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4년 01월 17일 07:5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기정(奇正)은 손자병법의 핵심 사상 중 하나다. '기'가 일종의 변칙수라면 '정'은 정석적인 수에 해당한다. 기정의 운용이 조화를 이루는 것을 상수로 보지만 위기 상황일수록 정공법보다는 기묘한 전략이 승리를 이끄는 핵심이라고 강조한다.벤처캐피탈(VC)업계에서 '정'의 활용이 가장 돋보이는 하우스는 LB인베스트먼트다. 소수의 시리즈A 기업을 발굴해 팔로우온 투자를 진행하는 '선택과 집중' 전략을 뚝심있게 구사하고 있다. 여기에 투자 성과도 뒷받침되면서 VC '명가'로 자리매김했다.
그랬던 LB인베스트먼트가 변칙수를 놓겠다고 언급했다. 팔로우온 투자를 수백억원까지 큰 폭으로 확대하겠다고 했다. 최근 만난 박기호 대표는 "성장 가능성이 높은 기업에 투자하는 기조는 유지하되 투자금액을 늘리는 방법으로 변화를 줄 것"이라고 말했다.
초기투자에 강점을 가진 DSC인베스트먼트 역시 새로운 움직임을 예고한 상태다. 지난해 결성한 세컨더리펀드를 통해 후기라운드 투자에 집중한다. 이미 증권사 출신 심사역을 펀드 운용역으로 대거 배치하면서 준비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투자 기업을 물색하고 있다.
김창규 우리벤처파트너스 대표는 아직 '비장의 한수'를 꺼내기에는 이른 시점이라며 말을 아꼈다. 다만 시장 회복을 대비해 언제든 참전할 수 있는 몸 상태를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당장 투자에 나서기에는 매력이 크지 않은 상황으로 당분간 정중동(고요함 속의 움직임)을 유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VC 대표들이 변화를 시도하는 이유는 최근 시장 상황과 관련이 있다. 지난해 고금리 영향으로 위축된 시장이 조금씩 반등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일각에서는 AI(인공지능)를 중심으로 조만간 제3의 벤처붐이 도래할 수 있다는 전망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이 가운데 VC간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대형 하우스로 볼 수 있는 AUM(운용자산) 1조 이상의 VC는 5곳도 되지 않았으나 지난해에는 17곳까지 증가했다. AUM 2조원을 넘어선 곳도 7곳에 달한다. 대형 VC도 안일하게 있다간 경쟁에 뒤쳐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변화와 기회, 그리고 위기의 시대를 맞이해 대표의 선택이 갖는 무게감이 커지고 있다. 알아도 못 막는게 맹장이고 몰라서 당하는게 전략가라고 했다. 누군가의 선택은 손자병법과 같이 후대까지 회자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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