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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피탈 디스카운트

윤영환 크레딧애널리스트공개 2010-03-02 14:13:54

[편집자주]

자본시장 발전에 신용평가는 인프라와 같은 존재입니다. 서브프라임사태로 신용평가의 공정성이 도마위에 오르고 있는 것도 신용평가의 중요성을 재차 일깨우는 사건입니다. 더벨은 신용평가를 포함해 크레딧시장의 전반을 전문가의 날카로운 시각을 통해 분석합니다. 신용이슈 등 일련의 현상에 대해 폭넓은 이해의 기회가 될 것입니다.

이 기사는 2010년 03월 02일 14:1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비교하지 말고!” 스즈키 바이올린 교습법의 첫 구절이다. 하지만 채권시장은 아주 사소한 차이까지 비교하여 줄 세우는 것으로 시장의 질서를 만든다.

비교 기준은 주로 부도가능성이지만 디스카운트는 그보다 훨씬 커질 때가 많다. 줄 세우기에서 밀리면 유동성 리스크가 커지기 때문이다. 유동성 리스크는 유사시 현금화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을 의미한다. 특히 펀드의 경우 수익자의 환매 요청에 응하지 못하면 심각한 곤경에 빠진다.

디스카운트의 확대 양상은 시장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낮은 등급 회사채도 충분히 거래되는 효율적인 시장에서는 굳이 유동성 리스크가 문제되지 않는다.

이런 시장의 신용등급별 수익률 곡선(Credit yield curve)은 직선에 가깝다. 예상 부도율이 상승하는 수준에서 디스카운트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반면 비효율적인 시장의 신용등급별 수익률 곡선은 일정 등급 이후 급격히 기울기가 높아진다. 등급 하락에 따라 유동성 리스크가 기하급수적으로 확대된 결과다.

어떤 시장이 효율적 시장인가?

우선 기업정보가 투명해야 한다. 그래야 돌발상황이 발생할 가능성도 낮아지고 설령 어떤 상황이 벌어져도 크게 흔들리지 않고 수습할 수 있다. 기업공시와 신용평가에 대한 신뢰가 중요하다. 선진시장도 시장의 신뢰가 흔들리면 급격히 유동성 리스크가 커진다. 하지만 기본이 탄탄한 만큼 이벤트만 해소되면 유동성 리스크는 다시 빠르게 줄어든다.

후진시장은 좀처럼 이러한 시장의 신뢰를 쌓지 못한다. 시장의 진보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부족하고 기득권의 논리는 완강하다. 회사채 발행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발행기업의 공시부담을 완화해야 한다거나 은근히 신용평가의 무력화를 시도하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기업공시와 신용평가가 느슨해지면 당장의 회사채 발행은 조금 편해지겠지만, 결국은 그 이상으로 디스카운트가 커져서 모두가 피해를 입는다. 물론 하위등급 기업들이 더 큰 피해를 입지만, 우량기업들도 이벤트에 걸렸을 때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불신과 불확실성을 해소할 채널을 막아버린 비싼 대가다.

다음으로는 장기투자자 비중이 높아야 한다. 연기금과 보험사와 같은 태생적 장기투자자와 함께 장기/대형/공모화된 펀드가 시장의 중심을 이루어야 안정적 거래기반이 형성된다. 반대로 초단기 펀드와 소액 투자자의 비중이 높아지면 회사채 시장의 유동성 리스크는 전반적으로 상승한다. 금융위기나 대형 시장교란을 점검해보면 반드시 그전에 자본시장 주변에 단기자금 조달(특히 콜과 CP)과 운용(MMF 등 자금시장 펀드)의 범람이 있었다.

그리고 회사채가 활발하게 유통되어야 한다. 증권사의 시장조성 기능 제고와 RP/파생상품/하이일드의 활성화, 펀드의 비중 확대 등이 필요하다. 가령 당국이 기업의 자금조달 비용을 낮추기 위해 정책금리를 1% 낮추면 그 혜택은 주로 상위등급 기업들에게 돌아가지만, 하이일드 시장을 활성화시키면 BB등급 회사채 금리는 몇 %가 떨어진다.

똑똑한 재무정책이 필요해

회사채의 유동성을 높이는 시장 정책과 발행기업의 재무정책은 사실 같은 내용의 다른 버전이다. 거의 거울에 비친 이미지와 같고 일종의 프랙털인 셈이다.

똑똑한 재무정책의 첫 번째 이슈는 기업 스스로 시장에 적극적으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많은 기업들이 시장과의 대화는 회피하고 신용평가사만 들볶는다. 한 점(點)을 공략하는 것이 넓은 면(面)을 상대하는 것보다 효율적이다. 하지만 절대로 효과적이지는 않다. 결국은 시장을 설득하기 위한 것인데 시장과의 대화를 회피하고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중고차를 살 때는 하다못해 타이어라도 차 보아야(Kick the tire) 믿음이 생긴다. 아무리 실력 있는 에이전트의 도움을 받아도 투자자가 스스로 실질에 다가서는 것보다는 만족도가 낮다. 그리고 스스로 확인해서 쌓은 신뢰는 좀처럼 외풍에 흔들리지 않는 법이다. 같은 이유에서 설득력 있는 논리와 지표 개발에도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저 실적이나 나열하는 설명회로는 투자자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

또 하나는 장기채권의 비중을 높이는 것이다. 장기채권 비중을 높이면 기업 스스로의 유동성 리스크는 작아지지만 투자자의 유동성 리스크는 늘어서 금리도 높고 소화도 어렵다. 하지만 전략적 측면에서 보자면 달라진다. 장기채권이래야 장기투자자를 끌어올 수 있다. 채권의 구성에 따라 투자자의 구성이 달라지는 법이다. 어떤 친구를 사귀느냐가 그 사람의 인격을 설명한다. 기업의 재무정책도 마찬가지다. 단타 세력은 당장은 낮은 금리의 달콤함을 주지만, 비가 올 때는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염치불구하고 우산을 빼앗아간다.

