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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년 2년차

윤영환 크레딧애널리스트공개 2010-12-13 12:04:28

[편집자주]

자본시장 발전에 신용평가는 인프라와 같은 존재입니다. 서브프라임사태로 신용평가의 공정성이 도마위에 오르고 있는 것도 신용평가의 중요성을 재차 일깨우는 사건입니다. 더벨은 신용평가를 포함해 크레딧시장의 전반을 전문가의 날카로운 시각을 통해 분석합니다. 신용이슈 등 일련의 현상에 대해 폭넓은 이해의 기회가 될 것입니다.

이 기사는 2010년 12월 13일 12:0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금융위기는 통상 구제금융(Bail-out), 구조조정(Restructuring), 회복(Turnaround)으로 이어지는 3단계의 과정을 거친다. 이를 고교 3년과 빗대어 Freshman Brave, Sophomore Risk, Senior Harvest라고도 한다. 1학년 때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좌충우돌하고, 2학년 때는 진로를 정하면서 갈등하고, 3학년 때는 성과를 거둔다는 것이다.

고교시절을 돌아보면 대체로 수긍이 가겠지만 그렇지 않은 이도 있을 것이다. 상당한 개인차가 있다. 마찬가지로 모든 금융위기가 같은 모양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위기의 진행과정이 예정되어 있다면 실패한 역사가 그렇게 많을 리 없다.

◇ 1단계: 구제금융 & Freshman Brave

위기의 첫 단계에서는 시스템 붕괴를 막는 것이 급선무다. 어느 정도의 무리도 감수한다. 잘잘못을 따지기보다는 우선 살려놓고 보자는 것이다. 예외 없이 도덕적 해이에 혈세를 쓴다는 비판이 쏟아지지만 머뭇거릴수록 구제비용만 늘어난다. 일단 살리기로 목표를 정했으면 ‘선제적으로, 단호하며, 충분하게(preemptive, decisive, sufficient)’, 그냥 쏟아 붇는다. 허장성세와 정보조작은 양념이다.

왜 이런 무리를 하는 것일까? 자금의 이탈을 막으려는 것이다. 내외국인의 투자자금이 이탈하고 은행이 대출을 회수(deleveraging)하면 금융시장이 붕괴되고 기업들이 연쇄도산에 빠진다. 더욱이 이 충격은 쉽게 회복되지 않고 후유증이 오래 간다.

2009년 미국 상업은행들은 오바마 대통령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기업대출을 17%나 회수했다. 반면 당국과 MOU를 체결한 우리 은행들은 같은 기간 기업대출을 10% 늘렸다. 우리 나라가 금융위기에서 빨리 벗어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 2단계: 구조조정 & Sophomore Risk

일단 고비를 넘긴 다음 단계인 구조조정은 금융위기를 초래한 금융 시스템의 취약성을 보완하는 과정이다.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지만 첨예하게 얽힌 이해관계가 걸림돌이 된다. 차라리 위기 상황에서는 메스를 대기 쉬웠겠지만, 힘들여 살려놓으니 이제 보따리 때문에 시시비비하는 난감한 상황으로 돌변한다. 조금만 빈틈을 보이면 바로 몽니를 부린다. 큰 위기도 넘어왔는데 겁날 것이 뭐냐는 식이다. 결국 정책의지의 방향과 강도가 흐름을 좌우한다.

글로벌 금융위기였던 만큼 글로벌 차원에서 구조조정의 줄거리를 잡지만, 세부적인 구조조정 내용은 나라마다 다르기 마련이다. 우리 정부는 외환시장의 안정성 강화와 은행의 건전성 제고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아무래도 회사채 시장은 순위에서 한참 밀리는 양상이다.

구조조정기 신용시장은 ‘은행-보합, 회사채-확장’의 기조 속에 대체로 무난한 양상을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표면적 안정과는 달리 물밑은 치열하다. 위기의 원인과 책임, 그리고 위기 이후의 시장질서를 둘러싼 전방위적 힘겨루기가 이어진다. 이에 따라 부실처리의 규모와 속도가 달라진다. 그리고 이를 통해 다음 턴어라운드 단계, 특히 신용확장의 토대가 형성된다.

◇ 2단계의 리스크

고교 2학년은 1년이 지나면 3학년이 된다. 하지만 금융위기의 2학년은 곧잘 장기화된다. 금융부실을 제대로 해소하지 못하면 2학년이 몇 년이고 지속될 수도 있다. 소위 L자형 또는 큰 바닥 U자형 회복이다.

반대로 2단계를 짧게 건너뛸 수도 있다. 소위 V자 회복이다. 거품을 또 다른 거품으로 덮으면 된다. 2000년대 중반의 미국은 닷컴버블의 후유증을 부동산 거품으로 조기 극복했다. 이제는 모두 알듯이 이런 방식으로는 그리 오래 가지 못한다.

부실정리와 새판짜기는 동전의 양면이다. 고름은 살이 되지 못하지만, 부실은 곧잘 우량자산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부실을 야기한 시스템의 모순은 절대로 그냥 해결되지 않는다. 수리적으로는 부실정리 없이 우량자산만 늘려도 부실률은 낮아진다. 하지만 깨진 항아리에는 물을 담지 못한다. 부실정리는 우량자산 증대의 선결요건이다.

