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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선의 그린오션]친환경 선박의 핵심 '기자재', 기술주도권 향한 도전②HD한국조선해양을 기자재 '라이선서'로… 엔진의 성공 DNA 승계가 관전포인트

강용규 기자공개 2023-07-14 15:15:54

[편집자주]

'회장님의 어떤 것'은 특별하다. 최고 경영자가 주목한 기술이나 제품이 곧 기업의 미래이자 경쟁력이 되기 때문이다. 나아가서는 새로운 산업을 창출하거나 글로벌 시장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모든 것이 오너의 역할은 아니겠지만 의사결정권자의 무게감은 더없이 막중하다. 더벨이 기업 오너와 최고경영진들이 낙점한 기술·제품의 과거와 현재를 짚어보고 미래를 전망해 본다.

이 기사는 2023년 07월 12일 17:0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친환경 선박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크게 3가지의 방법론이 있다. 가장 먼저 친환경성이 높은 선박연료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추진기술이 필요하며 두 번째로는 선박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연료 절감기술, 세 번째는 선박이 배출하는 각종 환경영향물질을 저감하는 기술이다. 모두 선박용 기자재의 영역에 속하는 분야다.

정기선 HD현대그룹 사장의 그린오션 전략인 '바다의 대전환(Ocean Transformation)'에는 친환경 선박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는 친환경 선박용 기자재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의 과제이기도 하다. 정 사장은 자신이 직접 대표이사로 이끌고 있는 그룹의 조선 중간지주사 HD한국조선해양을 통해 선박기자재의 내재화에 나섰다.

◇ 유럽이 보유한 기자재 기술주도권, 국내로 옮겨올 수 있을까

조선업계에서 프랑스의 가즈트랑스포르 에 떼끄니가즈(GTT)라는 기업은 지명도가 매우 높은 기업이다. 이 기업은 LNG운반선 화물창의 설계 및 기술지원을 주 업무로 하는 엔지니어링 회사다. 화물창의 생산은 조선사들에 맡기고 설계 라이선스비용과 기술지원비용만을 취한다.

GTT가 조선사들에 요구하는 로열티는 LNG운반선 1척당 건조가격의 5%다.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건조되는 174K급 LNG운반선의 2023년 6월 표준선가를 기반으로 계산하면 167억원이다. 만약 조선사가 자체적으로 화물창을 개발하고 이를 LNG운반선에 탑재한다면 167억원의 비용을 아끼거나 혹은 그만큼 수주가격을 깎아 수주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그러나 GTT가 화물창의 무사고 이력을 앞세워 시장을 독점하고 있기에 조선사들 입장에서 자체 화물창의 선박 탑재는 '언감생심'이다. GTT는 기자재 라이선스회사가 시장에서 어떤 영향력을 보여줄 수 있는지, 왜 조선사가 기자재 기술을 내재화해야 하는지를 시사하는 사례다.

프랑스 GTT가 검수 중인 LNG 화물창 내부. (자료=GTT 유튜브 갈무리)

정 사장은 HD한국조선해양의 친환경 선박용 기자재사업을 GTT와 같은 방식으로 추진하려는 것으로 파악된다. 그가 대표이사에 공식 취임한 지 1개월만인 지난해 4월 HD한국조선해양은 친환경 선박의 핵심 기자재에 필요한 원천기술을 내재화하고 이를 활용한 라이선스 수익사업을 확대해 사업지주사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 분야에서 5년 안에 매출 5000억원을 내겠다는 단기 목표도 공개했다.

정 사장이 손에 넣고자 하는 친환경 기자재 기술은 LNG와 암모니아, 수소 등의 운반 및 연료 활용을 위한 차세대 에너지원 처리 시스템, 선박의 연료 소모를 절감을 돕는 연비 향상 시스템, 메탄슬립(불완전 연소돼 대기 중으로 배출되는 메탄) 저감장치 등 온실가스 저감 시스템 등이다. 친환경 선박을 실현하기 위한 3가지 방법론에 모두 해당한다.

