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6년 03월 17일 10:3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지난 11일 오전 서울 서초동 현대시멘트 본사 지하 1층 대회의실. 사회자가 주주총회 시작을 알리자마자 맨 앞 줄에 앉아있던 정몽선 전 현대시멘트 회장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시작부터 사기야. 여기 모인 50명 중 진짜 주주는 없고 40명이 회사 직원들이잖아"정 전 회장은 현 경영진인 이주환 사장과 임승빈 전무의 해임을 강하게 요구했다. 단상 앞에 선 정 전 회장은 "불법적으로 진행된 파이시티 사업을 바로잡기 위해 애쓰고 있다"며 "회사가 입은 피해를 보상받기 위해 힘쓰는 나를 이 사장과 임 전무가 회장직에서 끌어내렸다"고 주장했다.
정 전 회장의 발언은 5분 가량 이어졌다. 객석에서 "간단하게 요지만 말해달라", "총회의 기본 원칙을 지키도록 정 회장에게 주의를 줘야 한다"는 아우성이 터져나왔다. 정 전 회장은 "저 둘을 해임해야 검찰 조사가 원활히 이뤄질 수 있다"는 말을 끝으로 자리에 앉았다.
투표 결과 현 경영진 해임 안건은 97.2%의 반대로 부결됐다. 홀로 찬성표를 던진 정 전 회장은 "주주꾼들만 모였다"며 크게 분노한 뒤 폐회가 선언되기 전에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정 전 회장의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씩씩거리며 나가는 그를 쫓아가 인터뷰를 요청했고 4층 회장실에서 단독으로 만났다.
정 전 회장은 그동안 모은 파이시티 사업 관련 서류들을 보여주며 "양재 사업장 참여는 당시 경영진이 나의 결재를 받지 않고 사업을 주도했다", "당시 내색은 하지 않았으나 뇌출혈을 앓고 있던 터라 전반적인 업무에 신경을 쓸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유치권 포기각서, 채무인수 변경 계약서 등 주요 문서에는 정 회장의 결재 사인이 없었다. 사업 약정서 중 일부는 별지 형태로 끼워져 있었다. 그는 이야기 중간 불우한 가정사를 털어 놓기도 했다. 범현대가 형제들에게도 외면하고 있는 상황이 안쓰럽기도 했다.
정 전 회장의 주장이 어디까지 진실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중간 보고가 누락됐다 하더라도 파이시티 사업 투자는 그가 최종적으로 내린 결정이다. 정 전 회장이 검찰에 고발한 전현직 경영진 역시 그가 고용한 사람들이다. 현대시멘트, 성우종합건설의 대표이사를 함께 맡고 있던 시절 이뤄진 일에 대해 전혀 책임이 없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정 전 회장은 인터뷰 말미에 "앞으로는 시간이 참 많을 것 같다"며 현대시멘트 경영에서 완전히 배제된 본인의 상황을 자조했다. 부친인 정순영 명예회장으로부터 물려받아 30년 넘게 끌고 온 기업을 한순간에 잃게 된 것에 대한 허탈함이 상당한 듯 했다.
정 전 회장의 재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의 친동생인 정몽석 현대종합금속 회장, 정몽훈 성우전자 회장, 정몽용 성우오토모티브 회장 역시 순탄치 않은 경영 행보를 걷고 있다. 말로만 듣던 '재벌가 2세의 몰락'을 지켜보며 씁쓸함을 넘어 안타까움이 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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