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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선의 그린오션]젊은 오너가 선박 AS사업을 눈여겨본 까닭은③HD현대글로벌서비스 설립 주도, 성장까지 도맡아… '바다의 대전환'에서 역할 기대

강용규 기자공개 2023-07-17 07:25:47

[편집자주]

'회장님의 어떤 것'은 특별하다. 최고 경영자가 주목한 기술이나 제품이 곧 기업의 미래이자 경쟁력이 되기 때문이다. 나아가서는 새로운 산업을 창출하거나 글로벌 시장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모든 것이 오너의 역할은 아니겠지만 의사결정권자의 무게감은 더없이 막중하다. 더벨이 기업 오너와 최고경영진들이 낙점한 기술·제품의 과거와 현재를 짚어보고 미래를 전망해 본다.

이 기사는 2023년 07월 13일 16:5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현대중공업에서 전무로 기획실 총괄부문장을 지내던 정기선은 AS 등 선박 서비스 분야를 주시하고 있었다. 현대중공업은 이전까지 조 단위 영업이익을 내며 승승장구하다 2014년 3조2740억원, 2015년 1조5849억원의 적자를 잇따라 보며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조선업은 대표적인 사이클 산업으로 2014~2015년과 같은 실적 침체기가 언제든지 다시 돌아올 수 있다. 정기선은 오너 경영자로서 침체기를 대비하기 위한 '해자'를 준비할 필요가 있었다.

당시 현대중공업그룹은 산하에 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 현대삼호중공업 등 3개의 조선계열사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들 중 울산의 현대중공업과 전남 영암의 현대삼호중공업은 모두 대형선박 건조 조선사로 현대중공업의 해양플랜트를 제외하면 사업영역이 완전히 겹쳤다.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의 경우 건조 선박이 각각 대형선박과 중소형선박으로 달랐으나 소재지는 같은 울산이었다.

때문에 현대중공업그룹에 선박 건조를 의뢰한 선주사들은 선박의 AS가 필요할 때 3방향으로 나뉜 소통 체계를 따라야 했으며 이 과정에서 혼선이 생기는 일도 있었다. 이러한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현대중공업(현 HD한국조선해양)은 2015년 그룹 조선3사의 선박 AS조직을 통합해 '그룹선박AS센터'를 구축했다.

(자료=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 HD현대글로벌서비스, 순탄하지 않았던 출범 과정

정기선은 1년 동안 그룹선박AS센터를 지켜본 뒤 2016년 초 이 조직을 분사해 새로운 계열사를 설립할 것을 주장했다. 다만 당시의 정기선은 지금처럼 주요 계열사의 대표이사 사장으로서 그룹 경영 전면에 나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다. 최길선 회장과 권오갑 부회장(현 HD현대그룹 회장) 등 잔뼈 굵은 전문경영인들의 동의가 필요했다.

HD현대그룹에 따르면 정 사장의 주장에 반대 의견이 적지 않았다. 선박의 AS는 새로운 선박을 건조하는 기존 사업과는 성격이 다른데다 이 분야는 싱가포르와 유럽의 수리조선소들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어 유의미한 성과를 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였다.

정 사장은 1년 가까이 경영진들을 설득했다. 이 사업에 무언가 확신이 있었던 것일까. 결국 HD현대그룹은 2016년 12월 선박 AS 전문 계열사 현대글로벌서비스(현 HD현대글로벌서비스)를 출범시켰다. 조선사가 AS 전문법인을 운영하게 된 세계 최초의 시도였다.

◇ 해상 환경규제를 경영능력 입증 기회로

정 사장이 설립을 주도한 HD현대글로벌서비스는 곧 정 사장의 경영능력 시험대가 됐다. 그는 부사장으로 일하던 2017년 말 HD현대글로벌서비스의 대표이사로 배치됐다.