마지막으로는 채권의 원활한 유통을 돕는 작은 기술들이 있다. 우선 발행주기를 벌리고 발행단위를 키워야 한다. 조각 채권은 장기투자자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유통시장을 형성하기 위해서도 일정 규모의 발행단위는 필수적이다.

당장의 발행금리를 낮추기 위해 갖가지 편법을 쓰는 것보다는 시장을 만들어서 근본적으로 디스카운트를 줄이는 전략적 사고가 바람직하다. 증권사와의 관계를 전략적 협력관계로 끌어 올려야 한다. 얄팍하게 뜨내기를 통해 수수료를 깎는 것보다는 수수료를 더 지불하더라도 리서치와 Bid-offer 서비스를 제공하는 주거래 증권사를 만드는 것이 훨씬 더 큰 이득을 안겨준다. 그 이상으로 유동성 리스크를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회사채 IB수수료가 우리나라보다 무려 5배씩이나 비싼 이유다.

또 단기물 Buy-back 전략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당장은 추가 비용이 들지만, 회사채의 유동성을 높여 장기적으로 발행비용을 낮추는 효과는 몇 배 더 크다. 단기물을 ‘말려 버리는’ 것은 위기대응 능력을 높이고 장기채권 발행기반을 다지기 위한 필수 전략이다. 더불어 단타 세력과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는 스마트한 전략이기도 하다.

우량 캐피탈의 성공적 재무정책과 과제

최근 캐피탈채와 일반 회사채의 스프레드(캐피탈 디스카운트)가 빠른 속도로 줄고 있다. 캐피탈의 펀더멘탈 악화에 대한 우려가 엷어진 터에 회사채 시장의 수급까지 극심한 수요초과로 바뀌면서 막혔던 봇물이 터진 것이다.

캐피탈 산업은 한 바구니에 담아 논의하기 어려울 만큼 기업간의 편차가 크다. 아직 고유의 신용이슈가 진행중인 A등급 캐피탈사의 경우 재무정책의 진화를 논의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따라서 오늘의 논의는 주로 AA0 캐피탈사와 카드사(이하 ‘우량 캐피탈’)를 중심으로 전개하려 한다.

우량 캐피탈은 이번 위기에 타격을 받지 않고, 오히려 경기부양정책에 힘입어 경영성과를 개선하는 놀라운 성과를 기록했다. 주요 사업기반인 가계가 상대적으로 안정을 유지했던 것이 결정적이었지만, 그 동안 꾸준히 다져온 재무적 안정에 힘입은 바 또한 크다. 카드위기의 교훈이 이번 금융위기에 확실한 보약으로 작용한 것이다.

하지만 상당한 행운이 함께 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들의 재무정책이 충분히 안정적이고 다시는 무너지지 않을 확실한 토대를 다졌다고 단언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어떤 변화가 있었고,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한 인식조차 분명하지 않다. 경쟁환경의 변화에 따라서는 그나마 이룬 작은 진보마저 허무하게 되돌릴 가능성도 있다. 자신감이 자만심이 될 때, 승자의 환희는 승자의 저주가 된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지난 2001년 말 1등 카드사의 챔피언 찬가가 불과 14개월 후에 무엇으로 변했던가?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캐피탈 디스카운트는 캐피탈의 재무정책에 대한 시장의 반응으로 간단히 정리된다. 변화가 시작될 때까지 엔트로피의 축적이 필요한 만큼 다소의 시차가 있지만 인과는 분명하다.

금융위기 직전의 상황을 살펴보자. 캐피탈채의 만기는 다소 늘었지만 CP의 대대적인 확대도 함께 진행되었다. 결국 시장은 2008년 캐피탈 디스카운트 확대로 대답했다. 반면 위기국면에서 보여준 우량 캐피탈의 재무적 대응은 대단했다. 그 어려움 속에서도 꾸준히 채권 만기를 장기화하고 CP 의존도는 낮췄다. 최근 나타나는 캐피탈 디스카운트의 축소는 이러한 재무적 안정화 노력의 산물이다.

그럼 최근에는 어떠한가? CP는 다시 늘고 있고, 재무 라인은 공공연히 채권만기의 단축을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캐피탈 디스카운트는 어떻게 될까? 당장의 디스카운트 축소는 기세라고 하더라도 그리 오래가지는 못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캐피탈은 일반 기업에 비해 외부자금에 대한 의존도가 현저하게 높다. 따라서 재무정책은 경영성과와 생존 가능성을 좌우하는 절대반지다. 하나를 얻기 위해 다른 소중한 하나를 버려야 하는 신파극에서 벗어나려면 한 단계 높은 균형으로 진화해야 한다.

차입구조의 장기화와 기업 투명성의 제고, 그리고 시장의 거래관행 개선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나 하나 잘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흔히 고래로 불리는 대형 플레이어는 시장 생태계의 진화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마냥 서두른다고 될 일은 아니겠지만, 아직 쉬기에는 너무 이르다.

“비교하지 말고, 서두르지 말고, 쉬지 말고” - 스즈키 신이치(鈴木鎭一)의 바이올린 교습법에서 -

[칼럼니스트 소개]

윤영환 크레딧애널리스트 약력

2001∼ 신한금융투자 선임연구위원

1988∼2001 한국신용정보, 연구개발실장 화학산업평가실장

KAIST MBA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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