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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그룹 리밸런싱 스토리]그룹사간 성과 경쟁, 중복 투자 부추겼나②소재·전기차 충전·수소 등 투자 겹쳐…'따로 또 같이' 비효율 지적

정명섭 기자공개 2024-03-26 09:20:17

[편집자주]

SK그룹이 작년 말 대규모 인적쇄신 이후 사업 포트폴리오 재점검, 비용 감축으로 경영 고삐를 죄고 있다. 근래 최태원 회장의 '해현경장(解弦更張)' 발언과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의 등판은 그룹의 위기의식을 대변한다. 과거의 성장 방식이 더이상 정답이 아닌 걸까. 확실한 건 SK그룹의 2024년은 예년과 다를 것이란 점이다. 더벨은 경영 시스템과 사업구조를 재정비하고 있는 SK그룹을 살펴본다.

이 기사는 2024년 03월 22일 16:11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지난 2021년 9월 29일 SKC 이사회는 이례적으로 안건을 부결했다. 그해 이사회는 총 13차례 열렸는데 안건이 통과하지 않은 건 이번이 유일했다.

해당 안건은 영국 실리콘 음극재 기술기업 '넥세온'에 대한 지분 투자 건이었다. SKC가 사모펀드 운용사인 SJL파트너스, BNW인베스트먼트와 넥세온에 8000만 달러(약 1000억원)를 투자하는 게 골자다.

이사회에 참석한 이사 7명이 의결한 결과 찬성 3표, 반대 1표, 기권 3표가 나왔다. 주목할 점은 유일한 반대표가 사내이사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당시 SKC 사내이사진은 대표이사인 이완재 사장과 기타비상무이사인 장동현 SK㈜ 대표이사 사장(현 SK에코플랜트 부회장), 이성형 SK㈜ 재무부문장(CFO)으로 구성됐다.

반대표를 행사한 건 다름 아닌 장 사장이었다. 이 CFO는 기권표를 냈다. 내부자인 사내이사진에서 반대와 기권표가 모두 나온 건 주요 기업 이사회에서 보기 드문 일이었다. 장 사장은 SKC 이사회 의장이기도 했다. 이를 두고 SK㈜와 투자가 겹쳐 장 사장이 퇴짜를 놓은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실제로 SKC 이사회가 열리기 두 달 전인 2021년 7월, SK㈜ 산하 소재 계열사 SK머티리얼즈는 미국 실리콘 음극재 기업 그룹포틴테크놀로지스와 합작법인(JV)을 설립한다고 공시했다. 장 사장은 이후 SKC가 유사한 투자 건을 가져오자 매우 언짢아했다고 한다.

이 안건은 다음달 열린 이사회 추가 보고를 거쳐 2021년 11월 1일 이사회에서 가결됐다. 초기 안건은 SKC가 넥세온과 JV를 설립하는 내용이었는데, 지분 투자로 협력 내용이 축소되면서 이사회를 통과할 수 있었다는 후문이다.

SK그룹 내에서 투자 분야가 겹친 대표적인 사례다. '따로 또 같이'를 내세우는 SK그룹은 2020년대 들어 계열사의 자율 경영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SK수펙스추구협의회의 컨트롤타워 기능은 약화하고 계열사의 이사회 중심 책임 경영이 강화됐다. 빠른 의사결정을 기반으로 사업을 확대하는 데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계열사들이 각 사의 파이낸셜 스토리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새 먹거리를 두고 중복 투자하는 비효율이 발생하는 부작용도 나타났다.

SK㈜와 SKC는 실리콘 음극재 이전에 배터리용 동박 시장에도 동시에 진출했다. SK㈜는 2019~2020년 중 중국 동박업체 왓슨에 두 차례에 걸쳐 3800억원을 투자해 2대 주주(지분 30%)에 올랐다. SKC는 2020년 1월 국내 동박기업 KCFT(현 SK넥실리스)를 인수했다.

시장에선 중복 투자에 대해 우려의 시선을 보냈다. 당시 SK㈜ 측은 SKC와 왓슨의 동박사업 통합 운영으로 글로벌 시장 지배력을 공고히 하겠다고 강조했다. 왓슨이 중국 시장을, 그외 시장을 SKC가 담당하는 전략이 그려졌다. 그러나 이후 두 회사의 유기적인 움직임은 없었다. 되레 지난해 SK㈜가 왓슨의 지분 매각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나왔다.

이외에도 전기차 충전, 수소, 친환경 플라스틱 등 신사업 부문에서 유사한 투자 건들이 다수다. 전기차 충전 사업 관련 사업을 하는 곳은 SK㈜(SK시그넷), SK E&S(에버차지), SK네트웍스(SK일렉링크, SK렌터카), SK에너지 등이다. 이들은 충전기 제조와 운영, 관리·감독 등 각 영역에서 역할이 다르고 타깃하는 시장이 달라 '제 살 깎아 먹는' 관계로 보긴 어렵다. 다만 그룹 간 시너지를 주도할 사업자가 모호하다는 지적이 있다.

재계 일각에서는 SK그룹이 지난 몇 년간 선제 투자를 강조하면서 SK㈜와 주요 계열사 간 M&A, 지분 투자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유사한 신사업에 동시에 투자하는 경우가 늘었다고 분석한다. 투자 성과를 쌓기 위한 경쟁이 중복 투자를 불러왔다는 얘기다. 고금리 기조와 글로벌 경제 성장 둔화로 투자환경이 악화하면서 이는 SK그룹의 약한 고리가 됐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작년 10월 "SK가 여러 곳에 투자하고 있는데 투자 시스템이 잘 작동하는지 철저히 검증하라"고 지시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평가다. 이후 SK그룹은 투자 조직부터 정비했다. 작년 말 인사에서 SK수펙스추구협의회와 SK㈜에 분산된 투자 기능을 SK㈜로 일원화하고 투자 인력의 상당수를 각 계열사로 내려보냈다.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은 부임 이후 사업구조 개편을 주도하며 중복 투자 건을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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