당시 그룹의 최고 경영자였던 권오갑 부회장은 2018년 4월 기자간담회에서 "HD현대글로벌서비스는 정 사장이 강력하게 주장해 세운 회사"라며 "스스로 책임지고 경영능력을 입증해야 한다고 판단해 대표이사를 맡겼다"고 말했다. 성공의 과실과 실패의 쓴맛이 모두 정 사장의 책임이라고 공언했던 것이다.

2018년은 국제해사기구의 2020년 선박연료유 황산화물 함량규제(IMO2020) 시행을 앞두고 선주사들의 솔루션 찾기가 극에 달했던 시기였다. LNG추진선을 새로 발주할 여력이 없는 선주사들은 선박 개조 분야에서 해답을 찾아야 했고 정 사장은 친환경 선박 개조(레트로핏)를 솔루션으로 제시했다.

HD현대글로벌서비스는 선박용 스크러버(배기가스 세정장치) 설치나 LNG 레디선(LNG추진선으로 개조할 수 있게 만들어진 선박)의 LNG추진선 개조 수요를 빨아들였다. 유럽, 미주, 싱가포르 등 해외에 잇따라 법인을 세우고 글로벌 영업에도 힘을 쏟았다.

이런 노력들은 실적으로 이어졌다. HD현대글로벌서비스는 정 사장의 대표이사 취임 전인 2017년 연결기준 매출 2403억원을 거뒀다. 그런데 정 사장이 대표에서 물러났던 2021년에는 매출이 1조877억원으로 4배 이상 불어나 있었다. 정 사장은 스스로 기업 경영능력의 시험대를 만들고 그 무대에서 자신의 능력을 입증한 셈이다.

(자료=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 성장 2막 플랫폼기업 도전, '바다의 대전환' 4대 과제 중 하나로

해상 환경규제 강화에 따른 수혜가 정기선 사장의 HD현대글로벌서비스의 성장 '제 1막'이었다면 '제 2막'은 스마트선박 시대 도래에 따른 제조서비스 기업의 플랫폼기업 전환 도전이다. HD현대글로벌서비스는 2019년 1월 조선업계 최초로 선박 디지털 관제센터를 부산에 개소했다.

HD현대그룹 조선사들은 건조 선박에 스마트선박 솔루션 'ISS(Integrated Smartship Solution)'을 설치해 선박의 운항 관련 데이터들을 수집하고 이를 통해 선주사들이 최적의 운항계획을 수립할 수 있도록 도와 왔다.

HD현대글로벌서비스는 여기에 부품 및 정비관리 기능 솔루션 'Hi-4S', 엔진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분석하는 솔루션 'HiEMS' 등을 추가로 개발하고 선박 모니터링 기능을 부산 관제센터로 통합한 것이다. HD현대글로벌서비스의 선박 관제 역할은 경기도 판교의 그룹R&D센터로 옮겨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선박의 운항을 최적화하고 고장을 예지보전하는 일은 단순히 스마트선박의 기능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선박의 연료 소모량을 줄이고 폐선 가능성을 낮춰 결국에는 선박의 친환경성을 높이는 것으로 이어진다.

정 사장은 CES2023에서 '바다의 대전환' 전략의 솔루션으로 △오션 라이프 △오션 모빌리티 △오션 에너지 △오션 와이즈 등 4개 분야에서의 혁신을 언급했다. 이 중 오션 와이즈, 즉 '똑똑한 바다'를 실현하는 임무가 HD현대글로벌서비스의 몫이다. 정 사장으로서는 자신이 설립을 추진하고 성장까지 도맡았던 계열사를 향후 그룹의 핵심 동력으로까지 내세운 셈이다.

이 새로운 동력을 향한 시장의 기대가 적지 않다. 2021년 2월 HD현대는 미국 사모펀드 KKR로부터 HD현대글로벌서비스 지분 38%를 넘겨주고 6534억원의 프리IPO(상장 전 투자유치) 투자를 유치했다. HD현대글로벌서비스가 1조7000억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다.

정기선 현대글로벌서비스 대표이사(맨 앞)가 부산 선박 관제센터에서 보고를 받는 모습. (자료=HD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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