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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칼럼]지멘스의 해외부정사건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공개 2022-04-15 09:00:36

이 기사는 2022년 04월 15일 09:00 더벨 유료페이지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독일은 기계와 화학 분야 강국의 정체성이 있지만 전기-전자산업도 글로벌 최첨단이다. 그 중심에 유서 깊은 지멘스(Siemens AG)가 자리한다. 사실 지멘스는 전자회사라기보다는 종합엔지니어링 기업으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공장 자동화와 제어시스템, 빌딩 스마트 인프라, 철도차량, 원자로 건설 등에서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가지고 있다.

지멘스는 1847년에 베르너 폰 지멘스(Werner von Siemens)가 동업자(Johann Halske)와 함께 만든 전신회사가 모태다. 유럽 최초의 장거리 통신사로 발전했다. 지멘스는 형제들과 함께 사업을 확장해 1867년에는 런던에서 인도의 캘커타까지 1만1000km의 전선망을 완성하는 위업을 이루기도 했다.

지멘스는 전기와 전차 사업도 시작했다. 1885년에 미국 웨스팅하우스에 발전기를 판매했다. 20세기 초반에 오스람 전구회사를 세웠고 라디오, TV, 전자현미경 제조를 시작했다. 2차 대전 때는 아우슈비츠에 공장을 지어 강제노역을 활용했는데 전후에 전범기업으로 분류되어 비난의 대상이 된다.

1950년대부터 지멘스는 반도체와 컴퓨터, 가전제품 등 전자산업으로 사업영역을 확대했다. 일련의 M&A를 통해 정밀전자 기계와 장치 생산에서 입지를 굳히는데 성공했다. 항공우주 분야와 MRI스캐너를 필두로 한 의료기기 분야도 포함된다. 지멘스의 2021년 매출은 삼성전자의 1/3에 좀 못 미치는 622억 유로이고 종업원 수는 30만 명이 넘는다.

그러나 2005년부터 지멘스는 대형 부정사건으로 홍역을 치렀다. 글로벌 스케일의 뇌물사건이다. 지멘스는 해외 사업과 관련해서 아르헨티나, 중국, 나이지리아, 이라크, 러시아 등 정부에 거액의 뇌물을 공여했다. 총 2700개에 이르는 현지 기업을 통해 해당국 정치인, 공무원에 뇌물이 전달되었는데 수주액의 5%에서 최고 40%의 금액이다. 총 13억 달러였다. 미국과 독일의 조사와 수사 끝에 2008년에 사상 최고액인 16억 달러 벌금이 부과되었고 회사 내부통제시스템을 정비하는데 필요한 10억 달러도 책정되었다. 2014년까지 진행된 사법절차에서 다수 관련자들이 유죄판결을 받았다.

이 사건을 통해 지멘스가 매년 4000만~5000만 달러의 비자금을 조성해 뇌물공여를 준비했던 것이 드러났다. 단죄를 받은 임원들은 뇌물이 해외시장에서의 경쟁력과 고용 유지를 위해 불가피했다고 항변했다. 지멘스뿐 아니라 다수의 글로벌 기업들이 해외에서 크고 작은 부정을 저지르는데 사실 많은 나라가 자국 기업이 해외에서 부정한 방법을 사용해서라도 실적을 내고 외화수입을 가져오면 눈감아버린다. 조사가 어렵다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그러나 미국은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해 1977년에 해외부패방지법을 제정했다. 한 차원 높은 ‘국익’ 관념이다. 지멘스는 뉴욕증권거래소 상장회사여서 미국정부가 독일정부와 공조 조사로 처벌했다.

지멘스는 아직도 가족기업으로 불리는 회사다. 지멘스 패밀리는 1384년 처음 기록에 등장하는데 아직 지멘스의 최대주주이고(6.9%) 경영은 하지 않지만 이사회에 참여한다. 지멘스는 카타르투자청 3%를 포함해 84%가 일반주주로 있다. 지멘스 패밀리는 1981년까지 항상 이사회 의장을 맡았다. 현재는 1971년생 나탈리 폰 지멘스가 이사회에 평이사로만 참여하고 있다. 그룹의 다양한 계열사에서 일한 것으로 나오는데 경영자 수업을 받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자격있는 구성원이 나오면 언제든지 가족이 다시 이사회 의장을 맡을 것이라고 한다.

지멘스의 현 이사회 의장은 머스크의 이사회 의장도 겸하고 있는 짐 스나베다. 덴마크 사람이다. SAP의 CEO 출신이다. 지멘스의 CEO는 물리학 박사학위를 가진 롤란드 부시다. 1994년에 회사 연구소에서부터 시작해 다양한 보직을 거치면서 승진해 올라온 사람이다. 회사의 CFO 랄프 토마스가 경영학 분야 교수자격을 가지고 있는 것도 눈에 띈다.

독일 하노버 남쪽에 있는 고도 고슬라(Goslar)에는 지멘스하우스가 있다. 동화책 같은 도시 자체와 마찬가지로 고색창연한 바로크식 목조건물이다. 이 집은 1692~93년에 상인이자 마을의 수비대장이었던 한스 지멘스가 지은 것이다. 지금은 기록보관과 가족 모임 장소로 쓰인다. 집 현관문 상단에는 “기도하고 일하라”(ora et labora)라는 문구가 1693, 한스 지멘스의 이름과 함께 붙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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