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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 '다짐'의 무게 [thebell note]

이지혜 기자공개 2023-01-17 13:02:45

이 기사는 2023년 01월 12일 07:46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숫자에 속지 말라’. 새해 다이어트를 다짐하는 다이어터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말이다. 체중계 수치는 일시적 수분량에 좌우될 수 있으니 흔들리지 말고 꾸준히 운동해서 살을 빼라는 의미다.

그러나 제아무리 숫자에 속지 말자고 되새겨도 나도 모르게 폭식한 뒤 체중계에 오르면 마음을 다스리기가 어렵다. 그리고 결심한다. 내일은 굶어야지. 하루 굶어 떨어진 수치에 안심되면 맛의 향연을 또 즐기는 탓에 다이어트는 실패로 돌아간다.

이 격언이 비단 다이어트만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재계에도 통한다. 새 정권이 들어서면, 새 경영진이 출범하면, 대형사고를 낸 뒤 새롭게 거듭나겠다고 다짐할 때 기업들은 일단 숫자부터 발표했다. 몇 백억원부터 최대 몇 조원까지 상상하기도 어려운 숫자의 돈이 기업 쇄신에 투입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카카오도 그랬다. 카카오는 지난해 10월 15일 SK㈜C&C의 판교 데이터센터에서 불이 나자 수일 동안 일부 서비스가 먹통이 되는 초유의 사태를 겪었다. 그때부터 지난해 말까지 비상경영 체제를 가동하다가 최근 재발방지대책의 방향성을 보여주는 ‘다짐보고서’를 냈다. 아니나 다를까, 대규모로 투자하겠다는 약속이 담겨 있었다.

다짐보고서에 따르면 카카오는 앞으로 5년 동안 과거 5년 대비 3배 이상 투자할 계획이다. 산술적으로만 3조원에 가까운 자금이 재발방지대책 등에 투입된다. 카카오의 2021년 별도기준 매출보다 훨씬 많다.

투자 규모만 놓고 본다면 카카오의 쇄신 다짐은 뼈에 사무친다. 하지만 다짐의 진정성은 숫자만으로 입증하기 어렵다. 구체성과 투명성이 뒤따라야 한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하는지 보일 때에야 비로소 다짐에 진정성이 생긴다.

다행스럽게도 카카오의 다짐은 진정성 어린 첫발을 뗀 것으로 보인다. 카카오의 C레벨 임원들이 개발자 콘퍼런스 ‘이프 카카오 데브 2022’에서 고백한 사고 경위와 향후 재발방지대책은 구체적이고 투명해 보였다. “우리의 부족함을 마주하고 그것을 밖으로 드러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는 남궁훈 전 카카오 대표의 고백에는 울림이 있었다.

이제는 다짐했던 계획들을 실천에 옮길 차례다. 인프라 전문 조직을 갖추고 위기 대응 매뉴얼을 만들며 자체 데이터센터를 보완하는 등 다짐했던 재발방지대책을 실제로, 어떻게 실행하는지 보여줘야 한다. 투자계획 등 숫자는 진정성을 보여주는 요소 중 하나였을 뿐이다.

기사를 쓰다 보면 기업들이 투자계획을 발표할 때 받았던 스포트라이트가 무색해질 때가 많다. 프로젝트가 지연되거나 좌초되는 것은 예사고 실제 투자하긴 했지만 그 규모가 예년 대비 늘어나지 않았을 때도 있었다.

카카오의 다짐은 이들과 다를까. 숫자 그 이상의 진정성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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