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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아연, 영풍과 헤어질 결심]오너 3세 최윤범 회장은 왜 '변심'했을까선대와 달리 양측 유대관계 없어…경영능력 입증 불가피

조은아 기자공개 2024-03-29 08:08:56

이 기사는 2024년 03월 27일 09:08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보통 동업의 시작을 두 사람의 의기투합에서 찾을 수 있듯, 끝은 한 사람의 변심에서 찾을 수 있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은 할아버지, 아버지대에 걸쳐 70년 넘게 이어진 동업을 끝내기로 결심했다. 무엇이 최 회장을 변심하게 만들었을까.

뜻이 맞아 손을 잡고 회사를 키워낸다 하더라도 동업의 마무리가 좋기는 쉽지 않다. 섣부른 동업을 경계하는 많은 격언이 시대를 가리지 않고 유효했던 데서도 알 수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처음 뭉치게 된 동기는 희미해지고 유대관계 역시 흐릿해진다.

◇황해도 출신 두 창업주, 해방 직후 의기투합

영풍그룹은 최기호 창업주와 장병희 창업주가 만나 세웠다. 두 사람이 어떻게 사업을 함께 하게 됐는지에 대해선 알려진 사실이 많지 않다. 둘 모두 황해도 봉산에서 나고 자랐으며 1909년생으로 나이도 같다. 한동네에서 알고 지내다가 해방을 계기로 서울에서 사업을 하기로 뜻을 모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함께 남한으로 내려와 영풍기업사를 세운 건 둘의 나이가 갓 마흔을 넘긴 1949년이다. 이후 최기호 창업주가 1980년, 장병희 창업주가 2002년 각각 세상을 뜨기까지 두 집안의 유대관계는 끈끈하게 이어졌다. 석포제련소는 장씨가, 온산제련소는 최씨가 도맡는 등 사업영역의 구분은 명확했지만 그룹 회장을 번갈아가면서 맡았고 각각의 사업을 제외하고 전체를 아우르는 결정은 함께 했다.

두 집안의 믿음은 영풍그룹 계열사들의 지분구조에서도 엿볼 수 있다. 지분은 최씨가 들고 있지만 경영은 장씨가 하는 등 '소유와 경영'이 분리돼 있는 곳이 많은데 그만큼 서로를 믿었기에 가능한 구조다. 서린상사가 대표적이다.

2세들도 비슷한 시기 경영을 시작했다. 1970년대 장형진 영풍 회장과 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이 그룹에 입사했고 1980년대 경영 전면에 등장했다. 장형진 회장이 1946년생, 최창걸 명예회장이 1941년생이다.

5살 터울의 두 사람에 대해 우애가 깊다든지 하는 얘기는 들려온 적이 없다. 다만 창업주의 뜻을 이어 서로를 존중한 것으로 전해진다. 일부 계열사 이사진을 같이 맡는 등 사업적 교류도 잦은 편이었다.

영풍그룹은 2013년 두 사람이 이사회를 마친 뒤 집무실에서 함께 찍은 사진을 공개하기도 했다. 두 사람은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들이 함께 사업을 일구고 키워나가는 과정을 보며 자랐다는 공통점도 있었다.

장형진(오른쪽) 영풍 회장과 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이 지난 2013년 서울 논현동 영풍빌딩 회의실에서 정기 이사회를 마친 뒤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영풍그룹 제공>

3세부터는 사실상 접점이 없어진다. 애초에 유대관계를 쌓을 기회도 거의 없었다. 1975년생인 최윤범 회장은 학창 시절 대부분을 미국에서 보냈다. 미국 애머스트대 수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컬럼비아대 로스쿨을 졸업했다.

장씨 쪽도 마찬가지다. 1974년생인 장세준 코리아써키트 부회장 역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미국에서 대학과 대학원을 마쳤다. 주력 계열사 영풍을 전문경영인이 경영하면서 영풍에서 근무한 적도 없다. 자연스럽게 사업적으로 교류하거나 교감을 쌓지 못했다.

특히 두 집안은 동업 초기부터 각각의 사업영역을 확실하게 구축해 독자적으로 경영해왔는데 이 점 역시 영향을 미쳤다.

재계 관계자는 "친분이나 유대관계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경영도 각각 알아서 해왔던 만큼 동반자라는 생각이 자리잡을 시간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최윤범 회장 입장에서 고려아연은 당연히 '우리의 회사'가 아닌 '내 회사'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회장으로 공식 취임, 갈 길 먼 최윤범 회장

'내 회사'였으니 지휘봉을 잡은 뒤 방향은 명확했고 속도 역시 빨랐다. 최 회장은 2022년 초 신재생에너지, 이차전지 소재, 리사이클링(자원 순환) 사업을 골자로 하는 신사업 '트로이카 드라이브'를 적극 추진했다.

시대의 흐름을 봤을 때 불가피한 측면이 크다. 1대가 창업, 2대가 수성에 힘썼다면 3대는 새로운 먹거리를 찾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잘하는 것만 잘해도 됐던' 시절과는 달랐다.

특히 장씨 집안에 비해 최씨 집안은 아들이 많은 편이다. 지분도 여럿이 나눠들고 있다. 사촌들도 여러 명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상황에서 고려아연 회장 자리를 물려받은 최윤범 회장으로선 경영능력을 증명해야 하는 과제가 한층 무거웠을 것으로 보인다.

신사업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대규모 투자도 뒤따랐다. 그간 사실상의 무차입 경영을 하던 고려아연에서 차입금 규모가 늘어난 것도 이 때부터다. 2022년 말에는 처음으로 차입금이 1조원을 넘어섰다. 2018년 300억원대에서 4년 만에 30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런 변화가 장씨 일가에게 달가울 리 없었다. 결국 경영 간섭으로 이어졌고 최 회장은 장고 끝에 이별을 결심했다.


일각에선 두 집안이 순조로운 계열분리를 하기에 이미 타이밍을 놓쳤다는 지적도 내놓는다. 갈등의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진 데다 마땅히 중재할 만한 인물 역시 없기 때문이다.

재계에서 가장 '잘' 이별한 곳으로 꼽히는 LG그룹과 GS그룹의 경우 LG그룹의 지주사 체제 전환과 맞물려 계열분리가 이뤄졌다. 갈등이 생겨서도, 어느 한 쪽이 원해서도 아니었다. 대를 넘어가며 연결고리가 더 느슨해지기 전 후대를 위해 아버지들이 먼저 선제적으로 나섰다는 점 역시 평화롭게 이별한 그룹들의 공통점이다.

반면 영풍그룹 2세들은 조용히 '관망'하는 모양새다. 끼어들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말리지도 않는다. 최윤범 회장의 부친 최창걸 명예회장은 지난해 하반기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고려아연 지분을 전량 영풍그룹 계열사 유미개발에 넘겼다. 유미개발 역시 최씨 측 회사로 분류된다. 고려아연 지분을 속속 매입하며 지분율을 높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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