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M&A 전략을 묻다]얼어붙은 팔로우온 투자…팹리스 위기 시그널⑨엑시트→재창업 '선순환' 구축의 핵심은 'M&A'
김혜란 기자공개 2022-11-22 13:02:27
[편집자주]
반도체 기업 간 인수·합병(M&A)은 다른 섹터에서 이뤄지는 딜에 비해 난이도가 높다. 장벽 높은 반독점심사, 조 단위에 이르는 위약금. 이런 특성 탓에 원매자가 인수 의지가 있어도 함부로 뛰어들기가 어렵다. 그러나 M&A가 취약한 국내 시스템 반도체 생태계를 강화하는 데 매우 유리한 전략임은 분명하다. 'K-반도체' 역시 해외 기업 인수를 통해 생태계를 넓혀왔다. 전 세계적으로 '반도체 전쟁'이 심화되며 M&A 환경은 더 어려워지고 있다. 국내 기업들이 선택할 전략과 성공 가능성을 가늠해 본다.
이 기사는 2022년 11월 17일 16:51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시스템 반도체 강국으로 거듭나기 위한 조건 중 하나는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팹리스(설계전문) 배출이다. 고성능 인공지능(AI) 반도체 등 새로운 수요가 창출되는 4차산업 고도화 속에서 전 세계 팹리스들은 기회를 찾고 있다.국내에서도 그 흐름에 올라타기 위해 지난 몇 년간 많은 팹리스 스타트업이 설립됐다. 이들 중 '스타 팹리스'가 얼마나 탄생하느냐가 한국이 앞으로 전 세계 비메모리 시장에서도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느냐와 직결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팹리스를 둘러싼 경영 환경이 좋지만은 않다. 경기침체로 인한 유동성 위기는 예상치 못한 변수다. 올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팹리스 스타트업들에 돈이 몰렸으나 하반기 들어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개별 스타트업이 투자를 무사히 받았다고 해도, 엑시트(투자금 회수) 시점에 또 다른 장벽을 만나 기로에 서게 된다. 전체 생태계가 커지려면 창업주가 M&A를 통해 엑시트(투자금 회수)하고 이렇게 번 돈으로 재창업을 하는 선순환 구조가 구축되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국내에선 팹리스 M&A가 이뤄지기 매우 어려운 환경이라는 게 업계와 M&A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유동성 위기, 투자 씨가 말랐다
스타트업은 기업 생애주기의 출발점이다. 스타트업은 지속적으로 성장 자금을 확보해 사업을 지탱한다. 이를 위해선 자본시장의 역할이 중요하다. 팔로우온(Follow on·후속투자) 투자가 원활하게 이어져야 한다. 그리고 'M&A→재창업'이 활발하게 이뤄져야 업계에 돈이 돌고 생태계가 탄탄해질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팔로우온 투자를 받을 수 있을지를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인 팹리스 스타트업들이 많다. M&A와 팹리스 업계 관계자들은 올해 상반기까지 만해도 분위기가 좋았으나 4분기로 들어오면서 급격히 시장이 얼어붙었다고 입을 모은다.
상반기까진 워낙 유동성이 풍부한데다 정부의 강력한 반도체 산업 육성 의지, 시스템 반도체 산업의 성장성에 대한 기대감이 맞물려 자본시장에서 높은 몸값을 평가받는 팹리스들이 많았다.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컨트롤러 전문 팹리스 파두의 경우 투자유치 과정에서 기업가치가 1조원대로 거론되기도 했다.
스타트업의 경우 당장 수익을 못내더라도 투자를 유치해 인건비, 연구·개발(R&D)과 양산 비용을 감당한다. 팔로우온 투자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벼랑 끝에 내몰릴 수밖에 없다. 한국팹리스산업협회 기준 국내 팹리스는 130여개에 달한다. 이 중 중견 기업이나 이미 상반기 투자유치를 끝낸 기업들은 버틸 여력과 체력이 있으나 그렇지 않은 스타트업은 생존을 걱정해야 한다.
반도체 기업에 투자한 이력이 있는 한 국내 사모투자펀드(PEF) 운용사 대표는 "스타트업은 단계별 성장 자본 수혈이 잘 이뤄져야 한다. 벤처캐피털(VC)이나 PEF 단계로 넘어올 때까지 계속 투자받아야 하는데 그 롤을 해주는 기관들의 돈이 말랐다"며 "(투자 유치를 못 받은 기업들이) 내년에 매물로 나온다고 해도 받아줄 곳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모태펀드 등 브릿지 성격의 정책 자금이 매우 중요한 시기"라고 지적했다.

◇미국·이스라엘 같은 모델 못 만드나
스타트업이 초기 기반을 잘 닦고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 기존 투자자와 창업주의 엑시트라는 과제를 해결해야 하는 시점이 온다. 이때 기업공개(IPO)를 통해 투자자의 자금 회수를 돕는 것도 방법이지만, 전체 생태계 강화 측면에서는 M&A가 중요한 고리가 될 수 있다. 매각으로 돈을 번 창업자들이 재창업에 나서고, 이를 통해 자국 시장을 키우는 선순환 구축의 시작점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내 기업들은 대부분 IPO를 선택한다. 여기에는 한국에선 대기업이 팹리스 스타트업을 인수하는 사례가 많지 않은 점도 영향을 미친다.
국내 대기업들이 혁신적인 기술을 가진 스타트업을 인수하는 사례가 많다면 팹리스들에도 동기부여가 된다. 팹리스 강국인 미국에선 애플과 구글, 인텔 등 대기업들이 자국과 해외 스타트업을 인수하는 경우가 많다. '스타트업 천국'인 이스라엘의 경우 창업자들이 아예 처음부터 세계 시장에 팔 것을 노리고 창업하고 실제로 해외 기업들에 많이 팔린다.
업계에선 공정거래위원회의 대규모기업집단 소속 회사(계열사) 규제에 따른 압박이 M&A에 대한 부담감을 키운다고 지적한다. 자문업계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 임원에게 왜 한국 스타트업을 잘 인수하지 않느냐고 물어볼 기회가 있었는데, M&A로 계열사 수가 늘어나면 문어발식 사업 확장이라는 지적을 받으니 할 수가 없다고 하더라"며 "그래서 계열사 수에 안 잡히는 투자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M&A 전문가인 조중일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대기업이) 문어발로 뭐든지 다 하려는 건 문제가 있지만 계열사 숫자 그 자체만 따져서는 안 된다"라며 "대기업이 서플라이 체인에 대한 청사진을 갖고 기존 사업에서 필요한 부분을 붙이기 위해 (스타트업을) 제값 주고 사고 이를 통해 돈이 시장에서 돌게 하는 건 건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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