이러한 기자재들을 이미 국내 선박기자재회사들도 생산하고 있다. 다만 원천기술은 외국에 의존한다. 예를 들어 LNG을 선박연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기자재 '연료가스 공급시스템(FGSS)'의 경우 핀란드 바르질라, 독일 MAN에너지솔루션즈, 노르웨이 콩스버그 마리타임 등 유럽의 선진 기술기업들이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세계 최초의 강선(철제 선박)은 1818년 건조된 영국 여객선 발칸호다. 이후로 200여년 동안 이어진 강선의 역사에서 건조업의 헤게모니는 유럽에서 일본을 거쳐 한국으로 넘어왔으나 기술의 주도권은 여전히 유럽이 보유하고 있다. 때문에 정 사장의 친환경 선박기자재 도전을 놓고 업계에서는 기술주도권을 잡아 조선업의 패권을 장기화하기 위한 의미 있는 시도로 평가한다.

HD한국조선해양의 LNG 완전재액화설비 실증 모습. (자료=HD현대)

◇ 성과 쌓이는 친환경 기자재 기술, 정주영 창업주의 '신화' 재연할까

HD한국조선해양은 친지난해 4월 독일 뒤셀도르프에 '유럽 R&D센터'를 열고 유럽 기술기업들과의 교류 및 공동연구를 위한 전진기지로 활용하고 있다. 같은 해 7월에는 LNG와 암모니아, 수소 등 친환경 에너지원의 선박 처리 시스템과 친환경 선박의 개발을 담당하는 조직 'SD사업부'를 새로 꾸렸다.

올해 들어서는 1월 유럽 최대 응용기술 연구개발기관인 독일 프라운호퍼, 연료전지 핵심부품 생산회사인 에스토니아 엘코젠과 고체산화물 연료전지(SOFC) 및 수전해 시스템 개발을 위한 MOU를 체결했다. 이보다 앞선 2022년 9월 그룹 지주사 HD현대도 연료전지 개발을 전담하는 태스크포스를 꾸린 바 있다.

발빠른 움직임 속에 점차 성과도 나타나고 있다. 앞서 6월 한국조선해양은 미국 선급협회 ABS로부터 메탄올용 저인화점 연료 공급시스템(LFSS)의 기본승인(AIP)을 받았다. 이 설비는 차세대 선박연료 중 하나로 각광받는 메탄올을 선박연료로 활용하는 데 쓰인다. 선급의 기본승인은 수주영업을 위한 허가다.

한국조선해양은 지난해 6월 한국선급협회(KR)로부터 선박의 풍력 보조추진장치 중 하나인 로터세일의 독자모델 '하이로터(Hi-Rotor)'의 설계승인도 받았다. 2020년 기본승인을 받은 뒤 설계의 정합성에도 문제가 없다는 평가를 받은 것이다.

HD한국조선해양이 개발한 하이로터(Hi-Rotor)의 개념도. (자료=HD현대)

HD현대그룹의 조선업은 현대중공업 시절부터 창업주인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주도 아래 선박기자재를 내재화하며 성장의 가도를 걸어온 'DNA'가 있다. 가장 대표적인 기자재가 엔진이다. 정 명예회장이 1977년 당시 상무로 생산계획 업무를 담당하던 김형벽 전 현대중공업 회장을 회장실로 직접 불러 엔진사업 시작을 지시했다는 일화도 남아 있다.

현대중공업은 1978년 당시 단일공장 기준으로 세계 최대의 엔진공장을 짓고 사업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유럽과 일본 기업들로부터 기술을 전수받아 엔진을 생산했으나 협력사들과 함께 기술을 점차 국산화하며 2000년에는 중형엔진 '힘센엔진(HiMSEN-Engine)'을 자체 개발했다. 현재 HD현대중공업은 상선 주기관용 대형엔진에서 37%, 상선 발전기용 중형엔진에서 40%의 시장 점유율을 보유한 세계 1위 엔진기업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HD현대그룹에게 기자재 기술의 내재화는 정주영 창업주가 만든 조선산업의 성장 공식"이라며 "정기선 사장의 친환경 선박기자재사업 진출은 할아버지의 공식을 재연해 조선업 패권의 장기화를 꿈꾸는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고 말했다.

HD현대중공업 엔진사업부가 대형엔진 2억마력 생산을 달성한 메탄올 추진선용 엔진. (자료=HD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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