준공식 참석은 내가 결정할 문제는 아니지만 참석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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