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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결합 심사를 묻다]현대차의 기아 인수, 1999년과 2021년의 차이⑥'경쟁 제한성' 여부, 1999년과 달리 제1 심사 기준···"일부 사업부 매각 조치했을 것"

양도웅 기자공개 2021-11-04 07:39:48

[편집자주]

M&A(인수합병)는 ‘돈의 논리’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풍부한 자금력을 보유해도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 심사를 통과하지 못하면 무위로 돌아간다. 독과점 발생 가능성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기업결합 심사는 공정위의 존재 이유와 맞닿아 있다. 동시에 국내 기업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면서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심사가 필요하지만 동시에 경제와 산업 경쟁력을 고려하지 않을 수도 없다. 더벨은 아시아나항공과 대우조선해양 M&A를 중심으로 '기업결합 심사'라는 고차 방정식을 다면적으로 들여다본다.

이 기사는 2021년 10월 28일 15:44 더벨 유료페이지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국내에서 굵직한 기업결합 심사 건이 있을 때마다 소환되는 사례 중 하나는 1999년 현대자동차의 기아(당시 사명은 기아자동차) 인수이다. 국내 1, 2위 항공사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 심사가 진행되는 지금도 곳곳에서 인용되며 다양한 해석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물론 서 있는 위치(입장)에 따라 인용 목적은 다르다. 한쪽은 당시 국내 전체 자동차 시장 점유율 1위와 3위 업체 간의 기업결합도 승인이 났으니,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도 승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른 쪽은 이렇게 반문한다. 2021년에 현대차가 기아를 인수한다고 하면 그때와 같은 결과이겠냐고.

1999년 4월 공정거래위원회는 현대차의 기아 인수를 승인했다. 1998년 기준 양사의 국내 전체 자동차 시장 합산 점유율이 64.2%로 독과점 우려(경쟁 제한성)가 제기됐지만 일부 사업부를 매각하는 구조적 조치를 하지 않은 승인이었다. 양사의 합산 시장 점유율이 90%가 넘는 트럭 사업 부문에서만 가격 인상률을 제한하는 행태적 조치를 했을 따름이었다.

공정위는 승인을 결정한 이유에 대해 "현대차와 기아의 시장 점유율이 높아짐으로써 이 기업결합의 경쟁 제한성이 인정되나 산업 합리화와 국제 경쟁력 강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현대차와 기아의 기업결합 심사에선 '경쟁 제한성'보다 '산업 합리화'와 '국제 경쟁력 강화' 여부가 더 중요한 판단 기준이었던 셈이다. 이로부터 22년 뒤인 현재의 공정위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을 승인하라는 요구에 경쟁 제한성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며 대응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국회입법조사처에서 공정거래 부문을 담당하는 한 입법조사관은 "현대차가 기아를 인수할 당시 심사기준은 지금과 비교하면 조악한 수준"이라며 "기업결합을 심사한 경험도 많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 조사관은 "또한 당시 승인 이유였던 국제 경쟁력 강화 여부는 이제 심사 때 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출처=공정거래위원회, 산업통상자원부)

달라진 건 또 있다. 1999년엔 '경쟁 제한 우려가 적은 다른 대안의 부재'를 고려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경쟁 제한에도 기업결합 승인을 받으려면 현대차 외에 기아를 인수할 곳이 없어야 한다는 조건은 당시에 없었다.

1998년 기아는 국제입찰을 통한 제3자 매각이 추진된 상황이었다. 지급불능 상태였지만 국내 전체 자동차 시장에서 엄연한 시장 점유율 3위의 업체였다. 특히 트럭 부문에선 44.3%의 시장 점유율로 현대차와 근소한 차이의 2위를 달리고 있었다. 충분한 매력을 가진 매물이었다. 실제 1997년엔 삼성그룹이 기아에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종합하면 경쟁 제한성에도 현대차의 기아 인수를 승인했던 여러 이유가 2021년 현재에는 이 경쟁 제한성 앞에서 모두 힘을 잃게 되는 셈이다. 특히 산업 합리화와 국제 경쟁력 강화에 밀렸던 양사의 독과점이 현재 현실이 됐다.

당시 공정위는 수입선 다변화 제도의 폐지로 일본산 수입차가 국내에 들어오는 점 등을 고려해 현대차와 기아가 결합하더라도 경쟁 제한성이 예상보다 크게 위축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는 오판이었다.

올해 양사의 국내 전체 자동차 시장 점유율은 72.5%로 22년 전보다 8.3%포인트(p) 상승했다. 특히 경쟁 제한성 우려의 대상이 아니었던 승용차 시장에서 현대차와 기아, 그리고 현대차의 프리미엄 차량 브랜드인 제네시스까지 합한 점유율은 90% 가량 된다. 승용차 10대 중의 9대가 현대차·기아의 차량인 셈이다.

이 입법조사관은 "그때와 달리 공정위는 현재 시장경쟁 체제를 유지하는 것을 중요하게 보는 쪽으로 바뀌었다"며 "지금이라면 현대차의 기아 인수에 승인을 결정했더라도 트럭 등 화물차 사업 부문을 매각하라고 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그저 독과점 우려만 언급하고 넘어간 건 공정위의 과오"라며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기업결합 심사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미 공정위 측은 지금은 가장 중요한 심사 판단 기준이 된 경쟁 제한성이 두 대형 항공사의 결합시 존재한다고 공공연히 밝혀 왔다. 조성욱 공정위원장은 지난 27일 "국토부와 경쟁 제한 우려가 있는 노선의 시정방안 마련과 향후 시정조치의 이행 감독 등을 협조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공정위는 연내 기업결합 심사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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