부실이 많은 메이저가 구조조정을 할 때, 부실이 적은 마이너가 치고 올라와야 한다. 그래야 신용시장이 굴러간다. 여기에 두 가지 난제가 있다. 메이저가 구조조정을 미루는 것과 마이너가 치고 올라올 힘이 없는 것이다.

◇ 메이저의 구조조정 지연

은행건전성 기준인 바젤Ⅰ/Ⅱ/Ⅲ의 출발점이 대형 금융위기와 겹치는 것은 필연이다. 결국은 금융부실을 감출 수 없게 되지만, 문제는 결단의 시기가 늦춰지는 것이다. 그만큼 2학년이 지루하게 길어진다. 일본의 경우 1991년부터 드러난 금융부실을 1995년에 이르러 일부 도려냈고, 1997년에 와서야 제대로 대응하기 시작했다. 그냥 잃어버린 10년이 된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 은행들의 가장 큰 골칫덩이는 건설PF 부실이다. 과연 제대로 메스를 대기 시작했을까? 아래의 표에서 보듯이 지난 6월부터 돌연 건설부동산 부실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글로벌 평가사들은 갑작스러운 은행 부실 확대에 난감한 기색이지만, 오히려 이제야 비로소 본격적인 부실정리가 시작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5대 시은의 건설부동산 업종 고정이하여신은 2009년말 2.4조원에서 2010년 9월말에는 6.7조원으로 급증했다. 양대 리딩뱅크의 비중이 75%를 넘는다. 시중은행의 경쟁구도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하는 이유다. M&A가 양적 변화라면 부실정리는 질적 변화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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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너의 한계

또 하나의 큰 변화는 회사채 시장에서 나타난다. 은행으로부터 기업자금수요가 넘어오면서 회사채 시장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하지만 질적 성숙이 이를 받혀주지 못하고 있다. 회사채 만기는 너무 짧고, 가뜩이나 왜곡된 등급별 수익률 곡선은 문턱이 BBB/BB선에서 A/BBB선으로 높아지면서 더욱 기형화되었다.

신용위험에 대한 불안감을 도무지 담아내지 못하는 양상이다. 신용평가 시스템의 질곡도 안타깝지만, 근본적으로는 포트폴리오 효과를 끌어내지 못하는 수요기반의 취약성에 원인이 있다.

꽉 막힌 회사채 수요기반을 한동안은 리테일 수요가 완충해주었지만, 그래 봐야 임시변통일 뿐이다. 자본시장 특유의 ‘고수익-고위험 수용과 위험의 분산’이라는 긍정적 측면에도 불구하고,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의 적용예외라는 도덕적 해이에 기대고 있는 근본적 한계는 어찌할 방법이 없다. 더욱이 BBB도 투자하기 어려운 것이 리테일의 현실이고 보면, BB 이하까지 회사채 시장을 확장하려면 다른 차원의 모색이 필요하다.

최근 당국은 적격투자자(QIB) 제도의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S&L위기로 어려움을 겪던 미국이 1990년 도입하여 하이일드 시장을 전체 회사채 시장의 15% 수준으로 키워낸 제도다. 하지만 우리의 여건은 다르다. 무엇보다 하이일드 투자를 수용할 기반이 없다. 경작할 논밭이 없는데 종묘가격 내렸다고 농사를 더 지을까? 그저 외국 유수기업의 국내 회사채 시장 진입을 유인하는 정도의 효과가 예상된다.

◇ 턴어라운드行 티켓은 대형 회사채 펀드

신용시장의 새판짜기가 어정쩡한 봉합이 아니라 진정한 도약의 계기가 되기 위해서는 대형 회사채 펀드의 출현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신용시장 질서의 중심을 잡고, 포트폴리오 효과로 투자범위의 확대를 끌어내는 가장 효과적인 대안이다. 리테일 시장의 한계를 뛰어넘는 가장 유력한 대안이기도 하다.

시장의 확대와 안정화를 위해서는 개인 투자자가 폭넓게 참여해야 한다. 대형 회사채 펀드는 개인 투자자가 회사채에 투자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신용위기의 트라우마는 이제 옛 이야기가 되었다. 저금리 시대의 장기화로 개인의 회사채 직접투자가 크게 늘면서 이런저런 부작용을 걱정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저 개인 투자자들의 관심을 회사채 펀드 장기투자로 돌리는 방법과 계기가 문제일 뿐이다.

펀드 관련 제도도 보완해야 한다. 현재의 펀드정책은 투자자 보호에 치중하여 신용위험 수용을 지나치게 통제하고 있다. 펀드 표준약관은 아예 하이일드 투자를 제한하고 있고, 엄격한 환매중단 요건은 신용 이벤트에 대한 극단적 회피를 강요하고 있다. 한마디로 회사채 펀드가 제대로 작동할 수 없는 구조다. 여러 가지 정교한 조율이 필요하다.

회사채 펀드 활성화 정책에 대한 요구는 곧잘 ‘전에도 여러 차례 해보았지만 역시 안되더라’는 도리질에 부딪힌다. 하지만 과제의 난이도보다 중요성에 더 무게를 두어야 하지 않을까? 어차피 한번의 조치로 해결할 수 있는 간단한 과제가 아니다. 쾌도난마가 아니라 불요불굴의 집요함이 필요하다. 그간의 조치로 작으나마 성과가 있었고 나름대로 문제점을 확인했다면, 다음 도전은 좀더 나아지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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