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0년 02월 14일 07시41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펀드는 종종 배(ship)에 비유된다. 이는 펀드의 역사와 관계가 깊다. 17세기 대항해시대에 활발히 무역이 이뤄진 유럽에서 집단 자금모집 개념이 처음 등장했다. 홀로 항해에 나서기 어려웠던 상인들이 투자금을 모아 배를 출항시켰고 교역을 마친 배가 돌아오면 투자금에 비례해 수익금을 나눠 가졌다. 이 모델은 수백년간 발전해 시장에 아무리 큰 파도가 쳐도 '절대 수익'을 내겠다는 헤지펀드가 등장하기에 이른다.라임자산운용은 국내 헤지펀드 중 가장 크고 멋진 배였다. 설정액 6조원으로 웬만한 공모펀드의 덩치를 따라잡았고 연 40%에 달하는 수익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리서치, 주식, 채권 준재를 쓸어담아 화려한 면면으로 갑판을 채웠다. 전문사모집합투자업이 등록제로 바뀌고 200여개 헤지펀드가 출항했지만 몇몇 톱티어 운용사를 제외하면 적수가 없었다.
라임호에서 엄청난 수익과 성과급이 나온 지 1년이 채 되지 않아 이 배는 가라 앉기 시작한다. 사기, 배임 등 각종 스캔들에 휘말렸고 막대한 손실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젠 남은 펀드 상환과 법인 청산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데 이견이 많지 않다. 일찌감치 배에서 뛰어내린 항해사(이종필 전 운용총괄대표)의 생각도 다르지 않다.
더 큰 문제는 라임의 침몰이 업계 침몰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감독 당국은 헤지펀드 사상 최대 리스크를 감지하지 못했고 미흡한 사후 대처로 신뢰를 잃었다. 판매사 PB들은 성난 투자자들을 상대로 역대급 분쟁을 겪을 판이다. 라임과 거래한 증권사 프라임브로커서비스(PBS) 담당 임직원들은 좌천성 인사 대상이다.
일대 위기는 시장 참여자간 갈등까지 낳았다. 유동성 위기 확산을 우려한 몇몇 증권사는 선제적으로 총수익스와프(TRS) 해지에 나서면서 헤지펀드의 원성을 샀다. 라임펀드 환매를 신청한 순서대로 선배분하느냐 전체 투자자에게 동순위로 안분배분하느냐를 놓고 실갱이를 벌이는 판매사들도 있다. 라임과 직간접적으로 얽힌 이들이 이성을 잃고 서로를 탓하는 모습을 보면 침몰이 임박한 게 느껴진다.
이쯤되니 라임의 침몰이 무엇을 남길지도 궁금해진다. 현재는 사업자간 불신으로 몰락하는 헤지펀드 시장을 점치는 이들이 꽤 많다. 저주를 퍼붓는 게 아니다. 투자자, 판매사, 헤지펀드, PBS 파트너가 서로에게 상처 입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 다만 시장 참여자의 미숙함이 사태를 키웠다는 점에서 장본인들이 져야 하는 책임의 무게가 가볍지 않다.
그럼에도 개인과 기업이 수익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형성 원리가 무너지지 않는 한 펀드의 역사는 계속된다. 문제를 정확히 진단하고 명쾌한 대책을 내놓으면 헤지펀드 시장 재기 시점을 앞당길 수 있지 않을까. 조만간 발표될 라임의 상환계획과 금융 당국의 사후대책이 침몰의 결과를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길 바란다. 침몰하는 배가 잘 가라앉아야 새 배를 띄우는 것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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