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bell

전체기사

[김화진칼럼]사모펀드의 두 시조와 창업자들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공개 2018-08-27 08:31:46

이 기사는 2018년 08월 20일 11:23 더벨 유료페이지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FlatStanley
작년 현재 전 세계적으로 약 4천 개의 사모펀드가 활동하고 있는데 현대적 형태의 사모펀드가 처음 등장한 것은 2차 대전 종전 다음 해인 1946년이다. 72년 전이다. 두 회사가 벤처 캐피털로 같은 해에 설립되었다. ARDC (American Research and Development Corporation)와 J.H. Whitney & Company다.

ARDC는 하버드 경영대학장을 지낸 도리오(Georges Doriot)와 MIT 총장을 지낸 콤프턴(Karl Compton), 버몬트 주 상원의원이었던 플랜더스(Ralph Flanders)가 공동으로 설립했다.

도리오는 ‘벤처캐피털의 아버지'로 불리는 사람이다. 이름에서 나타나듯이 프랑스 태생 이민자 출신이다. 하버드 경영대학에서 MBA를 하고 모교 교수가 되었는데 전쟁 중에 소령으로 입대해서 준장까지 진급했다. 전쟁이 끝난 직후에 학교에 복귀해서 ARDC를 세웠다. 도리오는 1957년에 프랑스에서 인시아드를 설립하기도 한다.

콤프턴은 프린스턴대 물리학자 출신이다. 1930~1948년 18년간 MIT 총장을 지냈다. MIT는 과학과 기술의 관계를 정립한 학교다. 콤프턴은 대공황 초기에 총장에 취임해서 당시 과학과 기술에 대한 사회의 경시와 비난 풍조에 맞서 과학과 기술의 대변자 역할을 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루즈벨트 대통령의 요청으로 군사용 기술의 개발에 조력했고 이후로도 계속 군과 가까운 협력 관계를 유지했다.

이 두 사람과는 달리 플랜더스는 학력이 고졸이다.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했다. 그러나 수학, 문학, 그리스와 라틴 고전에 튼튼한 기초가 있어 독학으로 문학과 과학, 공학과 인문학에 상당한 소양을 갖추었던 사람이다. 기계제조업에서 크게 성공했고 루즈벨트 정부 상무부 고문과 보스턴 미연준리 이사까지 지냈다. 1946년에 연방 상원의원에 선출되어 1959년까지 봉직했다.

세 사람은 종전 후 귀향 군인들이 창업한 사업에 민간 투자를 촉진시키기 위해 ARDC를 만들었다. ARDC는 초기의 사모펀드들이 대개 명문대가의 자금을 유치했던 것과는 달리 일반 LP들의 자금을 유치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ARDC는 사모펀드로서도 성공적이었다. DEC (Digital Equipment Corporation)가 대표적인 딜이다. 1957년에 7만 달러로 지분 70%를 인수했는데 1968년 DEC의 IPO로 투자액의 500배인 3억5천5백만 달러를 회수했다. 11년 동안 연 101% 수익이다.

ARDC는 도리오가 은퇴한 1971년까지 활동하다가 1972년에 벨 헬리콥터와 세스나 경비행기로 잘 알려진 항공우주업체 텍스트론(Textron)에 인수되었다. 통산 총 150개 포트폴리오를 보유했다.

J.H. Whitney는 미국의 부호 휘트니 페밀리의 존 휘트니가 베노 슈미트(Benno Schmidt)와 공동으로 창업한 펌이다. 휘트니는 2차 대전 때 공군 정보장교였는데 프랑스에서 포로로 잡혔다가 포로수송열차에서 탈출한 경력도 있다. 아이젠하워 정부에서 영국대사를 지냈고 뉴욕 헤럴드트리뷴의 사주이기도 했다. 슈미트는 텍사스대 로스쿨 출신의 변호사였다. 텍사스와 하버드에서 강의도 하다가 1942년에 입대해서 대령까지 진급했다.

두 사람은 전쟁이 끝난 직후에 은행에서 차입을 하지 못하는 사업체들을 지원하기 위해 1천만 달러 규모로 사모펀드를 설립했다.

‘벤처캐피털'이라는 용어는 슈미트의 작품이다. 당시 ‘development capital'이라는 용어가 널리 쓰여지고 있었지만 휘트니는 ‘private adventure capital'이라는 명칭을 좋아했다. 슈미트가 ‘venture capital'로 줄였다고 한다.

신진기예들을 영입하기 위해 슈미트가 하버드 경영대학장을 찾아가 지난 5년간 졸업생들 중에서 가장 우수한 인재를 추천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당시 학장은 "그런 황당한 요청에 즉시 답해 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면 착각이신데, 만일 그런 황당한 요청에 답을 해 줄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아마 작년에 수석으로 졸업한 피터마이어라는 졸업생을 거론했을 것이요"라는 취지로 답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피터마이어는 바로 다음 날 파트너로 영입되어서 중책을 맡았다.

휘트니가 공직과 다른 여러 사업에 관여했기 때문에 사모펀드는 사실상 슈미트가 경영했다. 슈미트는 1992년까지 경영파트너로 일했다. 5남을 두었는데 그 중 하나가 예일대학교 제20대 총장을 지낸 베노 슈미트 2세다.

J.H. Whitney는 음료수 회사 미닛메이드(Minute Maid)를 포함해서 무수히 많은 포트폴리오를 보유했다. 1980년대에 LBO 펌으로 변신해서 오늘에 이른다.

< 저작권자 ⓒ 자본시장 미디어 'thebell',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더벨 주소서울특별시 중구 무교로 6 (을지로 1가) 금세기빌딩 5층대표/발행인성화용 편집인이진우 등록번호서울아00483
등록년월일2007.12.27 / 제호 : 더벨(thebell) 발행년월일2007.12.30청소년보호관리책임자김용관
문의TEL : 02-724-4100 / FAX : 02-724-4109서비스 문의 및 PC 초기화TEL : 02-724-4102기술 및 장애문의TEL : 02-724-4159

더벨의 모든 기사(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며,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copyright ⓒ thebell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