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3년 09월 04일 07시46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제도적 측면에서 한국 자본시장의 ‘롤모델’은 미국이다. 투자자들에게 제공하는 공시가 규제의 뼈대라는 점에서 그렇다. 정확한 정보가 적절한 경로로 제공되면 합리적 투자판단과 자금 조달이 이뤄질 수 있다는 취지다.그러나 실무 영역에선 다른 점도 많다. 특히 기업공개(IPO) 과정은 차이가 있다. 증권신고서를 제출하고 수요예측을 통해 공모가를 결정하는 과정은 비슷하다. 다만 미국에서는 로펌이 수행하는 업무 비중이 크다. 증권신고서를 작성하고 법률실사도 예외 없이 진행한다.
한국 IPO 시장에서 로펌의 역할은 훨씬 작다. 증권사가 올라운드 플레이어를 맡아 실사는 물론 공모와 배정까지 전 과정을 조율한다. 증권신고서 작성 과정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크다. 로펌은 해외 공모를 진행하지 않는 이상 증권신고서에 관여하진 않는다.
최근 몇 년 사이 급격히 커진 IPO 시장의 규모를 고려하면 의아한 일이다. 자본시장 업무를 주로 맡는 변호사에게 원인을 물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IPO 자문 시장이 개화하던 2000년대 초반부터 현재와 같은 업무 형태가 정착되었다는 설명이다.
선진 자본시장의 관행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모방해야 할 이유는 없다. 실제 전 세계 증시를 다 따져보면 로펌 비중이 크지 않은 곳이 더 많을 것이다. 바로 옆 나라인 일본만 해도 우리처럼 로펌 대신 증권사가 상장 증권신고서를 작성한다.
다만 최근 국내 증시의 모습을 살펴보면 IPO 과정에서 로펌 비중을 확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주요 임직원이나 대표이사의 횡령, 배임으로 거래정지 처분을 받은 기업이 한 둘이 아니다. 내부 정보를 빼돌리는 등 기업공시 제도를 형해화하는 사례도 자주 나온다.
이 때문에 대한변호사협회에서는 최근 IPO 법률실사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제안을 내놨다. 기업 내부통제 체계 등을 미리 검토하면 투자자 보호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논리다. 실제 상장 과정에서 이뤄지는 로펌 실사와 자문이 내부통제의 중요성을 깨닫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지금도 대형 공모의 경우 로펌이 발행사 자문을 맡아 메인 플레이어로 참여한다. 내부 통제부터 계약, 인사까지 전 부문을 실사하고 보고서를 작성한다. 문제가 발견되면 해소 방안을 제안하고 실행 과정까지 컨설팅한다. 로펌 비중이 작은 IPO와는 내부 체계가 현격히 차이날 수밖에 없다.
한 해 우리 자본시장에선 100여 건 안팎의 IPO가 이뤄진다. 로펌 자문이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게는 절반가량을 차지한다. ‘사각지대’ 상태의 기업만 줄여도 상당수 금융 사고를 예방할 수 있지 않을까. 국내 증시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법률실사 확대가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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