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2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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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는 CFO, 지는 CFO [thebell desk]

문병선 산업1부장공개 2019-12-20 07:16:16

이 기사는 2019년 12월 19일 07:29 더벨 유료페이지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연말인데도 예년과 다르게 다른 부서 팀장들과 술자리도 갖지 않는다. 팀장급 20~30% 인력을 줄인다는 방침이 세워졌다. 언제 누가 나갈지 모르고 나도 그 대상이 될 거 같아 출근하면 불안한 마음으로 일하고 있다."

중견기업 한 재무팀장이 점심 자리에서 한 말이다. 이 중견기업은 올해 적자전환을 걱정하고 있고 비용절감을 위해 감원을 추진하고 있다. 조용한 연말에 우울한 점심이 된 날이다. "'재무팀장'도 버틸 수 없는 기업, '재무팀장'도 아까워하지 않는 기업, 상황이 얼마나 어려웠으면..."하는 생각도 들었고 동시에 "가장 어려운 때 필요한 인물이 재무팀장인데..."하는 생각도 들었다.

CFO(최고재무책임자)가 1년 중 가장 바쁜 시기는 연말연초다. 연간 결산을 해야 하고 각종 사업계획서를 점검해 재무적 보완 작업을 한다. 최고경영자(CEO)의 방에 불려 들어가 호통을 듣기 일쑤다. 타 부서가 제기한 불만을 혼자서 감내하고 참아내야 하는 시기도 연말연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바쁜 시기에 누구보다 더 자리 걱정을 해야 하는 팀장 자리 역시 재무팀장이라는 자리다.

재계 한 관계자는 “전통산업에 속할수록, 기업의 규모가 작을수록 재무팀장의 역할을 경리·기장 업무에 국한해 놓은 기업이 많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니 기업의 '핵심'이 될 리 만무하다. 겉으로 보기엔 요직처럼 보이지만, 연말이면 자리를 걱정해야 하는 일선 부서 팀장들과 다를 바 없는 자리”라고 했다.

‘내부감사·자산밸류에이션·투자전략·기업금융·리스크관리·전략적비용관리’ 등 요즘 CFO에게 주어지는 역할은 이들에게 꿈만 같은 일이다. 능력이 되는지 여부를 떠나 조직 내에서 역할이 주어지지 않는다. 회계법인이나 컨설팅펌에 외주를 주는 경우가 많다. 오너의 사고도 중요한 변수다. 재무팀장을 ‘금고지기’ 정도로 생각하는 오너가 부지기수다.

하지만 기업 경영환경이 더 악화하고 있는 요즘 CFO의 역할은 그 어느 때 보다 중요해 지고 있다. 대기업집단은 이미 금융위기 이전부터 CFO의 역량을 강화하며 권한과 의무를 무겁게 해왔다. ‘CFO를 거쳐야 CEO(최고경영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주요 대기업집단 계열사들의 CEO 이력을 살펴보면 CFO 출신이 많아지는 추세다.

국내에서도 2000년대 중반부터 CFO의 역할 재정립 논의가 있어왔다. 과거 경리재무담당 임원과는 질적으로 다른 CFO의 위상이 만들어진 것도 이후 부터다. 재무부서를 단순 관리 부서가 아닌 핵심 경영전략 수행 부서로 바꾸는 움직임이 일었다. 서울대 CFO아카데미를 맡고 있는 박철순 학장은 “회계, 세금, 자금 업무 뿐만 아니라 재무전략, 투자관리, 예산관리, 성과평가, 구조조정 등 기업 전반의 기획 및 재무 가치 사슬상의 의사결정을 내리고 책임지는 수퍼CFO(Super CFO)의 개념이 확산되고 있다”고 했다.

2019년 한 해를 마무리하고 2020년을 준비하는 기업들 인사에서도 이런 추세는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모 그룹은 재무라인의 돋보이는 승진 인사가 있는 반면 일부 기업들은 둔화된 경기와 쪼그라든 살림에 앞날을 걱정하는 처지에 몰렸다. ‘뜨는 CFO와 지는 CFO’를 가르는 건 ‘뜨는 기업과 지는 기업’이겠지만 ‘CFO를 띄워야 혹시 기업이 살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한번쯤은 해 볼만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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