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5년 05월 12일 08시39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문 앞의 야만인들(Barbarians at the gate)'은 1980년대 후반 벌어졌던 미국 RJR나비스코 인수전 비하인드를 다룬 서적이다. RJR나비스코 인수는 워낙 유명한 거래여서 책의 결말은 이미 잘 알려져있다.RJR나비스코 CEO였던 로스 존슨이 RJR나비스코 차입매수(LBO)를 시도했지만 인수전 경쟁자로 나선 KKR과의 파워게임에서 밀리면서 인수가 무산됐다. 존슨은 CEO 자리에서 물러났다. 자금 동원력과 인수 명분에서 우위를 점하지 못한 게 패인이었다.
인수전은 250억달러 규모 사상 최대 빅딜로 지금까지도 회자되나 결말은 씁쓸했다. 최대 피해자는 RJR나비스코였다. KKR이 인수 과정에서 일으킨 대규모 차입이 원인이었다. 수익성 악화로 회사가 결국 RJR과 나비스코로 쪼개지는 엔딩을 맞이했다. KKR은 이 회사에 10년간 공을 들였지만 엑시트 성과는 미미했다.
영풍-MBK파트너스 연합과 고려아연과의 경영권 분쟁은 RJR나비스코 인수전을 연상케 한다. 두 이벤트를 동일선상에서 비교할 수는 없지만 시장에 주는 교훈은 같다. 분쟁 양상이 극단적으로 흘러가면 타깃 기업 펀더멘털에는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는 점이다. 두 진영이 지분매입 경쟁을 벌이는 사이 고려아연 부채 규모는 급증하면서 재무 부담이 늘어났다.
어느 한쪽 손을 들어주긴 쉽지 않다. 분쟁에서 서로의 치부가 드러나고 있어서다. 별건이긴 하나 MBK는 홈플러스 사태로 고려아연 인수 여론이 크게 악화됐고 명분에 타격을 입었다. 고려아연에선 최윤범 회장과 박기덕 대표를 비롯한 최고경영진이 검찰조사 피의자 신분이 됐다. 방어 전략이 사법 리스크를 안고 있던 탓이다.
분쟁은 단기에 결론이 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고려아연 회사 자체에는 악재다. 영풍-MBK 연합은 법적 대응을 지속 중이고, 고려아연은 8일 이사회를 거쳐 박 대표를 재선임했다. 분쟁은 이렇다 할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제자리 걸음을 거듭하고 있다.
출구전략 시나리오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양 진영 모두 마냥 시간과 돈을 쏟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분쟁이 장기화될수록 승자가 가려지더라도 양자 모두에 상처뿐인 승리가 될 수 있다.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은 단순히 돈의 문제는 아니다. 창업가문 간 감정의 문제도 섞여있다. 양측에 켜켜이 쌓인 감정 골을 감안할 때 평화로운 종결은 어려워보인다. 하지만 비즈니스 세계에서 영원한 우군도, 영원한 원수도 없다. 한국에서 RJR나비스코 사례가 되풀이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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