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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의 법칙 [thebell desk]

최명용 산업2부장공개 2018-06-27 08:16:28

이 기사는 2018년 06월 26일 08:06 더벨 유료페이지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반도체 업계엔 '황의 법칙'이 있다. 2002년 국제반도체회로학술회의에서 당시 황창규 삼성전자 사장이 발표한 메모리 신성장론이 시작이다. 황 사장은 '반도체 집적도가 2배로 증가하는 시간은 12개월'이라고 선언했다.

황의 법칙은 30여년간 이어온 '무어의 법칙'을 깬 충격이었다. 인텔 공동 설립자인 고든 무어는 '반도체 메모리 용량은 18개월마다 2배씩 증가한다'는 이론을 내세웠다. 이전까지 반도체 개발 속도는 무어의 법칙을 따랐다.

한국이 반도체 시장을 석권한 근간에 '황의 법칙'이 있었다. 삼성전자는 올해까지 25년째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엔 비메모리반도체까지 더해 인텔을 제치고 반도체 시장 전체 1위까지 올랐다.

황창규 사장은 당초 의대를 가라는 부모의 권유를 뿌리치고 서울대 전기공학과로 진학을 했다. 물리 쪽이 더 적성에 맞았다. 매사추세츠주립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스탠포드대학에서 책임연구원을 지냈다. 반도체의 본류인 미국에서 공부하고 미국 회사들에 스카우트 제안을 받았다. 1987년엔 인텔의 자문 역할을 맡기도 했다. 한국과 인연이 닿지 않았다면 인텔에서 황의 법칙을 만들었을 지 모른다.

황 사장은 1989년 삼성과 인연을 맺었다. 이건희 회장의 스카우트 제의에 삼성전자 16M D램 소자 개발 팀장을 맡았다. 1992년엔 반도체연구소 이사를, 1994년엔 세계 최초 256M D램 개발을 맡아 성공시켰다. 이후에도 수 많은 세계 최초 타이틀을 만들었다.

황 사장은 미국식이면서 한국식 경영 스타일을 보였다. 미국에서 유학하며 자유분방한 사고와 격의 없는 토론에 익숙했다. 직언을 하는 직원들을 곁에 두고 아랫사람과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교환했다.

한국식으로 '일벌레'란 평가도 받았다. 황의 법칙을 선언한 초기엔 기술 개발의 속도가 빨랐지만 시간이 지나며 난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황의 법칙을 놓치지 않았다. 한국식 몰아 붙이기가 더해졌다. 밤샘을 하며 직원들을 독려했다. 황의 법칙은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이라기보다 황창규 사장이어서 가능했다.

황창규 사장은 인생 2막으로 KT 회장을 맡았다. 삼성에서 은퇴한 뒤 공무원도 하고 감투도 썼다. 편안한 노후를 즐길 수 있었지만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KT CEO 자리는 쉽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 시절엔 최순실 국정 농단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샀고 문재인 정부 들어선 뇌물 혐의를 받고 있다. 외풍에 휘둘리는 통신업의 특성도 있다. 내외부의 마타도어식 공세도 이겨내야 했다.

최근 경찰은 황 회장에게 불법 로비 혐의를 묻고 있다. KT 임원들이 상품권깡을 해 국회의원 99명(중복포함시 105명)에게 4억4190만원의 뇌물을 제공했는데 이를 황 회장이 지시했다는 것이다. 4년간 99명에게 4억원의 뇌물을 제공했다면 1인당 연간 100만원 꼴의 뇌물이다.

돈의 많고 적음으로 뇌물 혐의의 경중을 따질 수 없다. 하지만 돈을 받았다는 99명의 국회의원에 대한 조사도 없었다. 정치 자금 형태로 지원한 연100만원으로 KT에 특혜를 줬을 국회의원이 얼마나 될까. 또 국회의원에게 연 100만원을 건네라며 회장이 지시했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 결국 검찰은 영장청구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경찰에 재수사 지시를 했다.

통신업계는 정부의 정책에 따라 명운이 달라진다. 공기업에서 민간기업으로 변신한 KT에 대한 외풍은 더 심하다. 황창규 회장 이전까지 KT CEO들은 모두 중도에 낙마를 했다. 경찰의 이번 조사가 실체적 진실이 있는지, 또 다른 정치 공작의 일환인지 알길은 없다. 하지만 전세계 반도체 시장을 호령하던 황창규 회장에게 100만원짜리 뇌물죄를 묻고 불명예 퇴진하라는 것은 순리가 아닌 듯 싶다.

재계는 KT가 CEO 흑역사를 끊길 바라고 있다. 더 나아가 정부 관료의 말 한마디, 혹은 '그 분'의 뜻에 따라 경제계가 휘둘리는 일이 반복되지 않길 바라고 있다.

이번 정부에도 어김 없이 정치에 경제가 휘둘리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정경유착의 고리는 '정치와 경제'가 함께 끊어야 한다. 황창규 회장을 시작으로 그 고리가 끊어지길, 또 다른 의미의 '황의 법칙'이 만들어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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